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징용자 변호인 아니다…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외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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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한국 외교에 쓴소리
日경제보복은 사법부가 외교에 개입해서 빚어진 비극
경제 재앙 닥쳤는데 원론적 대응만 하는 건 직무유기
비핵화는 핵물질 동결이 시작…영변핵 과대평가 말라
日경제보복은 사법부가 외교에 개입해서 빚어진 비극
경제 재앙 닥쳤는데 원론적 대응만 하는 건 직무유기
비핵화는 핵물질 동결이 시작…영변핵 과대평가 말라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돕던 변호인의 눈으로 외교를 봐선 안 됩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67)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국익이 무엇인지를 최우선에 놓고 행동해야 한다”며 정부의 대일외교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과거 부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돕던 변호사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경제적 재앙이 코앞에 닥쳤는데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습니다.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사법부가 행정부의 영역인 외교 사안에 개입하면서 빚어진 비극입니다.”
▷원인이 뭐라고 봅니까.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은 외교를 통해 타결된 타협의 산물입니다. 10여 년간의 교섭 끝에 정부는 당시 일본 외환보유액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의 유무상 자금을 받아냈죠. 삼권분립은 국내에서나 적용되는 겁니다. 국제무대에선 사법부건 행정부건 하나의 목소리로 간주됩니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배상해야 하죠.”
▷한·일 양국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습니다.
“일본 측 주장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지켜온 입장과 같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배상금도 포함됐다는 거죠.”
▷이전 정부에서도 일본 측 주장을 수용했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1965년 청구권협정을 계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그동안의 한국 정부 입장을 부정해버린 셈이 됐죠.”(노무현 정부는 2005년 한·일 협정 문서를 공개한 뒤 강제징용 피해자 7만8000여 명에게 1인당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청와대는 ‘전략적 침묵’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존중한다’고 퉁쳐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는 정부의 영역입니다.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면 그동안 정부 입장이 잘못됐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면 대법원 판결이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8개월간 아무 성과도 못 냈습니다.”
▷외교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청와대가 모든 걸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를 나무랄 건 아닙니다. 한·일 문제에서도 외교부 전문관료의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냉철한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해결책은 뭘까요.
“해법을 일본에서 찾을 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합니다.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을 개별적으로 하려고 했던 걸 우리가 요구해서 한꺼번에 받은 겁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줘야 할 돈을 경제 개발에 쓴 만큼 정부가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일본의 대응도 비상식적입니다.
“일본이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경제 보복은 정치 문제를 푸는 데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이달 있을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에 한·일관계 악화 국면을 이용하는 것도 있습니다.”
▷북핵 문제는 진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미 ‘깜짝 3자 회동’을 통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진전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다만 북핵과 관련해선 일단 핵물질 생산 동결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북한에 제공할 조치와 선후관계를 어떻게 할 거냐는 로드맵 협상을 해야 합니다. 군축 협상의 기본이죠.”
▷정부는 촉진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촉진자가 갖춰야 할 필수적 자질은 미·북 간 소통의 장애를 해소하고 접점을 마련할 외교적 역량입니다. 근데 핵 문제의 본질과 협상력의 작용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북 간 소통을 촉진하는 것은 고사하고 한·미 간, 남북 간 소통조차 어렵습니다.”
▷대통령은 영변 핵폐기가 비핵화의 입구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이 포기하겠다는 영변 단지의 가치와 비중에 대한 과대평가는 북한에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미·북 협상을 촉진하기보다 저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북 비핵화 협상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상당 부분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겨놓은 꼴이 됐습니다. 베네수엘라, 이란과의 외교에서 그다지 성과를 못 낸 상황에서 북핵 문제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과시하고 있으니까요.”
▷비관적으로 보는군요.
“김정은이 이를 이용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의 외교적 업적을 얼마든지 박탈할 수 있다’고 협박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를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하는 한 김정은이 화나는 걸 하지 못할 겁니다.”
▷북한이 핵을 동결한다면 보상으로 어떤 걸 줄 수 있을까요.
“미·북이 곧 실무협상을 할 테지만 제재해제는 어려울 겁니다.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니까요. 하지만 원유와 식량을 단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안전보장을 원합니다.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등 북한이 원하는 정치적 요구사항도 실현 가능하겠죠. 비핵화의 모멘텀만 마련되면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미·중 갈등이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미국과 중국 중 누구 편을 드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과의 우호관계나 중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화웨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통신망을 안보 이해가 대립되는 나라에 맡겨도 되겠습니까. 미국과 중국이 무역분쟁을 해결하고 사이가 좋아져서 화웨이 제품을 써달라고 간청해도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북핵 협상을 총괄한 외교전문가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외교부 2차관도 지냈다. 1977년 제11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 정책총괄과장, 국제기구정책관,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영국대사 등을 거쳤다. 현재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으로 동북아시아 정세를 분석하는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임락근/박동휘 기자 rklim@hankyung.com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67)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국익이 무엇인지를 최우선에 놓고 행동해야 한다”며 정부의 대일외교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과거 부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돕던 변호사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했다. 천 전 수석은 “경제적 재앙이 코앞에 닥쳤는데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습니다.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사법부가 행정부의 영역인 외교 사안에 개입하면서 빚어진 비극입니다.”
▷원인이 뭐라고 봅니까.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은 외교를 통해 타결된 타협의 산물입니다. 10여 년간의 교섭 끝에 정부는 당시 일본 외환보유액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의 유무상 자금을 받아냈죠. 삼권분립은 국내에서나 적용되는 겁니다. 국제무대에선 사법부건 행정부건 하나의 목소리로 간주됩니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배상해야 하죠.”
▷한·일 양국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습니다.
“일본 측 주장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지켜온 입장과 같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배상금도 포함됐다는 거죠.”
▷이전 정부에서도 일본 측 주장을 수용했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점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1965년 청구권협정을 계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그동안의 한국 정부 입장을 부정해버린 셈이 됐죠.”(노무현 정부는 2005년 한·일 협정 문서를 공개한 뒤 강제징용 피해자 7만8000여 명에게 1인당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청와대는 ‘전략적 침묵’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존중한다’고 퉁쳐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는 정부의 영역입니다.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면 그동안 정부 입장이 잘못됐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면 대법원 판결이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놔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8개월간 아무 성과도 못 냈습니다.”
▷외교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청와대가 모든 걸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를 나무랄 건 아닙니다. 한·일 문제에서도 외교부 전문관료의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냉철한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해결책은 뭘까요.
“해법을 일본에서 찾을 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합니다.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을 개별적으로 하려고 했던 걸 우리가 요구해서 한꺼번에 받은 겁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줘야 할 돈을 경제 개발에 쓴 만큼 정부가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일본의 대응도 비상식적입니다.
“일본이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경제 보복은 정치 문제를 푸는 데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이달 있을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에 한·일관계 악화 국면을 이용하는 것도 있습니다.”
▷북핵 문제는 진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미 ‘깜짝 3자 회동’을 통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진전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다만 북핵과 관련해선 일단 핵물질 생산 동결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북한에 제공할 조치와 선후관계를 어떻게 할 거냐는 로드맵 협상을 해야 합니다. 군축 협상의 기본이죠.”
▷정부는 촉진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촉진자가 갖춰야 할 필수적 자질은 미·북 간 소통의 장애를 해소하고 접점을 마련할 외교적 역량입니다. 근데 핵 문제의 본질과 협상력의 작용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북 간 소통을 촉진하는 것은 고사하고 한·미 간, 남북 간 소통조차 어렵습니다.”
▷대통령은 영변 핵폐기가 비핵화의 입구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이 포기하겠다는 영변 단지의 가치와 비중에 대한 과대평가는 북한에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미·북 협상을 촉진하기보다 저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북 비핵화 협상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상당 부분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겨놓은 꼴이 됐습니다. 베네수엘라, 이란과의 외교에서 그다지 성과를 못 낸 상황에서 북핵 문제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과시하고 있으니까요.”
▷비관적으로 보는군요.
“김정은이 이를 이용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당신의 외교적 업적을 얼마든지 박탈할 수 있다’고 협박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를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하는 한 김정은이 화나는 걸 하지 못할 겁니다.”
▷북한이 핵을 동결한다면 보상으로 어떤 걸 줄 수 있을까요.
“미·북이 곧 실무협상을 할 테지만 제재해제는 어려울 겁니다.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니까요. 하지만 원유와 식량을 단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안전보장을 원합니다.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등 북한이 원하는 정치적 요구사항도 실현 가능하겠죠. 비핵화의 모멘텀만 마련되면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미·중 갈등이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미국과 중국 중 누구 편을 드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과의 우호관계나 중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화웨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통신망을 안보 이해가 대립되는 나라에 맡겨도 되겠습니까. 미국과 중국이 무역분쟁을 해결하고 사이가 좋아져서 화웨이 제품을 써달라고 간청해도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북핵 협상을 총괄한 외교전문가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외교부 2차관도 지냈다. 1977년 제11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 정책총괄과장, 국제기구정책관,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영국대사 등을 거쳤다. 현재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으로 동북아시아 정세를 분석하는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임락근/박동휘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