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탑의 나라 미얀마…그들의 미소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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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동남아시아의 마지막 보석'
미얀마 바간~만달레이~인레
'동남아시아의 마지막 보석'
미얀마 바간~만달레이~인레
비행기는 늦은 밤에서야 양곤국제공항에 바퀴를 내려놓았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첫 비행기를 타고 냥우국제공항으로 향했다. 1시간20분 동안의 비행. 냥우국제공항에 도착해 거리로 나오니 동남아시아 특유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흔히 미얀마를 ‘황금의 도시’라고 부른다. 눈부신 사원의 모습과 보석 같은 미소를 띤 사람들. 왜 미얀마가 동남아의 마지막 보석인지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전통의상 롱지 입고 타나카 바른 사람들
첫 목적지는 냥우 시장이었다. 냥우는 바간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도시다. 바간은 바간 왕조와 불교의 주요 유적지가 있는 ‘올드 바간’, 휴양시설이 자리잡은 ‘뉴 바간’, 행정청과 시장 등 도시의 주요 기능이 몰려 있는 냥우 지역으로 구분된다. 냥우에는 그다지 볼 만한 것은 없지만 전통시장인 냥우 시장은 많이 찾는다.
시장 입구부터 상인들이 팔꿈치를 잡아 끈다. 얼굴에 바르는 타나카를 뺨에 슬쩍 발라주고 선물이라고 내밀고는 1달러를 달라고 계속 쫓아다닌다. 미얀마 사람들이 외모에서 다른 동남아 사람들과 구분되는 점은 얼굴에 바른 타나카다.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로 타나카라는 나무의 가지를 돌에 갈아 가루를 낸 뒤 물과 섞어 바른다. 직사광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고 보습효과도 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 중 절반은 이 타나카를 바르고 있다.
시장에는 롱지를 입고 타나카를 바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롱지는 미얀마 전통의상이다. 치마처럼 생겼는데 발목까지 내려온다. 남자들이 입는 것은 파소, 여자들이 입는 것은 타메인이라고 부른다. 보기에는 스윽하고 입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입으려고 하면 좀 어렵다. 매듭 묶기가 쉽지 않다.
타나카를 얼굴에 발라준 소녀는 아직도 팔꿈치를 잡아끌며 1달러를 달라고 조르고 있다. 주고 싶지만 지갑을 버스에 두고 왔다. “미안해, 난 돈이 없어.” 소녀는 약간 실망한 눈빛으로 바지 주머니에 타나카 하나를 넣어준다. “돈 없어도 돼. 이건 그냥 선물이야. 미얀마를 여행하려면 필요할 거야. 햇볕이 따갑거든.”
문득 일본의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서 본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후지와라가 양곤을 여행하던 중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이 두 명이 그의 등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후지와라는 그 아이들이 소매치기일까 의심하며 배낭을 꼭 안고 국수를 다 먹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 갈 길을 갔다. 후지와라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저 아이들은 소매치기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땡볕 아래에서 쌀국수를 먹는 이방인이 너무 더울까 봐 그들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줬던 것이다. 나는 바간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타나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 하나인 바간
바간은 미얀마 이라와디강 동쪽에 있는 도시다. 11~13세기 버마족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 바간왕조를 세웠다. 2000여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아득한 들판을 메우고 서 있다. 바간의 수많은 불교 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르드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옛날 바간에는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많은 탑과 사원이 있었습니다.” 띤윈투가 서툰 한국말로 띄엄띄엄 말했다. “안타깝게도 2011년과 2016년 큰 지진이 나면서 많은 불탑이 무너졌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바간에는 고고학 구역이 있다.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하다. 불탑은 이곳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불탑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원 안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잔다. 여행자들은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를 빌려 탑과 탑 사이를 메뚜기처럼 건너다닌다. 가이드북에는 “바간에서는 사방 어디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도 반드시 불탑을 볼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2만5000원 정도 하는 프리패스를 산다. 이것만 있으면 5일 동안 바간의 사원을 돌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쉐지곤(Shwezigon) 파고다. ‘성지에 세운 불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종 모양의 탑이 서 있는데 이 탑은 바간 불탑의 어머니로 불린다.
바간의 불교 유적 가운데 훼손된 것이 많다. 1975년 대지진 때 많은 불탑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군부정권이 복원 작업을 벌였지만 중구난방이었다. 유네스코가 아직 바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거부하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1105년 지어진 아난다 사원(Ananda Pagoda)은 건축미가 가장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돼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중 하나이기도 하다.
▶키플링이 노래한 ‘황금의 도시’ 만달레이
이튿날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갔다. 만달레이는 바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거리는 삼륜오토바이와 자동차, 마차로 북적였다. 시인 키플링이 노래했던 만달레이는 찾아볼 수 없다. 미얀마 정중앙에 있는 만달레이는 약 200만 명이 넘게 사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미얀마가 19세기 중엽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수도였다. ‘황금의 도시’로도 알려졌던 이 도시는 19세기에 버마왕국 최후의 왕족이 건설했다. 키플링은 1890년 몰메인에 며칠 머물고 ‘만달레이 가는 길’이라는 시를 썼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렀다. 서양인들이 만달레이에 대해 갖는 로망은 키플링과 프랭크 시나트라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달레이를 찾은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왕궁이다.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뿌라에서 이곳으로 천도하고 지었다. 성벽의 높이가 8m나 된다.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때 영국군은 왕궁을 클럽으로 이용해 수치심을 안겨줬다. 1942년 일본군이 함락했을 때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왕궁은 1990년 복구된 것이다. 높이 33m의 전망대에 오르면 왕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우베인 다리도 유명하다. 타웅타만(Taungthamn) 호수를 가로지르는 1.2㎞ 다리다. 1850년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다. 당시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아 궁전을 짓다 남은 티크목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버티던 다리기둥은 양식사업을 위해 호숫물을 가두는 바람에 썩기 시작해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하고 있다. 다리 기둥 수는 무려 1086개에 달한다.
쿠도더 사원도 특별한 곳이다. 사원 경내에는 하얀색 탑이 무려 729개나 있다. 탑마다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안치돼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Biggest Book)’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핫스폿으로 불리는 곳이다.
▶20여 곳의 수상마을이 있는 인레호수
다음날 다시 인레(Inle) 호수로 향했다.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의 리조트에 체크인하고 다시 배를 30분이나 타고 나가 점심을 먹었다. 샨족 전통 요리라고 했는데 중국 광둥요리와 비슷했다. 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있다. 호수 주변에는 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의 넓이는 충주호의 두 배쯤(116㎢) 된다. 길이는 22㎞, 폭 11㎞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스무 곳에 달한다. 미얀마에는 160여 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가는데, 이곳 인레호수에는 샨족과 인타족, 파오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는 부족은 인타족이다. 미얀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타족의 75%인 8만여 명이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쳐서 고기를 잡고 배를 타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 발은 배 위에 딛고 노를 다른 발 장딴지에 끼워 젓는데,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통옷을 입고 삿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관광객에게 돈을 받고 보여주기 위해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어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평상복을 입고 그물질에 열중이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 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대부분의 인타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티크 나무를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수상가옥을 짓는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 위 상점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연줄기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만드는 마을, 은세공 상점, 목이 긴 카렌족 가옥 등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여자는 관광객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팔려 하고 남자들은 의자에 누워 꽁야를 씹고 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테마파크 같다.
나는 연줄기에서 뽑은 실로 만든 자주색 스카프 하나를 7000원에 샀다. 이런 마을에 가다 보면 늘 뭔가를 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뭐라도 이들의 삶에 보탬이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질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정도 스카프를 하고 있었는데 내 검은색 티셔츠의 목 부분에 자주색 물이 들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여행이라는 행위에는 현지 상품을 바가지 쓰고 사는 것도 포함된다.
미얀마=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 정보
인천국제공항에서 미얀마 양곤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미얀마의 정식 명칭은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우기가 끝나는 5월부터 9월 중순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시차는 2시간30분. 통화는 짯으로, 1000짯(MMK)은 약 800원. 100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맞아떨어진다. 사원이나 탑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맨발이어야 한다. 양말과 덧신도 허용되지 않는다. 신고 벗기 편한 샌들이 편하다. 2018년 10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관광비자에 한해 30일 무비자를 허용한다. 연장은 불가. 비용이 넉넉하다면 항공 이동을 추천한다. 버스 이동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바간~만달레이는 6시간, 인레~양곤은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모힝가는 생선 국물을 우려내 만든 미얀마식 쌀국수다. 양파 레몬그라스 생강 파 마늘 바나나 무줄기 등을 함께 넣어 먹는데, 베트남 태국 라오스에서 먹던 쌀국수와는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처음 맛보는 이들은 약간 비린 육수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2~3일 미얀마에 머무르다 보면 아침부터 모힝가를 찾게 된다.
▶전통의상 롱지 입고 타나카 바른 사람들
첫 목적지는 냥우 시장이었다. 냥우는 바간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도시다. 바간은 바간 왕조와 불교의 주요 유적지가 있는 ‘올드 바간’, 휴양시설이 자리잡은 ‘뉴 바간’, 행정청과 시장 등 도시의 주요 기능이 몰려 있는 냥우 지역으로 구분된다. 냥우에는 그다지 볼 만한 것은 없지만 전통시장인 냥우 시장은 많이 찾는다.
시장 입구부터 상인들이 팔꿈치를 잡아 끈다. 얼굴에 바르는 타나카를 뺨에 슬쩍 발라주고 선물이라고 내밀고는 1달러를 달라고 계속 쫓아다닌다. 미얀마 사람들이 외모에서 다른 동남아 사람들과 구분되는 점은 얼굴에 바른 타나카다. 일종의 자외선 차단제로 타나카라는 나무의 가지를 돌에 갈아 가루를 낸 뒤 물과 섞어 바른다. 직사광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고 보습효과도 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 중 절반은 이 타나카를 바르고 있다.
시장에는 롱지를 입고 타나카를 바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롱지는 미얀마 전통의상이다. 치마처럼 생겼는데 발목까지 내려온다. 남자들이 입는 것은 파소, 여자들이 입는 것은 타메인이라고 부른다. 보기에는 스윽하고 입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입으려고 하면 좀 어렵다. 매듭 묶기가 쉽지 않다.
타나카를 얼굴에 발라준 소녀는 아직도 팔꿈치를 잡아끌며 1달러를 달라고 조르고 있다. 주고 싶지만 지갑을 버스에 두고 왔다. “미안해, 난 돈이 없어.” 소녀는 약간 실망한 눈빛으로 바지 주머니에 타나카 하나를 넣어준다. “돈 없어도 돼. 이건 그냥 선물이야. 미얀마를 여행하려면 필요할 거야. 햇볕이 따갑거든.”
문득 일본의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서 본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후지와라가 양곤을 여행하던 중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이 두 명이 그의 등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후지와라는 그 아이들이 소매치기일까 의심하며 배낭을 꼭 안고 국수를 다 먹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 갈 길을 갔다. 후지와라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저 아이들은 소매치기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땡볕 아래에서 쌀국수를 먹는 이방인이 너무 더울까 봐 그들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줬던 것이다. 나는 바간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타나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 하나인 바간
바간은 미얀마 이라와디강 동쪽에 있는 도시다. 11~13세기 버마족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 바간왕조를 세웠다. 2000여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아득한 들판을 메우고 서 있다. 바간의 수많은 불교 사원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르드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옛날 바간에는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많은 탑과 사원이 있었습니다.” 띤윈투가 서툰 한국말로 띄엄띄엄 말했다. “안타깝게도 2011년과 2016년 큰 지진이 나면서 많은 불탑이 무너졌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바간에는 고고학 구역이 있다.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하다. 불탑은 이곳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불탑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원 안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잔다. 여행자들은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를 빌려 탑과 탑 사이를 메뚜기처럼 건너다닌다. 가이드북에는 “바간에서는 사방 어디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도 반드시 불탑을 볼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2만5000원 정도 하는 프리패스를 산다. 이것만 있으면 5일 동안 바간의 사원을 돌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쉐지곤(Shwezigon) 파고다. ‘성지에 세운 불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종 모양의 탑이 서 있는데 이 탑은 바간 불탑의 어머니로 불린다.
바간의 불교 유적 가운데 훼손된 것이 많다. 1975년 대지진 때 많은 불탑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군부정권이 복원 작업을 벌였지만 중구난방이었다. 유네스코가 아직 바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거부하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1105년 지어진 아난다 사원(Ananda Pagoda)은 건축미가 가장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돼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중 하나이기도 하다.
▶키플링이 노래한 ‘황금의 도시’ 만달레이
이튿날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갔다. 만달레이는 바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거리는 삼륜오토바이와 자동차, 마차로 북적였다. 시인 키플링이 노래했던 만달레이는 찾아볼 수 없다. 미얀마 정중앙에 있는 만달레이는 약 200만 명이 넘게 사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미얀마가 19세기 중엽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수도였다. ‘황금의 도시’로도 알려졌던 이 도시는 19세기에 버마왕국 최후의 왕족이 건설했다. 키플링은 1890년 몰메인에 며칠 머물고 ‘만달레이 가는 길’이라는 시를 썼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렀다. 서양인들이 만달레이에 대해 갖는 로망은 키플링과 프랭크 시나트라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달레이를 찾은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왕궁이다.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뿌라에서 이곳으로 천도하고 지었다. 성벽의 높이가 8m나 된다.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때 영국군은 왕궁을 클럽으로 이용해 수치심을 안겨줬다. 1942년 일본군이 함락했을 때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왕궁은 1990년 복구된 것이다. 높이 33m의 전망대에 오르면 왕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우베인 다리도 유명하다. 타웅타만(Taungthamn) 호수를 가로지르는 1.2㎞ 다리다. 1850년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다. 당시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아 궁전을 짓다 남은 티크목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버티던 다리기둥은 양식사업을 위해 호숫물을 가두는 바람에 썩기 시작해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하고 있다. 다리 기둥 수는 무려 1086개에 달한다.
쿠도더 사원도 특별한 곳이다. 사원 경내에는 하얀색 탑이 무려 729개나 있다. 탑마다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안치돼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Biggest Book)’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핫스폿으로 불리는 곳이다.
▶20여 곳의 수상마을이 있는 인레호수
다음날 다시 인레(Inle) 호수로 향했다.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의 리조트에 체크인하고 다시 배를 30분이나 타고 나가 점심을 먹었다. 샨족 전통 요리라고 했는데 중국 광둥요리와 비슷했다. 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있다. 호수 주변에는 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의 넓이는 충주호의 두 배쯤(116㎢) 된다. 길이는 22㎞, 폭 11㎞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스무 곳에 달한다. 미얀마에는 160여 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가는데, 이곳 인레호수에는 샨족과 인타족, 파오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는 부족은 인타족이다. 미얀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타족의 75%인 8만여 명이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쳐서 고기를 잡고 배를 타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 발은 배 위에 딛고 노를 다른 발 장딴지에 끼워 젓는데,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통옷을 입고 삿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관광객에게 돈을 받고 보여주기 위해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어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평상복을 입고 그물질에 열중이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 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대부분의 인타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티크 나무를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수상가옥을 짓는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 위 상점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연줄기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만드는 마을, 은세공 상점, 목이 긴 카렌족 가옥 등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여자는 관광객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팔려 하고 남자들은 의자에 누워 꽁야를 씹고 있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테마파크 같다.
나는 연줄기에서 뽑은 실로 만든 자주색 스카프 하나를 7000원에 샀다. 이런 마을에 가다 보면 늘 뭔가를 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뭐라도 이들의 삶에 보탬이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질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정도 스카프를 하고 있었는데 내 검은색 티셔츠의 목 부분에 자주색 물이 들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여행이라는 행위에는 현지 상품을 바가지 쓰고 사는 것도 포함된다.
미얀마=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 정보
인천국제공항에서 미얀마 양곤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한다. 미얀마의 정식 명칭은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우기가 끝나는 5월부터 9월 중순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시차는 2시간30분. 통화는 짯으로, 1000짯(MMK)은 약 800원. 100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맞아떨어진다. 사원이나 탑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맨발이어야 한다. 양말과 덧신도 허용되지 않는다. 신고 벗기 편한 샌들이 편하다. 2018년 10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관광비자에 한해 30일 무비자를 허용한다. 연장은 불가. 비용이 넉넉하다면 항공 이동을 추천한다. 버스 이동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바간~만달레이는 6시간, 인레~양곤은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모힝가는 생선 국물을 우려내 만든 미얀마식 쌀국수다. 양파 레몬그라스 생강 파 마늘 바나나 무줄기 등을 함께 넣어 먹는데, 베트남 태국 라오스에서 먹던 쌀국수와는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처음 맛보는 이들은 약간 비린 육수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2~3일 미얀마에 머무르다 보면 아침부터 모힝가를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