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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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이 빠르게 늘면서 정부의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수입이 줄어드는데도 씀씀이를 늘린 영향이다. 지난 4년간 이어진 ‘세수 호황’이 끝났는데도 정부가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만큼 나라살림이 빠른 속도로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수는 줄어드는데 씀씀이는 늘어

9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 7월호’에 따르면 올 1~5월 국세 수입은 139조5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140조7000억원)보다 1조2000억원 줄었다. 법인세를 제외한 모든 세목에서 수입이 감소했다. 지난해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덕분에 올 1~5월 법인세 수입(40조1000억원)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조원 늘었다. 반면 △소득세(-2000억원) △부가가치세(-4000억원) △교통세(-6000억원) △관세(-3000억원) △기타(-1조2000억원)는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4년 동안 매년 12조~28조원 국세 수입이 늘던 세수 호황이 사실상 끝난 것이다.
세수 호황 끝났는데 나랏돈 씀씀이 폭증…재정수지 빠르게 악화
수입은 줄었지만 씀씀이는 오히려 늘었다. 올 1~5월 지출액은 235조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조6000억원 증가했다. 나랏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5월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685조4000억원으로 작년 말(651조8000억원) 대비 33조6000억원 불었다. 올 들어 5개월 동안 증가한 중앙정부 채무는 작년 한 해 동안 늘어난 빚(24조4000억원)보다 많다.

재정수지 악화 역시 예정된 수순이었다. 올해 1~5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19조1000억원 적자를 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는 36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둘 다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크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활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예산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한 탓에 일시적으로 재정적자가 증가했다”며 “연말 통합재정수지는 당초 전망치(6조5000억원 흑자)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재정적자 대폭 확대될 수도”

경제 전문가들의 눈은 2020년에 쏠려 있다. 올해 기업실적이 꺾인 여파가 내년 세수에 반영되면서 재정건전성 지표도 빠르게 뒷걸음질칠 것으로 예상돼서다. 법인세는 각 기업이 전년도에 벌어들인 수입을 토대로 다음해 3~5월에 내는 만큼 올해 반도체 불황 등에 따른 법인세 감소는 내년 세수에 반영된다. 여기에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가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이어 다른 분야로 확산되면 국내 기업 실적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실적 악화는 성과급 축소로 이어져 소득세 세수 감소를 낳고, 주머니가 얇아진 직장인들이 소비를 줄이면 부가가치세 세수도 쪼그라들게 된다.

정부와 여당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최근 국민계정 통계 기준연도가 2010년에서 2015년으로 바뀌면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8.2%에서 35.9%로 낮아진 점을 들며 “재정을 더 풀 여력이 생겼다”고 강조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500조원이 넘는 ‘슈퍼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군불을 때고 있다. 각 부처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내년 예산(498조7000억원·작년보다 6.2% 증가)에 더 많은 사업을 끼워 넣어 규모를 키우겠다는 얘기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와 여당은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와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 등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경기를 살린다며 나랏돈을 퍼줄 생각만 한다”며 “잘못된 처방을 따랐다가는 ‘경기 부양’이란 약효 대신 ‘재정건전성 훼손’이란 부작용만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