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韓·日, 수출규제 확전은 파국이다
지난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통제 조치로 한·일 관계에 격랑이 일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수출통제 분야를 포함한 한·일 간 신뢰관계의 훼손”을 이유로 반도체 등 핵심 부품으로 쓰이는 3개 소재의 수출 허가를 엄격히 관리하고, 다음달에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전후 국제무역 질서는 무역자유화를 위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병행해 평화 안보를 위한 비확산·수출통제 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2중 용도 품목과 기술이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거나 테러에 전용될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핵공급국그룹(NSG), 호주그룹,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재래식무기 확산 통제를 위한 바세나르 체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통제 체제에 40여 개국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계나 안경 부품 재료인 티타늄 합금은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부품에도 사용될 수 있어 수출통제 대상이다.

일본의 수출통제 제도는 리스트에 등재된 물품 및 기술에 대한 규제, 리스트에는 없지만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품 및 기술에 대한 상황 허가로 구분된다. 상황 허가는 수출 품목의 무기 전용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별도 허가를 받도록 한 제도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더욱 엄격해졌다. 일본은 한 번 수출 허가를 내주면 3년간 유효한 ‘일반포괄승인 대상국’인 화이트 리스트에 한국 등 27개국을 지정해 왔다. 한국이 이 리스트에서 빠지면 매번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불확실성이 커져 무역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계획적이고 비우호적이다. 장기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국제법을 무시하는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매도하고 있다. 자발적 성격의 수출통제 체제에 따라 한국에 주던 허가면제 특혜를 철회할 뿐 차별적 조치가 아니라는 강변은 신뢰 회복 전까지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일본식의 의지 표현이다. 위축된 다자주의 환경 속에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투자제한과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정치적 이유로 경제 압박을 행사하는 미국과 중국의 일방주의에도 편승하는 모습이다.

양국의 해묵은 갈등은 잠재돼 있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과거사가 정리됐고, 수차례 성명으로 과오를 반성했다면서도 이를 부인하는 이중성도 감추지 않았다. ‘잃어버린 20년’의 좌절을 겪은 경제대국 일본이 중국의 부상 앞에서 예전 같은 여유가 없어진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 역시 정권 교체 때마다 반일 감정을 자극하고 일관성 없는 대일 정책에 경도됐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한·일 관계 악화는 결국 한·미·일 간 전략적 협력 구조를 약화시켜 인도·태평양 지역의 세력 균형에 해를 끼칠 것이다. 양국 정상의 대승적 결단과 정면 돌파가 절실하다.

정치·외교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과거 ‘김대중-오부치 한·일 공동선언’의 정신이 미래를 지향하는 귀감이 될 수 있다. 정상들의 지시 아래 강제징용 등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을 일괄적으로 다루는 고위급 협상팀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원만한 협상을 위해선 일본의 조치 철회가 선결돼야 한다.

한·일 모두 확전을 자제하며 냉정하게 대처해야 할 때다. 정치 선동과 맹목적 애국주의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정치권과 언론이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이유다. 대일보복 조치의 실효성과 함께 한계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WTO 등 국제규범에 호소하면서도 양자적 맞대응에는 신중해야 한다. 미국의 중재도 한·일 간 진정한 대화 없이는 보완적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대일 의존성 탈피에 국력을 쏟아야 한다. 반복적 사죄 요구보다는 진정한 반성에 인색한 일본의 한계를 용서하는 대안을 포함한 창의적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격동하는 전략 지형의 변화 속에서 평화와 번영이라는 대의 추구가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잊자는 것이 아니다. 나치 희생자 앞에 무릎 꿇고 헌화하는 독일 총리의 모습을 일본에서 찾는 일은 미래 세대에 맡기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