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키우는 안일함
위기는 두 종류로 나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돌발적인 위기와 사소한 작은 변화가 쌓여 생기는 점진적 위기다. 어느 것이든 조직과 조직원을 위협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둘 다 챙겨야 마땅하다. 만약 모두 챙기기 어렵다면 어느 것을 먼저 챙겨야 할까. 점진적 위기다. 돌발적인 위기는 예측하기 어렵고 발생 빈도도 낮다. 하지만 점진적 위기는 다르다. 위기 발생 전에 사소하지만 작은 신호를 보낸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다. 자세히 보면 갑자기 찾아온 위기가 아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위안부 협정 파기 선언, 2018년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 친일 적폐청산 등이 위기의 발단이다. 곳곳에서 작은 신호가 감지됐다. 한·일 통화 스와프 재개는 물 건너간 지 오래고, 일본 외무성은 한국 소개 문구에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부분을 삭제했다. 방위성은 ‘안보상의 이익을 공유하는’이라는 기존 표현을 지웠다.

더 큰 예고도 있었다. 지난 3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한국에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 100여 개의 제재 안을 마련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리더라면 이때부터 긴장했어야 했다.

하지만 대처는 미흡했다. 왜 그랬을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최근 뉴스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뭘까. 안일함이다. ‘이때까지 별일 없었으니까 괜찮겠지’ 또는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하며 수수방관한 안이한 태도가 위기를 증폭시킨다. 비슷한 사례가 많다.

아주 가까운 사례가 있다. ‘제2의 스타일난다’를 꿈꾸던 ‘매출 1700억원대 임블리’ 사태다. 여성 온라인 쇼핑몰 중 후발주자였지만 브랜드 대표 모델 겸 인플루언서가 팬층을 빠르게 확보하며 매출이 급상승했다. 화장품 브랜드 ‘블리블리’의 인기에 힘입어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입점하고 면세점에도 납품하는 등 확장일로였다.

그런데 올해 1월 초 ‘호박즙에 곰팡이가 생겼다’는 한 소비자 불만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 회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환불을 거부하고, 문제가 된 호박즙만 교환해주겠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화가 난 소비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안티 계정을 만들면서 사태는 급속도로 커졌다.

그동안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까지 소비자 불만이 쏟아졌다. 화장품 성분, 의류, 잡화 등에 대한 불만이 일파만파로 올라왔다. ‘막힌 단추 구멍은 째서 쓰세요’, ‘가방 양쪽 끈 길이 다른 건 잘라서 쓰시면 돼요’라는 식으로 무성의하게 대응했음이 드러났다. 결국 호박즙 사태는 탈세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회사는 면세점 퇴출, 매출 60~70% 급감, 대표 쇼핑몰 ‘탐나나’ 폐업, 집단 소비자 소송 등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위기를 키우는 안일함
리더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임계점’이다.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한계치에 이르는 순간 예상치 못한 큰 변화가 일어난다. 마치 온도가 0도에 도달하는 순간 물이 얼음으로 변화하는 것과 같다. ‘작은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작은 변화가 별것 아닐지 몰라도 언제 갑자기 악성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위기는 미리 작고 사소한 신호를 보낸다. 작은 변화를 ‘괜찮겠지’ 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태도가 결국 위기를 키운다.

현명한 리더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 임계치에 이르기 전에 미리 대처해 적은 비용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