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 위기론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나타나는 징후들은 그 위기가 이제 턱밑까지 다가온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만성화되다시피 한 생산·판매·수출 부진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그 여파가 자동차산업의 뿌리인 부품업체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에 비해 신차 개발 역량이 떨어지는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 등의 상황은 기업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완성차 3사의 올 상반기 판매량은 38만6602대로, 반기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상반기 이후 최저치다. 완성차업체 실적 악화 후폭풍으로 부품업체들은 패닉 상태다. 지난해 1차 협력사 20개사가 부도를 낸 데 이어 대표적인 부품업체 만도도 최근 임원 20% 이상 감원과 대규모 희망퇴직 계획을 밝혔다. 부품업체 상당수가 하반기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될 판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노조 리스크’에 따른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 탓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현대자동차의 차량 1대 평균 생산시간(HPV)은 26.8시간으로, 경쟁사인 도요타(24.1시간), 폭스바겐(23.4시간)보다 길었다. 반면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상위 10%’ 노조는 연례화된 파업을 통해 밥그릇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작업장 배치, 생산량 조절까지 가부(可否)결정권을 거머쥐고 임금 인상과 복지향상을 위해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반해 회사 측은 저성과자 해고도 사실상 못 하고 파업 시 대체근로도 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산업이 공멸하지 않고 앞으로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요행에 가깝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자율주행차와 친환경차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GM 폭스바겐 등은 미래 기술 경쟁에서 한 번 밀리면 영원히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갖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투자여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노조는 이런 엄중한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더 늦기 전에 위기 극복을 위해 회사와 머리를 맞대고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한다. 회사가 살아야 조합원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