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IB 넘으려 무리한 확장…부실銀 추락한 도이체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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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대규모 구조조정 나선 獨 최대 은행
대규모 구조조정 나선 獨 최대 은행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위기에 빠졌다. 3년간 11조원이 넘는 손실을 본 데 이어 올 2분기에도 28억유로(약 3조7100억원)의 손실을 냈을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미국 JP모간 및 골드만삭스와 세계 최고 투자은행(IB) 자리를 놓고 다툰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글로벌 금융계에선 도이체방크가 살아나지 못하면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따라 하다 포기
도이체방크는 지난 7일 대규모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9만1500명인 직원 수를 2022년까지 7만4000명으로 줄이고, 740억유로(약 98조원)의 위험자산을 정리하기로 했다. 직원 5명 중 1명을 감원하고 전체 자산의 절반가량을 줄이는 고강도 조치로 평가된다.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크리스티안 제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원점으로 회귀해 고객 거래를 중심으로 한 독일 은행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미국 월스트리트의 ‘IB 따라 하기’를 중단하고,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는 전통적인 은행 형태로 복귀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도이체방크는 IB와 글로벌 주식 매매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해당 부문 인력을 줄일 예정이다. 기업 거래와 자산관리, 금융자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도이체방크가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은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빨리 극복해 2013년까지 JP모간에 이어 세계 2위 IB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파생금융상품을 중심으로 부실이 커지면서 2015년부터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은행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손실을 봤다. 이 기간 당기순손실 규모가 87억7000만유로(약 11조6300억원)에 이른다. 이로 인해 주가가 2007년의 10%로 떨어졌다. JP모간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도이체방크는 비용을 줄여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지만 올 2분기 다시 28억유로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30억유로인 초기 구조조정 비용을 2분기 회계장부에 반영할 것이라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이어 2022년까지 총 74억유로의 구조조정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이체방크가 1999년 미국의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한 뒤 20년간 열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오다 이번에 급진적인 개혁을 하게 됐다”며 “도이체방크가 재기를 위한 마지막 주사위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무리한 확장과 스캔들로 몰락
도이체방크는 1870년 설립 이후 독일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우며 성장했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대변신을 시작했다. 당시 알프레드 헤르하우젠 CEO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영미권의 금융 문화”라며 해외 IB사업을 확장해 월스트리트 IB를 뛰어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89년 영국 IB인 모건 그렌펠을 인수한 데 이어 1999년 미국 8위 은행인 뱅커스트러스트를 사들였다. 이후 은행 내 모든 IB부문이 통합됐고, 개인 및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상업은행(CB) 부문을 축소했다. 직원의 절반이 해외에서 근무하게 됐다.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고위험 IB부문에 규제가 시작되면서 무리한 확장에 제동이 걸렸다. M&A로 사들인 기업을 통해 신사업을 강화했지만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IB부문 손실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도이체방크의 IB 인력은 골드만삭스와 비슷한 3만8300명이지만 수익성은 골드만삭스의 60% 수준에 그친다. 도이체방크의 IB 운영비는 지난해 IB 매출의 95%를 차지했다. JP모간의 이 비율은 55%다. 철저한 인센티브 체제로 돌아가는 영미식 IB 문화와 독일 전통 은행 운영 방식이 충돌하면서 내부 갈등이 발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스크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확장한 결과는 과징금 폭탄으로 돌아왔다. 도이체방크는 2013년 미국 부동산 거품이 절정이었던 2005~2007년 주택저당증권(MBS) 불완전판매 혐의로 14억유로(약 1조86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뒤 미국 금융당국과 협의 끝에 7억유로를 벌금으로 냈다. 2015년에는 리보금리 조작사건으로 25억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17년에는 러시아 자금세탁을 방조한 혐의로 미국과 영국에 총 6억3000만달러를 냈다.
도이체방크발 위기 오나
잇따른 악재로 도이체방크 주가는 급락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은 122억유로(약 16조2000억원)로 3년 전과 비교해 3분의 1토막이 났다. 한때 IB 주도권을 다투던 JP모간 시가총액의 4%도 안 된다. 급기야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유럽 대표 상장회사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지수에서도 빠졌다.
도이체방크는 위기 돌파 카드로 또다시 M&A를 들고 나왔다. 이 은행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8개 은행을 인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홀란드셔뱅크와 독일 우체국은행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위기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이번에는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였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 시도다. 노조와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최종적으로 무산됐다. 단기간에 주가가 급락해 몸값이 떨어진 것도 M&A 실패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이 결렬돼 149년 역사의 독일 은행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게 되자 도이체방크가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는 드라마틱한 계획을 발표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도이체방크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부실이 다른 은행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은 도이체방크와 유럽연합(EU) 국가 내 다른 은행과의 합병을 유도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자산운용사인 DWS와 스위스 UBS의 부분 합병 논의가 나오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합병이 무산될 때를 대비해 기업 및 개인 대출부문을 키워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FT는 “지금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도이체방크가 기업 거래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런던=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월스트리트 따라 하다 포기
도이체방크는 지난 7일 대규모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9만1500명인 직원 수를 2022년까지 7만4000명으로 줄이고, 740억유로(약 98조원)의 위험자산을 정리하기로 했다. 직원 5명 중 1명을 감원하고 전체 자산의 절반가량을 줄이는 고강도 조치로 평가된다.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크리스티안 제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원점으로 회귀해 고객 거래를 중심으로 한 독일 은행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미국 월스트리트의 ‘IB 따라 하기’를 중단하고, 대출해주고 이자를 받는 전통적인 은행 형태로 복귀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도이체방크는 IB와 글로벌 주식 매매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해당 부문 인력을 줄일 예정이다. 기업 거래와 자산관리, 금융자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도이체방크가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은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빨리 극복해 2013년까지 JP모간에 이어 세계 2위 IB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파생금융상품을 중심으로 부실이 커지면서 2015년부터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은행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손실을 봤다. 이 기간 당기순손실 규모가 87억7000만유로(약 11조6300억원)에 이른다. 이로 인해 주가가 2007년의 10%로 떨어졌다. JP모간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도이체방크는 비용을 줄여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지만 올 2분기 다시 28억유로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30억유로인 초기 구조조정 비용을 2분기 회계장부에 반영할 것이라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이어 2022년까지 총 74억유로의 구조조정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이체방크가 1999년 미국의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한 뒤 20년간 열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오다 이번에 급진적인 개혁을 하게 됐다”며 “도이체방크가 재기를 위한 마지막 주사위를 던졌다”고 평가했다. 무리한 확장과 스캔들로 몰락
도이체방크는 1870년 설립 이후 독일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우며 성장했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대변신을 시작했다. 당시 알프레드 헤르하우젠 CEO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영미권의 금융 문화”라며 해외 IB사업을 확장해 월스트리트 IB를 뛰어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1989년 영국 IB인 모건 그렌펠을 인수한 데 이어 1999년 미국 8위 은행인 뱅커스트러스트를 사들였다. 이후 은행 내 모든 IB부문이 통합됐고, 개인 및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상업은행(CB) 부문을 축소했다. 직원의 절반이 해외에서 근무하게 됐다.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고위험 IB부문에 규제가 시작되면서 무리한 확장에 제동이 걸렸다. M&A로 사들인 기업을 통해 신사업을 강화했지만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IB부문 손실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도이체방크의 IB 인력은 골드만삭스와 비슷한 3만8300명이지만 수익성은 골드만삭스의 60% 수준에 그친다. 도이체방크의 IB 운영비는 지난해 IB 매출의 95%를 차지했다. JP모간의 이 비율은 55%다. 철저한 인센티브 체제로 돌아가는 영미식 IB 문화와 독일 전통 은행 운영 방식이 충돌하면서 내부 갈등이 발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스크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확장한 결과는 과징금 폭탄으로 돌아왔다. 도이체방크는 2013년 미국 부동산 거품이 절정이었던 2005~2007년 주택저당증권(MBS) 불완전판매 혐의로 14억유로(약 1조86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뒤 미국 금융당국과 협의 끝에 7억유로를 벌금으로 냈다. 2015년에는 리보금리 조작사건으로 25억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17년에는 러시아 자금세탁을 방조한 혐의로 미국과 영국에 총 6억3000만달러를 냈다.
도이체방크발 위기 오나
잇따른 악재로 도이체방크 주가는 급락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시가총액은 122억유로(약 16조2000억원)로 3년 전과 비교해 3분의 1토막이 났다. 한때 IB 주도권을 다투던 JP모간 시가총액의 4%도 안 된다. 급기야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유럽 대표 상장회사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지수에서도 빠졌다.
도이체방크는 위기 돌파 카드로 또다시 M&A를 들고 나왔다. 이 은행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8개 은행을 인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홀란드셔뱅크와 독일 우체국은행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위기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이번에는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였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 시도다. 노조와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최종적으로 무산됐다. 단기간에 주가가 급락해 몸값이 떨어진 것도 M&A 실패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이체방크와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이 결렬돼 149년 역사의 독일 은행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게 되자 도이체방크가 밑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는 드라마틱한 계획을 발표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도이체방크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부실이 다른 은행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은 도이체방크와 유럽연합(EU) 국가 내 다른 은행과의 합병을 유도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자산운용사인 DWS와 스위스 UBS의 부분 합병 논의가 나오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합병이 무산될 때를 대비해 기업 및 개인 대출부문을 키워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FT는 “지금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도이체방크가 기업 거래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런던=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