돼지꼬리·닭 목살·샤퀴테리 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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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던 고기의 재발견
안 먹던 부위에 대한 호기심·희소성 마케팅 결합
원가 싸지만 특수부위 이름 달고 비싸게 팔려 나가
안 먹던 부위에 대한 호기심·희소성 마케팅 결합
원가 싸지만 특수부위 이름 달고 비싸게 팔려 나가
“돼지꼬리 좀 더 없나요?”
요즘 돼지고기집 주인들은 도축장이나 육가공 공장에 전화를 돌리느라 바쁘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외에 최근 ‘돼지꼬리’나 ‘돼지껍데기’ 등을 찾는 손님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꼬리는 한 마리에 100~130g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식당들은 ‘확보 작전’에 나서고 있다.
닭고기도 마찬가지다. 닭 목살, 무릎연골살 등 ‘잘 안 먹던 부위’의 수요가 늘면서 닭 특수부위 전문점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버려지던 고기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안 먹던 부위에 대한 호기심과 외식업체의 원가 절감 아이디어, 희소성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이 어우러진 결과다. 익숙한 재료, 새로운 부위
국내 육류 소비 문화는 수십 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돼지고기는 40년 이상 ‘삼겹살’이 주인공이었고, 닭은 기름에 튀겨야 제맛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특수부위에 대한 수요는 천편일률적인 소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돼지꼬리는 일부 감자탕집이나 순댓국 전문점에서 육수를 낼 때 쓰이거나 도축하고 남은 부위를 시장 인근에서 찜이나 구이로 먹는 게 전부였다.
닭도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약 1000년 전부터 ‘야키토리’라는 이름으로 닭 내장과 특수부위 등을 꼬치에 끼워 구워 먹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닭 목살은 뼈가 많고 먹을 게 없는 부위로, 연골은 버려지는 뼈 정도로 여겨졌다.
식육 전문 마케터이자 《삼겹살의 시작》의 저자인 김태경 씨는 “비선호 부위가 ‘특수부위’라는 이름으로 잘 팔리기 시작한 건 외식업계가 새로운 부위, 새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 수요에 대응해 차별화된 경험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가를 줄이려는 자영업자들의 노력도 영향을 미쳤다. 외식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은 원가 절감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돼지꼬리나 닭 목살, 닭 연골살 등은 도매시장에서 다른 부위의 반값 이하에 거래된다.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손질도 어려워 웬만한 규모의 식품 기업에선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도축장이나 도계장에서 바로 중소기업 등으로 넘겨져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 부분육으로 유통되는 게 보통이다. 원가는 싸지만 ‘특수부위’라는 이름을 달고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중소 유통기업과 고깃집들이 관심을 보일 이유가 충분했다. 가나안식품, 백희푸드 등 닭의 내장과 뼈를 발라낸 목살 등을 포장해 유통하는 기업들은 요즘 주문량이 평소 대비 3~4배 늘었다.
계식당·계스토랑·꼬리집까지
이 같은 특수부위 전문점이 전국 곳곳에 문을 열고 있다. 서울 신사동 ‘계식당’은 잔뼈를 다 발라낸 닭 목살, 무릎연골살 등을 판다. 1인분 1만4000원. 기존 닭숯불구이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손님들이 몰려 매일 저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서울 교대, 경기 성남시 정자동, 광주 상무지구에도 지점을 냈다. 이외에도 꼬끄더그릴, 세미계, 촌놈숯불닭갈비, 계양간, 계스토랑 등이 닭 특수부위를 취급한다.
돼지꼬리구이는 돼지고기집이나 부속구이집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 공덕동 ‘용마루굴다리껍데기’는 원래 껍데기 원조집으로 유명하지만 요즘은 돼지꼬리구이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프리미엄 돼지고기 전문점 신도세기는 양념에 버무린 돼지꼬리구이를 판다. 이 식당에서 만난 김연희 씨(27)는 “삼겹살과 목살, 항정살 등은 많이 먹어봤지만 돼지꼬리는 먹어본 적이 없어 궁금했다”고 말했다. 특수부위 열풍이 불면서 최근 KFC는 대만식 닭껍질튀김을 내놓기도 했다.
고기 소비의 새 패러다임
특수부위 열풍은 고기 소비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식 육가공 전문점 ‘샤퀴테리’의 확산도 비슷한 현상이다. 샤퀴테리는 고기와 고기 부속물 등으로 만든 육가공품을 총칭하는 프랑스어다. 햄과 소시지, 베이컨도 샤퀴테리의 한 종류지만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공산품이 아니라 유럽 전통의 방식을 따라 자연적인 재료만 써서 만든 수제 육가공품을 일컫는다.
샤퀴테리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람에 말리는 방식, 훈연하는 방식으로 가공하는데 전문점에서는 그동안 잘 먹지 않았던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맛볼 수 있다. 더사퀴테리아를 운영하는 에쓰푸드의 조성수 대표는 “소비자들의 기호가 바뀌고, 축산 기술이 발달하면서 육가공품을 소비하는 문화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요즘 돼지고기집 주인들은 도축장이나 육가공 공장에 전화를 돌리느라 바쁘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외에 최근 ‘돼지꼬리’나 ‘돼지껍데기’ 등을 찾는 손님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꼬리는 한 마리에 100~130g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식당들은 ‘확보 작전’에 나서고 있다.
닭고기도 마찬가지다. 닭 목살, 무릎연골살 등 ‘잘 안 먹던 부위’의 수요가 늘면서 닭 특수부위 전문점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버려지던 고기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안 먹던 부위에 대한 호기심과 외식업체의 원가 절감 아이디어, 희소성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이 어우러진 결과다. 익숙한 재료, 새로운 부위
국내 육류 소비 문화는 수십 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돼지고기는 40년 이상 ‘삼겹살’이 주인공이었고, 닭은 기름에 튀겨야 제맛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특수부위에 대한 수요는 천편일률적인 소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돼지꼬리는 일부 감자탕집이나 순댓국 전문점에서 육수를 낼 때 쓰이거나 도축하고 남은 부위를 시장 인근에서 찜이나 구이로 먹는 게 전부였다.
닭도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약 1000년 전부터 ‘야키토리’라는 이름으로 닭 내장과 특수부위 등을 꼬치에 끼워 구워 먹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닭 목살은 뼈가 많고 먹을 게 없는 부위로, 연골은 버려지는 뼈 정도로 여겨졌다.
식육 전문 마케터이자 《삼겹살의 시작》의 저자인 김태경 씨는 “비선호 부위가 ‘특수부위’라는 이름으로 잘 팔리기 시작한 건 외식업계가 새로운 부위, 새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 수요에 대응해 차별화된 경험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가를 줄이려는 자영업자들의 노력도 영향을 미쳤다. 외식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은 원가 절감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돼지꼬리나 닭 목살, 닭 연골살 등은 도매시장에서 다른 부위의 반값 이하에 거래된다.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손질도 어려워 웬만한 규모의 식품 기업에선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도축장이나 도계장에서 바로 중소기업 등으로 넘겨져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 부분육으로 유통되는 게 보통이다. 원가는 싸지만 ‘특수부위’라는 이름을 달고 비싸게 팔 수 있으니 중소 유통기업과 고깃집들이 관심을 보일 이유가 충분했다. 가나안식품, 백희푸드 등 닭의 내장과 뼈를 발라낸 목살 등을 포장해 유통하는 기업들은 요즘 주문량이 평소 대비 3~4배 늘었다.
계식당·계스토랑·꼬리집까지
이 같은 특수부위 전문점이 전국 곳곳에 문을 열고 있다. 서울 신사동 ‘계식당’은 잔뼈를 다 발라낸 닭 목살, 무릎연골살 등을 판다. 1인분 1만4000원. 기존 닭숯불구이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손님들이 몰려 매일 저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서울 교대, 경기 성남시 정자동, 광주 상무지구에도 지점을 냈다. 이외에도 꼬끄더그릴, 세미계, 촌놈숯불닭갈비, 계양간, 계스토랑 등이 닭 특수부위를 취급한다.
돼지꼬리구이는 돼지고기집이나 부속구이집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 공덕동 ‘용마루굴다리껍데기’는 원래 껍데기 원조집으로 유명하지만 요즘은 돼지꼬리구이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프리미엄 돼지고기 전문점 신도세기는 양념에 버무린 돼지꼬리구이를 판다. 이 식당에서 만난 김연희 씨(27)는 “삼겹살과 목살, 항정살 등은 많이 먹어봤지만 돼지꼬리는 먹어본 적이 없어 궁금했다”고 말했다. 특수부위 열풍이 불면서 최근 KFC는 대만식 닭껍질튀김을 내놓기도 했다.
고기 소비의 새 패러다임
특수부위 열풍은 고기 소비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식 육가공 전문점 ‘샤퀴테리’의 확산도 비슷한 현상이다. 샤퀴테리는 고기와 고기 부속물 등으로 만든 육가공품을 총칭하는 프랑스어다. 햄과 소시지, 베이컨도 샤퀴테리의 한 종류지만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공산품이 아니라 유럽 전통의 방식을 따라 자연적인 재료만 써서 만든 수제 육가공품을 일컫는다.
샤퀴테리는 소금에 절이거나 바람에 말리는 방식, 훈연하는 방식으로 가공하는데 전문점에서는 그동안 잘 먹지 않았던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맛볼 수 있다. 더사퀴테리아를 운영하는 에쓰푸드의 조성수 대표는 “소비자들의 기호가 바뀌고, 축산 기술이 발달하면서 육가공품을 소비하는 문화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