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 주재 대사직이 교황 다음으로 좋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25일 만난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는 “외교관으로서 한국보다 더 흥미로운 부임지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북한 문제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많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충돌하는 곳”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역동적이고 도전거리가 많아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아우어 대사는 2000년대 초반 독일 사회민주당이 집권당으로서 기세등등하던 시절 사민당 당수를 “교황 다음으로 아름다운 자리(schnste Amt neben Papst)”라고 한 프란츠 뮌터페링 당시 사민당 대표의 말을 빗대 “주한 독일대사 자리야말로 교황 다음으로 아름답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우어 대사는 인터뷰를 요청하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독일식 정육점 겸 레스토랑인 블루메쯔를 추천했다. “서울에서 조금 멀지만 독일 남부지방 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라 초대했습니다. 크리스마스 같이 특별한 날 소시지가 필요하면 종종 이곳에서 주문해 먹곤 합니다.”

“獨 이원식 직업교육 덕에 청년실업률 낮아”

블루메쯔는 독일 바이에른주 란츠후트의 육가공마이스터학교에서 교육받고 온 유병관 마이스터(명인)와 정건호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독일식 정육식당이다. 숙성 스테이크와 독일식 돼지족발 요리인 슈바인스학세, 독일식 소시지 바이어부어스트 등 메뉴를 갖춘 레스토랑인 동시에 한쪽에선 마이스터가 직접 만든 숙성육, 정육, 햄과 소시지 등 다양한 육가공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우어 대사는 “한국에 대사로 부임한 뒤 란츠후트시장으로부터 유 대표를 소개받았다”며 “유 대표가 독일어 장벽을 이겨내면서 바이에른육가공마이스터학교에서 자격증을 딴 것은 굉장한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입맛을 돋우는 첫 요리로 파스트라미 버거가 나왔다. 바게트에 여덟 시간 저온 훈연한 소고기 앞다리살을 겹겹이 얹어 머스터드 등 소스와 함께 먹는 일종의 샌드위치다.

아우어 대사는 식당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은 단순히 식당이 아니라 바이에른육가공마이스터학교와 제휴를 맺고 한국의 후학을 양성하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독일식 정육식당을 열고 싶거나 소시지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유 대표로부터 기술을 전수받고 있죠. 독일 직업교육인 ‘아우스빌둥(일·학습 병행)’을 볼 수 있는 현장입니다.”

그는 “독일 교육은 곧 직업교육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며 “독일 전역에 직업교육기관이 330여 개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이 최근 0%대 분기 성장률을 보이면서도 실업률은 3%대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직업교육 덕분이라고 말했다. “보통 3년 직업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은 처음 1년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나머지 2년은 현장, 즉 기업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마이스터 자격증을 받죠. 그러면 3분의 2 이상은 훈련을 받았던 기업에 바로 취직이 됩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직접 기르고 채용하기 때문에 청년실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원 이상의 고급교육을 강조하는 미국과 비교해 독일식 직업교육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다소 뒤처지는 방식 아니냐”는 질문에 아우어 대사는 “맞으면서도 틀리다”고 대답했다. “독일도 대학교육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센터도 많습니다. 직업교육과 대학교육이 건강하게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구조입니다.”
“한·독은 같은 가치 추구하는 파트너”

식당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정통 바이에른지방식 소시지, 바이어부어스트가 항아리에 담겨 나왔다. 따뜻한 물에 잠겨 있는 소시지는 특이하게도 하얀색이었다. 생파슬리와 레몬으로 만든 이 소시지는 식감이 부드러워 독일인들이 아침식사로 즐겨 먹는다고 했다. 아우어 대사는 “오늘 아침에 만든 거라 아주 신선하다”며 어서 먹어보라고 권했다. 이어 바이어부어스트와 잘 어울리는 맥주도 나왔다. “바이에른 맥주입니다. 목넘김이 편한 게 특징이죠. 독일 맥주는 알다시피 세계 베스트입니다.”

아우어 대사는 자신도 바이에른 지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모로코 탕헤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바이에른 출신이고 조부모님도 그곳에 계셔 휴가 때는 바이에른에 자주 갔죠. 축구도 FC바이에른뮌헨 팬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학창 시절부터 외교관을 꿈꿨다고 했다. 독일 본대학에서 법학·정치학을 전공했고 사법시험도 봤지만 외교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외교관 일을 시작한 아우어 대사는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벨기에 브뤼셀 등 유럽에서 주로 근무했다. 오랜 기간 유럽에 있었던 그는 새로운 지역을 알고 싶어져 아시아로 관심을 돌렸다고 했다. 아우어 대사는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유럽대외관계청 과장, 인권·다자이슈담당 국장까지 지내고 2016년 첫 대사 부임지로 한국을 직접 선택했다.

그는 “독일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인권 등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또 “독일도 과거 분단을 겪었기 때문에 철조망을 두고 가족이 떨어져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독일인만큼 한국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동료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메인 메뉴로는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독일식 돼지족발 슈바인스학세가 나왔다. 슈바인스학세도 바이에른지방에서 즐겨 먹는 독일 전통 음식으로 돼지의 발목 윗부분을 구워 요리한다. 모양은 한국 족발과 비슷하지만 돼지를 삶은 뒤 다시 구워 조리하기 때문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더 부드럽다.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든 사워크라우트와 구운 양파, 머스터드 소스가 곁들여 나와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줬다.

“기업하기 어려운 한국…규제 풀어줬으면”

메인 메뉴에 이어 후식으로는 살라미 리오나 비어슁켄 코흐슁켄 등 수제햄과 소시지가 얇게 슬라이스 된 콜드컷플래터와 시원하고 상큼한 맛의 바질셔벗이 나왔다.

아우어 대사에게 한국 주재 대사로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을 묻자 그는 “다자주의적 국제질서를 지키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는 세계 흐름 속에서 한국과 독일이 다자주의적 국제질서를 함께 지켜나가도록 공조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양국 모두 수출 의존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어 국제사회에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질서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형성한 다자주의 등 국제질서의 득을 가장 많이 본 나라가 독일과 한국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규범에 입각한 다자주의 질서가 잘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수호를 위해 국제사회에서 더 크게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최근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다자주의’와 ‘개방형 세계 경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해하는 국제질서와는 다른 것 같다”며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통상질서, 인권 등 보편적인 규범은 안에서 다르고 밖에서 다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우어 대사는 “한국도 규제를 더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자동차 등 독일 기업과 한국 기업이 경쟁 관계에 있는 분야에서는 비관세 장벽이 많아 독일을 비롯해 많은 유럽 기업이 고전하고 있습니다. 양국 모두 개방형 경제를 지향하는 만큼 한국 시장도 자유무역정신에 기초해 더 열어줬으면 좋겠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독일서 처음 나온 개념

독일은 전통 제조업에 집중하는 장인정신으로 많은 국가의 롤모델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변화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계 최고인 제조업과 달리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에선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는 이런 평가에 대해 “4차 산업혁명(인더스트리 4.0)이라는 말 자체가 2011년 독일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독일의 히든챔피언(숨은 강소기업)들은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으며 세계 마켓리더도 많다”고 말했다. 또 독일은 고령화로 신산업 등에서 전문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하자 최근 이민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 약력

△1961년 모로코 탕헤르 출생
△1985년 독일 본대학 법학·정치학과 졸업
△1988년 외무부 근무
△1997~2001년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독일대사관 정무 및 공보부장
△2001~2004년 외무부 유럽연합 (EU) 코디네이션그룹 부과장
△2004~2007년 이탈리아 주재 독일대사관 정무부장
△2007~2010년 외무부 EU 코디네이션 그룹 과장
△2013~2016년 브뤼셀 유럽대외관계청 (EEAS) 과장, 인권·글로벌·다자이슈 담당 국장 △2016년~ 주한 독일대사
아우어 대사의 단골집 블루메쯔

숙성 고기 선보이는 독일 남부요리 전문점

블루메쯔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의 한적한 전원마을에 있는 독일식 정육식당이다. 블루메쯔라는 이름은 독일어 ‘blumen(꽃)’과 ‘Metzgerei(정육점)’를 합성한 것이다. 독일 육가공마이스터학교에서 교육받은 마이스터가 직접 만든 소시지와 햄, 육가공품을 파는 정육점이면서 고기요리를 하는 식당이기도 하다. 유병관·정건호 공동대표는 ‘고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고기 요리를 해주는 곳’ ‘생활 속의 정육점’ 등을 블루메쯔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블루메쯔는 독일 바이에른주 란츠후트에 있는 바이에른육가공마이스터학교와 제휴한 유일한 한국 분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바이에른육가공마이스터학교 한국 분교를 거쳐간 이들은 155명에 달한다. 주로 일요일에 매장에서 교육이 진행된다.

식당은 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9시 운영된다. 메뉴는 다양한 부위를 4주간 건조 숙성시킨 스테이크와 고기파이, 슈바인스학세, 슈니첼, 파스타 등이다. 코스로는 메뉴 구성이 매일 달라지는 ‘호기심 스테이크 코스’(3만원·5만원)가 있다.

설지연/정연일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