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잇따른 기업 담합 비리 사건에 ‘솜방망이’ 처분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공소 시효가 임박해 ‘늑장 고발’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자유시장경제에서 담합은 ‘살해’, 입찰 담합은 ‘존속살해’에 비유될 정도로 심각한 범죄인데 공정위가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정위 담합 사건 '솜방망이 처벌' 논란
담합사건 고발 안 하는 공정위

11일 공정위가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공정위가 처리한 담합 사건은 315건으로 이 가운데 13%인 44건만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가 경고 이상 처분(시정명령, 과징금, 고발 등 포함)을 내려 혐의가 인정된 기업 담합 사건에서 고발 비율은 2017년 39%에서 지난해 28%로 낮아졌다.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고 처리한 담합 사건은 2017년 175건에서 지난해 271건으로 100건 가까이 증가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작년 경고 이상 처분을 받은 담합 사건 157건 중 88%(138건)는 ‘입찰 담합’이었다. 2016년 39건에서 지난해 138건으로 2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작년엔 ‘생활적폐’로 불리는 아파트 하자보수 입찰 담합에 대한 처분이 많았다. 공정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작년에 처리한 사건 중 공소시효나 처분 시한이 임박한 사건이 많았다”며 “공소시효가 지나서 검찰에 고발하지 못한 사건도 상당수”라고 분석했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공정위는 보통 ‘단가 후려치기’에 맞선 납품업체들의 ‘대항적 카르텔(담합)’이나 유효 입찰을 위한 ‘들러리’ 입찰 등의 경우 고발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입찰 담합의 심각성은 법원과 국세청의 1900억원대 정보화사업에서 전·현직 공무원과 기업체 임직원 등 34명을 검찰이 지난달 기소한 사건에서 드러났다. 법원에서 3명을 수사 의뢰하면서 시작한 이 사건은 10년 전(2008~2009년)부터 시작됐다는 점이 밝혀졌고 국세청으로 번졌다. 뇌물, 횡령, 배임수재, 입찰방해,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가 드러나 ‘비리 종합선물세트’를 방불케 했다. 기소 인원 중 절반가량(15명)이 구속됐다.

검찰, “자체 인지 수사하겠다”

담합에 대해 공정위가 경고 이상 행정 처분을 내린 사건은 모두 고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공정위가 ‘전속고발권(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고발권 독점)’을 무기로 고발하지 않거나 늑장 고발하는 등 담합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담합 사건의 법상 공소시효는 5년인데 공정위는 행정처분 시한을 기본 7년, 최대 1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 늑장 고발 사례는 13년6개월 동안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 7800억원대 국제 가격 담합을 저지른 일본 콘덴서업체 사건이다. 올해 초 기소된 이 사건에서 공정위는 공소시효를 불과 3개월 앞둔 작년 10월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3개월 만에 일본케미콘 등 4곳을 기소했지만 나머지 7곳은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하지 못했다.

검찰은 자체적으로 담합 사건 수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공정위가 조사 중인 사안이 아닌 담합 사건은 검찰이 자체 인지해 수사할 수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도 지난 8일 인사청문회 발언에서 “공정한 경쟁질서와 신뢰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 형사법 집행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히는 등 역대 검찰총장 중 이례적으로 공정거래 분야 수사를 강조했다.

한편 재계에선 공정위의 늑장 고발이나 솜방망이 처분이 ‘퇴직자 재취업’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공정위가 기업에 압력을 넣어 퇴직자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줬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지난해 8월 공정위 전현직 임원을 줄줄이 기소했다.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기업만 삼성물산, 삼성카드, LG전자, 롯데쇼핑, KT, CJ, 현대백화점, 농협, 쿠팡 등 10곳이 넘는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기업이나 로펌으로 재취업한 퇴직자와 현직간 접촉을 막고 있지만, 최근 세종과 서울로 이동하는 동안 접촉하는 방법과 공정위 건물 입구에서 접촉하는 방법 등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입찰담합이나 공소시효 1년미만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안대규/이인혁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