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 리스크로 코너에 몰린 기업들을 향해 정치권은 온갖 규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최대 정치세력이 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단골 메뉴인 ‘재벌개혁’을 내걸고 정치권과 손을 맞잡은 모양새다. 재계에선 “정치권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반(反)기업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법 조항이 너무 포괄적인 데다 사내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에도 정치권이 밀어붙였다는 게 기업들의 호소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성과가 부진한 직원을 독려해도 법 위반이 될 판”이라며 “현장을 잘 모르는 정치권이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법안만 쏟아내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호소했다.

기업들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상법·공정거래법 등 이른바 ‘경제 민주화’ 법안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규제 강화 흐름은 국회에 발의된 법안 수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고용·노동 법안 890개 가운데 규제 강화 법안이 493개로 55.4%를 차지했다.

규제 강화 법안 중에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폐지와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등 노조 세력 확대를 지원하는 법안도 다수 포함돼 있다. 민주노총이 제도 폐지를 주요 과제로 내걸고 있는 안건들이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회사로부터 노조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2010년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면서 함께 도입됐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사측이 소규모 노조 여럿과 별도로 교섭할 때 나올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 다수 조합원을 보유한 대표 교섭단체와 교섭하면 그 효력을 전 직원에게 미치도록 한 제도다.

한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은 “노동계 표(票)를 확보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업들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