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제재로 반도체업계의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력 빼가기’에 나섰다. 중국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업체들도 그동안 한국 업체들이 담당해온 글로벌 주요 업체의 부품 공급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11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업체 푸젠진화는 자사 웹사이트에 D램 연구개발(R&D) 경력사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푸젠진화는 경력 요건으로 ‘10년 이상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험’을 요구했다. ‘1세대(1x)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D램 연구 경험’도 자격 요건으로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3세대(1z) 10나노 D램 개발에 성공한 상태다.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직 제대로 된 D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인력을 빨아들여 바로 10나노대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을 엿볼 수 있다.

D램 제조 핵심 공정인 CVD(화학기상증착법), PVD(물리기상증착법) 공정 연구 경험이 있는 사람도 뽑고 있다. CVD, PVD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얇은 막을 씌우는 증착 작업이다.

푸젠진화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회사 중 하나다. 미국 마이크론과의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서 패한 뒤 미국 기업과 거래가 끊겼고, 이후 존폐 위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경제 보복이 주춤해지자 다시 인재 영입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업체들도 한국 기업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대만 정보기술(IT) 매체들은 애플이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제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 중국 BOE를 새로운 공급사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애플에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애플은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BOE를 새로운 공급 업체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애플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