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듣는 윤석열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질의 듣는 윤석열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한방 없이 끝나는 듯 했던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반전으로 마무리됐다.

청문회 내내 친한 동료검사의 형이 받던 경찰 수사에 관여한 적도, 변호사를 소개한 적도 없다고 거듭 주장한 윤 후보자의 진술을 뒤집을 녹음파일이 공개된 것이다.

청문회 분위기를 바꾼 건 윤 후보자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된 인터뷰 파일이었다.

8일부터 시작해 9일 새벽까지 이어진 청문회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윤 후보자가 친한 검사인 윤대진 검찰국장의 친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개입했는지 여부였다.

이 사건은 2013년 윤대진 검찰국장의 친형 윤우진씨가 육류 수입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 해외로 도피했고, 몇 개국을 전전하다가 체포돼 강제 송환됐는데 22개월 후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사안이다.

야당 의원들은 윤 후보자가 윤우진씨에게 검찰 출신의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했는지 반복해 캐물었다. 하지만 윤 후보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런데 8일 밤 11시 40분쯤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가 2012년 윤 후보자와 기자가 나눈 전화통화 녹음파일이 공개됐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뉴스타파의 녹음 파일에서 윤 후보자(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는 “윤우진씨가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이라 대검 중수부 연구관을 지낸 이남석 변호사에게 윤우진씨를 만나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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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자는 녹음파일에서 윤우진씨를 잘 아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잘 알죠. 대진이 형이니까. 대진이하고 나하고 친형제나 다름이 없다보니까…”라고 말했다.

윤 후보자는 또 “‘이 사람(윤우진씨)한테 변호사가 일단 필요하겠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이 양반하고 사건 갖고 상담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중수부 연구관 하다 막 나간 이남석에게 윤우진씨를 한번 만나봐라…”고 말했다.

윤 후보자는 이어 “내가 이남석이한테 (윤 전 서장에게) 문자를 넣어주라고 그랬다. ‘윤석열 부장이 보낸 이남석입니다’, 이렇게 문자를 넣으면 너한테 전화가 올 거다. 그러면 만나서 한 번 얘기를 들어봐라”고 말했다.

윤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녹음 파일이 공개되자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본인 목소리가 맞다고 인정했다.

야당 의원들은 윤 후보자가 하루종일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몰아세웠다.

김진태 의원은 “이 기형적인 사건과 윤 후보자가 연결되는 접점이다. 변호사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이렇게 거짓말을 한 사람이 어떻게 검찰총장이 되겠나. 명백한 부적격자”라고 비판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윤 후보자가 하루종일 말한 게 거짓말로 드러났다”며 “청문위원으로서 우롱당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여당인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조차 “녹취 파일 내용과 (청문회에서) 말한 내용이 다르다”며 “잘못 말한 것 같은데 사과해야 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180도 달라진 야당의 힘 실린 공세에 윤 후보자는 “변호사를 선임시켜준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변호사는 자기(윤 국장) 형제들이 결정했고 저는 변호사 선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변호사가 최종적으로 선임이 안 됐기 때문에 변호사 ‘소개’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저런 말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사건 수임에 대한 소개를 한 적이 없다”며 “윤대진 검사를 보호하려는 마음도 있어서 가서 얘기나 들어보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후보자는 “7년 전에 통화한 내용이어서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을 수 있고, 여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저 말이 팩트가 아닐 수가 있다”면서 “오해가 있다면 명확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야당이 지적한 변호사법 위반은 어떤 조항일까. 변호사법 36조는 ‘재판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소속 공무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기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취급 중인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의 수임에 관해 당사자 또는 그 밖의 관계인을 특정한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에게 소개·알선 또는 유인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윤 후보자는 소개·알선은 변호사가 선임됐을 때 적용되고, 자신은 윤 전 서장 사건에 관계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윤 후보자의 거짓 해명 논란에 위증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행 인사청문회법은 청문회 대상자인 공직후보자가 거짓진술을 해도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하지만 "친형제나 다름 없으니까", "윤대진 검사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변호사 소개를 했다는 윤 후보자의 발언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대쪽 검사로 불려온 그의 이미지에 금이 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