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通의 일침 "외교엔 선과 악 없다…냉정한 국익만이 존재할 뿐"
“외교엔 선과 악이 없습니다. 냉정한 국익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사진)은 지난 12일 경기 성남 판교 세종연구소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대응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진 위원은 국내 최고 ‘일본통’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일본 도쿄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세종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9월부터 와세다대와 교토대 등에서 강의 중이며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본 관련 정책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진 위원은 “일본의 반한(反韓) 정서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초계기 레이더 갈등, 욱일기 문제 등으로 그동안 일본에서 한국에 대해 쌓인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오는 21일 참의원(상원) 선거가 끝나면 일본의 보복 조치가 잠잠해질 것이란 예상은 착각이라고 단언했다. 진 위원은 “아베 신조 정권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준비해 왔다”며 “자국 내 반도체 소재기업들이 반발한다 해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에서 삭제하고 보복을 상당 기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중재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진 위원은 “현재 한국과 일본 상황을 보면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 체결 당시와 매우 비슷하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일 간 갈등을 미국 반도체 시장 확대의 기회로 여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세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장악하자 반덤핑 조사에 나섰고, 특허 침해를 빌미로 공격을 개시했다. 이번 일본의 보복 역시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서 한국을 막기 위한 전략에 따라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진 위원은 “한·일이 자체적으로 협상 국면에 돌입하지 않는 이상 미국은 굳이 무거운 중재 부담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나서면 뭐든 해결되리라 믿고 중재를 요청하는 것 역시 사대외교”라고 꼬집었다.

진 위원은 “우리 정부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빨리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5년 한·일 외교문서 공개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법을 제정해 2007년 6300억원의 보상을 했다”며 “문재인 정부도 어떤 역할을 할지 구체적으로 신속히 전해야 ‘일본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분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일본 내 확산된 ‘한국은 국제법적 약속을 무시하는, 신뢰할 수 없는 나라’란 부정적 인식을 없앨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승소 판결과 한국 정부의 교섭 거절로 형성된 반한 여론을 아베 총리가 등에 업고 ‘한국을 제대로 손봐야겠다’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 위원은 일본과의 외교에서 유의할 점으로 “역사와 경제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꼽았다. 그는 “한국엔 반일(反日)이 곧 애국이라는 사람이 많다”며 “이는 한·일 간 역사 문제가 지금 이 시점을 비롯해 어느 특정 시기에 당장 해결될 수 없다는 걸 간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제 문제는 한·일 양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만큼 갈등을 해결하려면 협상과 타협을 통한 조정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진 위원은 “일본과의 외교적 협상에서 이기려면 ‘지일파’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청와대와 외교부 안에 일본 관련 휴민트(HUMINTㆍ인적정보망)가 전무하다”며 “일본 내 사정에 밝지 못하면 정보전에서 이길 수 없고, 향후 경제보복 관련 협상에서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