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최근 수십 년간 각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온 전설들의 몰락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인기만 많은 게 아니라 영국을 대표하는 전문가였다.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상징하기에 영국 사회가 받은 충격이 작지 않다.
영국에 무슨 일이…금융·요식업·철강 전설들의 잇단 몰락
영국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린 스타 펀드매니저 닐 우드퍼드가 대표적이다. 그가 운용하는 펀드는 대규모 투자손실을 내 고객들의 환매 요청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놓였다. 한때 운용 규모가 102억파운드(약 15조원)에 달했던 이 펀드는 37억파운드(약 5조4000억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지난달부터 한 달 넘게 환매가 중단된 상태인데, 고객들은 언제 투자금을 돌려주냐며 아우성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펀드매니저이기에 투자자들의 실망은 더 컸다. 우드퍼드는 1990년대 말 ‘닷컴버블’ 당시 투자자들에게 미리 투자 위험을 경고하면서 스타 금융전문가 대열에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수익률을 웃도는 높은 이익을 거두며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빌 그로스 전 핌코 회장 등 전설적인 투자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그의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고 점친다. 투자 손실도 손실이지만 이번 일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다. 위기에 처한 그가 환매 중단으로 고객의 돈을 묶어버리자 투자자들은 물론 동종업계 전문가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와중에 우드퍼드를 포함한 고위 경영진이 작년에만 3700만파운드(약 500억원)의 보수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파산 소식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제이미의 이탈리아식당’ ‘바베코아’ 등 올리버가 운영하는 영국 내 식당 체인 25곳이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의 몰락은 영국의 경기 불황과 소비심리 위축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과 산업도 몰락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제조업의 상징인 브리티시스틸은 지난 5월 강제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한때 세계 최고였던 영국 철강산업의 쇠퇴다. 영국 정부는 1967년 여러 철강업체를 합병해 국영 철강사를 세웠다. 브리티시스틸의 모태다. 1988년 다시 회사를 민영화하고 1999년 네덜란드의 철강사와 합병했다. 이후에도 2006년 인도 타타스틸, 2016년 사모펀드인 그레이불캐피털 등으로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경영 정상화에 결국 실패했다.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유럽 지역의 생산기지를 축소하면서 영국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내년 영국 서부 웨일스 지역의 엔진 공장을 폐쇄키로 했다. 1500여 명이 일하는 공장이다. 일본 혼다자동차도 2021년까지 35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영국 스윈던의 생산공장 문을 닫을 예정이다. BMW 등 다른 업체들도 영국을 포함한 유럽 지역에서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영국 자동차산업의 쇠락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영국 자동차업체 벤틀리, 롤스로이스, 미니, 재규어 등이 독일 미국 등에 인수됐을 때도 바닥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의 인력 구조조정안과 공장 폐쇄 계획을 보면 그게 바닥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일각에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불확실성을 쇠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철강업체와 자동차산업의 경우 ‘노딜 브렉시트’가 벌어지면 관세 부활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직접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각각의 실패 요인은 브렉시트, 경영능력 부족, 도덕적 해이, 사회적 풍토 등 아주 복합적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십 년간 명성을 쌓은 영국의 전설들은 몰락하고 있고 떠오르는 신예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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