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48) 잊을 수 없는 패키지 관광의 추억 "왜 할머니는 우리만 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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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즐거운 아이들의 짧은 인생에도 최악의 여행은 있었다.
패키지 관광의 사정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국내든 해외든 여행 계획만 세울라치면 "거기 갈 때 가이드 있어 없어?"를 먼저 묻는다. 없다고 하면 "휴 다행이다"를 외친다. 가이드가 있는 여행은 덥고 힘든 여행, 우리끼리 가면 재밌는 여행으로 잘못된 기억이 남아버렸기 때문이다.
올 여름 휴가 계획을 짜다가 또다시 소환된 3년 전 동남아 관광의 경험.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친정 부모님 모시고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마냥 "내년쯤 가지 뭐. 올해는 일단 우리 가족끼리"라고 앞날을 기약하기만 했다.
어느 날 결국 마음먹고 예약해서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일주일 전 갑작스럽게 아빠가 뇌출혈로 수술대에 오르시게 됐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후유증도 없었지만 그때 깨달았다. "아 부모님이 마냥 기다려주시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연로하신 부모님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셔서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가까운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가자고 제안 드렸다.
한번쯤은 사양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돌아온 아빠의 쿨한 대답은.
"일본은 가봤으니 됐고 태국을 한 번도 못 가봤다."
'네네 그래야죠 ^^'
부모님과의 첫 여행이고 남편 없이 아이 둘까지 대동하려니 이동이 편한 패키지 여행상품이 좋겠다 싶어 서둘러 예약했다.
악어쇼 레퍼토리는 어쩜 10년 전이랑 조금도 달라지질 않았는지.
아이들도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냄새나고 덥고 지루해서 혼이 났다.
얼굴은 벌겋게 익은 아이들은 연신 물만 찾아대고 이미 자유여행으로 태국에 와서 물놀이만 실컷 해본 기억이 있는 아이들은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를 내버려 두고 가이드에 이끌려 이곳저곳 땡볕 아래 끌려다녀야 하는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끝도 없이 보채기만 하는 아이들을 여행 내내 달래야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패키지 관광은 워낙 저렴하다 보니 여행 마지막 날 정도에는 악어쇼 보고 파인애플 망고 농장 견학한 후 오후 내내 쇼핑센터 도는 코스가 있다.
시뻘건 얼굴의 아이들은 "더워 더워!! 덥다고! 왜 이번 여행은 이렇게 가이드랑만 다녀야 해?"라고 짜증을 냈다. 착한 가격에 여기저기 관광 다니는 혜택이 있으니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30분 동안 라텍스 설명하는 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아무거라도 사지 않으면 여기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겠구나'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다 찾은 건강기능식품 매장. 가이드분은 "로열젤리 시식하면 꼭 드셔보세요. 맛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대요"란다. 오 신기.
시원한 쇼핑센터 돌자니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도 많고 흥겹던 차에 로열젤리 시식을 한다길래 얼른 손을 들었다.
'짠맛이 나면 위가 안 좋고, 신맛이 나면 어떻고' 설명을 들으며 한 스푼 먹었는데 먹자마자 목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배까지 아파지기 시작.
설명하는 분께 말씀드렸더니 '위장이 안 좋으신가 봐요'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얼마 전 내시경 했을 땐 괜찮았는데'라고 하자 "로열젤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염증까지 없애줍니다"라고 확신을 갖고 말씀하셨다.
아 정말인가 싶어 참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지고 잠시 후 목이 부어서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구토가 나서 화장실 달려갔다가 의자에 쓰러져 누워있다를 반복.
나 한 명 때문에 다른 일행들까지 버스에서 기다리니 하염없이 그러고 있을 수도 없어 억지로 버스에 올랐는데 점점 호흡이 가빠졌다.
뱃속은 화닥화닥 타들어가고 숨은 가쁘고 그 와중에 버스는 보석상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현지 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급히 이송됐고 다행히 한국말을 통역해 주는 직원분이 있어서 '로열젤리 먹고 호흡곤란, 복통, 구토 증세가 생겼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배도 꾹꾹 눌러보고 청진기도 소리도 들어보고 하더니 어이없게도 '식중독' 진단을 내렸다.
로열젤리 먹기 전에는 아무 이상 없었다고 해봤지만 의사 선생님은 '식중독' 진단을 철회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몇 시간 뒤면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상황이라 베드에 누워서 구토 억제 주사와 링거를 맞고 있는데 그제서야 아이들과 부모님의 행방이 걱정됐다.
현지 여행사 측에 물어보니 일정대로 다음 코스인 발마사지와 야경 투어를 돌고 계신다는 것.
겨우 숨도 쉴 수 있게 돼서 가족들과 상봉한 나.
반가움도 잠시. 부모님은 야경 투어고 뭐고 딸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셨고 철모르는 아이들까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응급실에 실려간 후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너네가 엄마를 여행 내내 들볶으니까 엄마가 이렇게 아픈 것 아니냐. 왜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냐'고 혼을 내셨던 것.
아직 모든 부분에서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라 더운 나라 여행 내내 내가 이것저것 챙겨주고 하는 모습이 부모님 눈에는 마냥 딸이 괜히 여행 와서 고생하는구나 여겨지셨던 순간 이런 소동까지 빚어지니 그 화가 엉뚱하게 아이들에게 향했던 것이다.
올 여름 휴가 얘기를 하다가 당시 엄마가 로열젤리 알레르기로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그때 우리만 억울하게(?) 혼이 났다'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할머니 너무해.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 때문에 엄마가 아프다고 하고. 우리를 괜히 혼내고."
"할머니는 딸인 엄마가 안쓰럽고 걱정돼서 그러신거야."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나중에 너네가 결혼해서 아이 낳았는데 그 애들이 너네 힘들게 하면 나도 그 손주들 혼내줄 거야."
"정말? 흐흐흐흐흐."
애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고 나는 친정엄마를 힐난했다. 친정엄마는 "너도 맨날 피곤한데 극성스러운 애들까지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니"하며 글썽이셨다. '아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엄마에겐 영원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존재구나' 싶어 더 이상 내 딸들 혼내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패키지 관광의 사정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국내든 해외든 여행 계획만 세울라치면 "거기 갈 때 가이드 있어 없어?"를 먼저 묻는다. 없다고 하면 "휴 다행이다"를 외친다. 가이드가 있는 여행은 덥고 힘든 여행, 우리끼리 가면 재밌는 여행으로 잘못된 기억이 남아버렸기 때문이다.
올 여름 휴가 계획을 짜다가 또다시 소환된 3년 전 동남아 관광의 경험.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친정 부모님 모시고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마냥 "내년쯤 가지 뭐. 올해는 일단 우리 가족끼리"라고 앞날을 기약하기만 했다.
어느 날 결국 마음먹고 예약해서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일주일 전 갑작스럽게 아빠가 뇌출혈로 수술대에 오르시게 됐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후유증도 없었지만 그때 깨달았다. "아 부모님이 마냥 기다려주시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연로하신 부모님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셔서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가까운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가자고 제안 드렸다.
한번쯤은 사양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돌아온 아빠의 쿨한 대답은.
"일본은 가봤으니 됐고 태국을 한 번도 못 가봤다."
'네네 그래야죠 ^^'
부모님과의 첫 여행이고 남편 없이 아이 둘까지 대동하려니 이동이 편한 패키지 여행상품이 좋겠다 싶어 서둘러 예약했다.
악어쇼 레퍼토리는 어쩜 10년 전이랑 조금도 달라지질 않았는지.
아이들도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냄새나고 덥고 지루해서 혼이 났다.
얼굴은 벌겋게 익은 아이들은 연신 물만 찾아대고 이미 자유여행으로 태국에 와서 물놀이만 실컷 해본 기억이 있는 아이들은 수영장이 있는 리조트를 내버려 두고 가이드에 이끌려 이곳저곳 땡볕 아래 끌려다녀야 하는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끝도 없이 보채기만 하는 아이들을 여행 내내 달래야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패키지 관광은 워낙 저렴하다 보니 여행 마지막 날 정도에는 악어쇼 보고 파인애플 망고 농장 견학한 후 오후 내내 쇼핑센터 도는 코스가 있다.
시뻘건 얼굴의 아이들은 "더워 더워!! 덥다고! 왜 이번 여행은 이렇게 가이드랑만 다녀야 해?"라고 짜증을 냈다. 착한 가격에 여기저기 관광 다니는 혜택이 있으니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30분 동안 라텍스 설명하는 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아무거라도 사지 않으면 여기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겠구나'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다 찾은 건강기능식품 매장. 가이드분은 "로열젤리 시식하면 꼭 드셔보세요. 맛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대요"란다. 오 신기.
시원한 쇼핑센터 돌자니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도 많고 흥겹던 차에 로열젤리 시식을 한다길래 얼른 손을 들었다.
'짠맛이 나면 위가 안 좋고, 신맛이 나면 어떻고' 설명을 들으며 한 스푼 먹었는데 먹자마자 목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배까지 아파지기 시작.
설명하는 분께 말씀드렸더니 '위장이 안 좋으신가 봐요'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얼마 전 내시경 했을 땐 괜찮았는데'라고 하자 "로열젤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염증까지 없애줍니다"라고 확신을 갖고 말씀하셨다.
아 정말인가 싶어 참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지고 잠시 후 목이 부어서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구토가 나서 화장실 달려갔다가 의자에 쓰러져 누워있다를 반복.
나 한 명 때문에 다른 일행들까지 버스에서 기다리니 하염없이 그러고 있을 수도 없어 억지로 버스에 올랐는데 점점 호흡이 가빠졌다.
뱃속은 화닥화닥 타들어가고 숨은 가쁘고 그 와중에 버스는 보석상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현지 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급히 이송됐고 다행히 한국말을 통역해 주는 직원분이 있어서 '로열젤리 먹고 호흡곤란, 복통, 구토 증세가 생겼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배도 꾹꾹 눌러보고 청진기도 소리도 들어보고 하더니 어이없게도 '식중독' 진단을 내렸다.
로열젤리 먹기 전에는 아무 이상 없었다고 해봤지만 의사 선생님은 '식중독' 진단을 철회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몇 시간 뒤면 귀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상황이라 베드에 누워서 구토 억제 주사와 링거를 맞고 있는데 그제서야 아이들과 부모님의 행방이 걱정됐다.
현지 여행사 측에 물어보니 일정대로 다음 코스인 발마사지와 야경 투어를 돌고 계신다는 것.
겨우 숨도 쉴 수 있게 돼서 가족들과 상봉한 나.
반가움도 잠시. 부모님은 야경 투어고 뭐고 딸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셨고 철모르는 아이들까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응급실에 실려간 후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너네가 엄마를 여행 내내 들볶으니까 엄마가 이렇게 아픈 것 아니냐. 왜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냐'고 혼을 내셨던 것.
아직 모든 부분에서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라 더운 나라 여행 내내 내가 이것저것 챙겨주고 하는 모습이 부모님 눈에는 마냥 딸이 괜히 여행 와서 고생하는구나 여겨지셨던 순간 이런 소동까지 빚어지니 그 화가 엉뚱하게 아이들에게 향했던 것이다.
올 여름 휴가 얘기를 하다가 당시 엄마가 로열젤리 알레르기로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그때 우리만 억울하게(?) 혼이 났다'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할머니 너무해.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 때문에 엄마가 아프다고 하고. 우리를 괜히 혼내고."
"할머니는 딸인 엄마가 안쓰럽고 걱정돼서 그러신거야."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나중에 너네가 결혼해서 아이 낳았는데 그 애들이 너네 힘들게 하면 나도 그 손주들 혼내줄 거야."
"정말? 흐흐흐흐흐."
애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고 나는 친정엄마를 힐난했다. 친정엄마는 "너도 맨날 피곤한데 극성스러운 애들까지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니"하며 글썽이셨다. '아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엄마에겐 영원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존재구나' 싶어 더 이상 내 딸들 혼내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