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린 주미 영국 대사의 이메일 유출 파문으로 미국과 영국의 ‘끈끈한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정부에 사실상 대사 교체를 요구하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대사들이 주재국 정부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할 수 있다며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서툴고, 무능하고, 불안정하다”고 비판한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에 대해 “나는 그 대사를 모르지만 그는 미국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거나 존경받지 못했다”며 “우리는 더는 그와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에도 “영국이 미국에 억지로 떠안긴 괴짜 대사는 감동적이지도 않고 매우 멍청한 사람”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의 새 정부가 대럭 대사의 거취에 변화를 가할 것이라는 점을 내비쳤다”고 해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는 한 외교 만찬에 대럭 대사가 초청받았다가 갑자기 ‘초청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대럭 대사) 초청 취소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와 더는 상대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가운데 이뤄졌다”고 전했다. 대럭 대사를 외교 활동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트윗을 통해 “나는 영국과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다뤄온 방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며 “그와 그의 대표자들이 얼마나 엉망진창을 만들었는가”라고 메이 총리까지 걸고넘어졌다. 그러면서 “아주 멋진 영국을 위해 좋은 소식은 그들이 곧 새 총리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비꼬았다.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관리에 의해 비난받은 데 대해 분노하면서 메이 총리까지 공격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맹공’에도 영국 정부는 대럭 대사를 옹호하고 나섰다. AFP통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 대변인은 이날 “우리는 이번 유출에 대해 미국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면서도 “동시에 대사들이 솔직하고 꾸밈없는 정치적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럭 경은 계속해서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유출된 부분은 (양국의) 친밀한 관계와 우리의 존경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럭 대사의 트럼프 행정부 평가가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대럭 대사가 2017년부터 최근까지 본국에 보낸 이메일 보고서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입수해 지난 6일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대럭 대사는 보고서에서 “백악관은 유례없이 고장 난 상태”라며 “트럼프 대통령 치하에서 분열돼 있다”고 묘사했다. 이어 “이 행정부가 더 정상적이고, 덜 예측불가능하고, 덜 분열되고, 외교적으로 덜 어설프며, 덜 서투르게 될 거라고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피 튀기는 내분과 혼돈이 있다는 언론 보도는 대부분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실패한 인물로 인식해서는 안 되며 재선을 향한 길이 있다”고 평가했다.

대럭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6년 11월에도 “(트럼프 당선인은) 아웃사이더이고, 실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보고서를 보낸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 홍역을 치렀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