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출근에 '노 테이블 미팅'까지…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發 혁신·소통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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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 혁신
“고객들을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기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까.”(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소통과 변화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합니다. 소통은 ‘보텀업(아래에서 위)’으로, 혁신은 ‘톱다운(위에서 아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A임원)
○정의선發 소통 혁신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정 수석부회장과 현대차의 본부장급 이상 임원 30여 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 수석부회장이 먼저 던진 화두는 ‘고객’이었다. “고객을 위해 우리가 과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졌다. 임원들은 미리 준비한 보고서 없이 각자의 의견을 쏟아냈다. 턱을 괴고 듣던 정 수석부회장은 간혹 토론 내용을 수첩에 받아 적기도 했다. 현대차에 등장한 ‘라운드테이블 미팅’ 모습이다. 회의실엔 테이블이 없고 의자만 있어 ‘노 테이블 미팅’으로도 불린다. 올 들어 처음 열리기 시작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9월 그룹 경영을 도맡은 후 현대차의 기업문화 혁신 작업이 거듭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소통’ 구조다. 대표적 사례가 라운드테이블 미팅이다. 수출 확대 및 경영전략, 상품 회의 등 매달 여는 정기 임원회의와 달리 이 모임엔 특별한 안건이 없다. 차담회(茶談會) 형식의 토론이 이뤄진다. 주로 업(業)의 본질과 관련한 질문과 토론이 이어진다.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에게 어떤 차를 팔 것인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현대차그룹의 유산 중 무엇을 지키고, 버려야 하는가” 등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제안한 라운드테이블 미팅은 회사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작업과도 맞물린다. 현대차가 지난 2년간 미국과 중국 등 주요 해외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만 의존해온 기존 관행적 판매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게 정 수석부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 같은 토론 모임을 분기 또는 반기마다 정례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을 통해 현대차의 조직문화가 다시 정립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아차도 최근 비슷한 성격의 토론회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의 소통 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현대차가 최근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급체계 단순화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회사는 직원 설문조사 결과까지 공개했다. 상당수 직원은 직급체계 단순화에 공감했다. 회사 안팎에선 인사정책 방향을 놓고 직원들에게 미리 의견을 구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온다. 회사 게시판엔 “이게 바로 변화의 시작인 것 같다”는 댓글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사라지는 관행들
현대·기아차 본사는 올 들어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구내식당 도시락 메뉴도 늘렸다. 기존에는 한 종류밖에 없었는데 이를 여섯 종류로 확대했다. 최근 도시락을 받아가는 직원 수가 늘자 메뉴도 다양화한 것이다. 6개 메뉴 중 하나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채식하는 직원이 많이 늘어 이들을 위한 메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건강을 위해 채식을 선호하는 직원들도 있어 도시락 종류를 다양하게 바꿨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 본사 건물 각층에 있었던 흡연실은 휴게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공간에는 직원들이 읽을 수 있는 책도 비치했다. 직원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가벼운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사옥 내 흡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직원들이 늘어나 흡연실을 없애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늘렸다는 설명이다. 현대차는 사옥 내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개방했다. 지금까지는 보안을 이유로 유선 인터넷만 허용했다. 하지만 직원 사이에서 무선인터넷이 막혀 태블릿PC나 노트북 등을 가지고 회의할 때 불편하다는 의견이 계속되자 이를 바꿨다.
현대차는 올해 초 정 수석부회장이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10대 그룹 중 처음으로 정기공채를 없앴고, 완전 자율복장제도도 도입했다.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직원도 흔히 볼 수 있다. 현대차는 연내 직원 직급을 5단계에서 2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소통과 변화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합니다. 소통은 ‘보텀업(아래에서 위)’으로, 혁신은 ‘톱다운(위에서 아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A임원)
○정의선發 소통 혁신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정 수석부회장과 현대차의 본부장급 이상 임원 30여 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 수석부회장이 먼저 던진 화두는 ‘고객’이었다. “고객을 위해 우리가 과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졌다. 임원들은 미리 준비한 보고서 없이 각자의 의견을 쏟아냈다. 턱을 괴고 듣던 정 수석부회장은 간혹 토론 내용을 수첩에 받아 적기도 했다. 현대차에 등장한 ‘라운드테이블 미팅’ 모습이다. 회의실엔 테이블이 없고 의자만 있어 ‘노 테이블 미팅’으로도 불린다. 올 들어 처음 열리기 시작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9월 그룹 경영을 도맡은 후 현대차의 기업문화 혁신 작업이 거듭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소통’ 구조다. 대표적 사례가 라운드테이블 미팅이다. 수출 확대 및 경영전략, 상품 회의 등 매달 여는 정기 임원회의와 달리 이 모임엔 특별한 안건이 없다. 차담회(茶談會) 형식의 토론이 이뤄진다. 주로 업(業)의 본질과 관련한 질문과 토론이 이어진다.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에게 어떤 차를 팔 것인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현대차그룹의 유산 중 무엇을 지키고, 버려야 하는가” 등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제안한 라운드테이블 미팅은 회사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작업과도 맞물린다. 현대차가 지난 2년간 미국과 중국 등 주요 해외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만 의존해온 기존 관행적 판매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게 정 수석부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 같은 토론 모임을 분기 또는 반기마다 정례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을 통해 현대차의 조직문화가 다시 정립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아차도 최근 비슷한 성격의 토론회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의 소통 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현대차가 최근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급체계 단순화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회사는 직원 설문조사 결과까지 공개했다. 상당수 직원은 직급체계 단순화에 공감했다. 회사 안팎에선 인사정책 방향을 놓고 직원들에게 미리 의견을 구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온다. 회사 게시판엔 “이게 바로 변화의 시작인 것 같다”는 댓글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사라지는 관행들
현대·기아차 본사는 올 들어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구내식당 도시락 메뉴도 늘렸다. 기존에는 한 종류밖에 없었는데 이를 여섯 종류로 확대했다. 최근 도시락을 받아가는 직원 수가 늘자 메뉴도 다양화한 것이다. 6개 메뉴 중 하나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채식하는 직원이 많이 늘어 이들을 위한 메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건강을 위해 채식을 선호하는 직원들도 있어 도시락 종류를 다양하게 바꿨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동 본사 건물 각층에 있었던 흡연실은 휴게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공간에는 직원들이 읽을 수 있는 책도 비치했다. 직원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가벼운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사옥 내 흡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직원들이 늘어나 흡연실을 없애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늘렸다는 설명이다. 현대차는 사옥 내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개방했다. 지금까지는 보안을 이유로 유선 인터넷만 허용했다. 하지만 직원 사이에서 무선인터넷이 막혀 태블릿PC나 노트북 등을 가지고 회의할 때 불편하다는 의견이 계속되자 이를 바꿨다.
현대차는 올해 초 정 수석부회장이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10대 그룹 중 처음으로 정기공채를 없앴고, 완전 자율복장제도도 도입했다.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직원도 흔히 볼 수 있다. 현대차는 연내 직원 직급을 5단계에서 2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