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23)] 동물에게도 법적 권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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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에 관한 역사적 판결이 2014년에 내려졌다. 아르헨티나 항소법원이 오랑우탄 산드라에게 신체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법원은 산드라가 불법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한 ‘비인간 인격체(non-human person)’로서 기본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20년간 동물원에 갇혔던 산드라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이송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동물보호법에 따른 판결로, 법원은 “인간에 의해 잔혹행위를 당했을 때로 한정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더 획기적인 판결은 2016년 아르헨티나에서 나왔다. 멘도사주 법원은 침팬지 세실리아가 ‘물건’이 아니라 ‘비인간 인격체’로서 브라질 영장류 보호지역으로 보내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동물의 인신보호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재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408년 프랑스 왕국에서는 두 건의 동물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에서 돼지들이 아동살해 혐의로 기소돼 교수형을 당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세시대부터 19세기까지 유럽에서는 200여 건의 동물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 회부된 동물은 주로 돼지, 고양이, 황소였다.
놀라운 것은 동물 재판이 인간 재판에서 진행되는 법적 절차를 그대로 따랐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동물을 의식이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판결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재판 목적은 달랐다. 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동물을 다스릴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한 신의 의지와 우주질서를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동물에 대한 생각 바꾼 '거울 실험'
오늘날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인지동물학의 발달이다. 과거 인간은 자신들만이 자아를 의식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런 믿음은 1970년 심리학자 고든 갤럽의 거울 실험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거울에 익숙한 네 마리의 침팬지를 마취한 다음 눈썹을 붉게 염색했다. 정신이 돌아온 침팬지가 거울을 보자 인간처럼 자신의 눈썹을 매만졌다. 침팬지는 거울 앞에 앉아 이빨을 정리하고 코딱지를 파내고 머리를 다듬는 등 인간과 같은 행동을 했다.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인식능력을 보인 것이다. 이 실험 이후 동물행동 연구가들은 침팬지뿐 아니라 오랑우탄, 코끼리, 돌고래, 유럽까치도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둘째, 동물보호에 대한 대중의 여론과 관심이 급증한 점이다. 이미 19세기에 영국을 필두로 독일, 프랑스에서 동물학대 금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법제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1978년 유네스코는 ‘세계 동물 권리선언’을 공포했다. 세계인권선언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된 이 선언은 ‘모든 동물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동물을 인위적으로 죽여야 할 때는 순식간에 처리해 동물이 불안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2009년 유럽연합(EU)이 채택한 리스본 조약은 동물은 지각이 있는 존재로서 동물 복지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규정했다. 이 조항에 따라 회원국은 국내법을 개정했다.
법인격 부여까지는 이르지 못해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덴마크, 이스라엘에서는 동물의 강제 사육이 금지됐다. 독일, 벨기에, 덴마크, 오스트리아, 그리스에서는 서커스에서 야생동물을 이용하는 것이 금지됐고 영국, 오스트리아, 덴마크는 모피 제조 및 매매를 금지했다. 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는 ‘생명의 존엄성’을 연방헌법에 명시하고 동물을 학대할 경우 가혹한 처벌을 하는 등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동물당이 결성돼 동물의 복지와 권리를 대변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의 여러 대학에서는 ‘동물법’ ‘동물윤리’ 등의 수업과 학위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에게 법인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남미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법원은 동물에 대한 인신보호영장 청구를 기각하고 있다. 2015년 캘리포니아 법원은 사진작가의 사진기로 셀카를 찍은 마카크 원숭이 나루토의 저작권 소유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동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어떤 동물에게 어떤 권리를 인정할지 불분명하다. ②오랑우탄, 침팬지 등 고등 유인원에게 권리를 인정하면 의료 발전에 방해가 된다. ③가축을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④자의식과 인지능력이 권리 부여의 기준이라면 인공지능(AI)에도 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약 7만 년 전부터 시작된 인지혁명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유인원을 제압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됐다. 그러나 현시대를 ‘인류세’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인류가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심각하다. 특히 동물의 종과 개체 수가 재앙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더 획기적인 판결은 2016년 아르헨티나에서 나왔다. 멘도사주 법원은 침팬지 세실리아가 ‘물건’이 아니라 ‘비인간 인격체’로서 브라질 영장류 보호지역으로 보내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동물의 인신보호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재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408년 프랑스 왕국에서는 두 건의 동물 재판이 열렸다. 이 재판에서 돼지들이 아동살해 혐의로 기소돼 교수형을 당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세시대부터 19세기까지 유럽에서는 200여 건의 동물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 회부된 동물은 주로 돼지, 고양이, 황소였다.
놀라운 것은 동물 재판이 인간 재판에서 진행되는 법적 절차를 그대로 따랐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동물을 의식이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판결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재판 목적은 달랐다. 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동물을 다스릴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한 신의 의지와 우주질서를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동물에 대한 생각 바꾼 '거울 실험'
오늘날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인지동물학의 발달이다. 과거 인간은 자신들만이 자아를 의식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런 믿음은 1970년 심리학자 고든 갤럽의 거울 실험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거울에 익숙한 네 마리의 침팬지를 마취한 다음 눈썹을 붉게 염색했다. 정신이 돌아온 침팬지가 거울을 보자 인간처럼 자신의 눈썹을 매만졌다. 침팬지는 거울 앞에 앉아 이빨을 정리하고 코딱지를 파내고 머리를 다듬는 등 인간과 같은 행동을 했다.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인식능력을 보인 것이다. 이 실험 이후 동물행동 연구가들은 침팬지뿐 아니라 오랑우탄, 코끼리, 돌고래, 유럽까치도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둘째, 동물보호에 대한 대중의 여론과 관심이 급증한 점이다. 이미 19세기에 영국을 필두로 독일, 프랑스에서 동물학대 금지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법제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1978년 유네스코는 ‘세계 동물 권리선언’을 공포했다. 세계인권선언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된 이 선언은 ‘모든 동물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동물을 인위적으로 죽여야 할 때는 순식간에 처리해 동물이 불안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2009년 유럽연합(EU)이 채택한 리스본 조약은 동물은 지각이 있는 존재로서 동물 복지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규정했다. 이 조항에 따라 회원국은 국내법을 개정했다.
법인격 부여까지는 이르지 못해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덴마크, 이스라엘에서는 동물의 강제 사육이 금지됐다. 독일, 벨기에, 덴마크, 오스트리아, 그리스에서는 서커스에서 야생동물을 이용하는 것이 금지됐고 영국, 오스트리아, 덴마크는 모피 제조 및 매매를 금지했다. 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는 ‘생명의 존엄성’을 연방헌법에 명시하고 동물을 학대할 경우 가혹한 처벌을 하는 등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동물당이 결성돼 동물의 복지와 권리를 대변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의 여러 대학에서는 ‘동물법’ ‘동물윤리’ 등의 수업과 학위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에게 법인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남미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법원은 동물에 대한 인신보호영장 청구를 기각하고 있다. 2015년 캘리포니아 법원은 사진작가의 사진기로 셀카를 찍은 마카크 원숭이 나루토의 저작권 소유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동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어떤 동물에게 어떤 권리를 인정할지 불분명하다. ②오랑우탄, 침팬지 등 고등 유인원에게 권리를 인정하면 의료 발전에 방해가 된다. ③가축을 식용으로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④자의식과 인지능력이 권리 부여의 기준이라면 인공지능(AI)에도 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약 7만 년 전부터 시작된 인지혁명으로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유인원을 제압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됐다. 그러나 현시대를 ‘인류세’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인류가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심각하다. 특히 동물의 종과 개체 수가 재앙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