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5일 일본의 경제보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당대표 간 회담을 청와대에 전격 제안했다. 회담 형식에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청와대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형식에 대한 청와대와 황 대표 간 의견차로 번번이 무산됐던 여·야·청 회동이 이번에는 성사될지 주목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 원내대표, 황 대표, 조경태 최고위원.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 원내대표, 황 대표, 조경태 최고위원.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회담 형식 양보한 황교안

황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위기 상황에 정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국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실질적 논의가 가능하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어떤 방식의 청와대 회담이라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의 1 대 1 회담을 고수하던 데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과 5당 대표 간 회담도 수용하냐’는 물음에 “경제를 살리고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돕기 위한 모든 방식에 다 동의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한국당은) 해법을 제시하고 힘을 보탤 자세가 돼 있다”고 했다. 황 대표는 대미·대일 특사 파견을 청와대에 요청하는 동시에 국회 차원의 방미·방일단 추진도 제안했다.

황 대표의 제안에 청와대는 “대통령과 정당 대표 간 회동은 항상 준비돼 있다”며 긍정적 의사를 내비쳤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황 대표 제안이 문 대통령과 5당 대표 간 회동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는 ‘환영한다’ 등의 표현은 쓰지 않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황 대표가 말한 회담의 형식이 뭔지, 의제를 어떻게 정할지 등을 찬찬히 살펴보고 입장을 정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형식 등에 대해) 여야가 논의해 정하는 게 순서”라며 “국회에서 의견을 모아 청와대에 제안한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지금이라도 여야 당대표와 대통령이 모여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일본의 경제보복 등에 대해 초당적 대화가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황 대표가 회동에) 참여하겠다고 한 건 잘한 것”이라며 “여야가 몸과 마음을 합쳐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논평을 통해 “늦은 감이 있지만 황 대표 제안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야 5당 사무총장은 이날 비공개로 만나 18일 여·야·청 회동을 여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대통령 일정을 확인해 16일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

“황 대표, 리더십 위기 타개 의도”

지난 5월 초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방송 대담에서 “5당 대표 회담을 제안한다”고 한 이후 청와대와 한국당은 회담 의제와 형식 등을 놓고 두 달 넘게 힘겨루기를 해왔다. 청와대는 지난달 초 문 대통령과 5당 대표 간 회동 후 황 대표와 별도로 1 대 1 회담을 하는 ‘5+1 회동’을 재차 한국당에 제안했다. 그러나 황 대표가 “문 대통령과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간 회동 후 1 대 1 회담을 하자”고 역제안하면서 논의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 대표가 이달 8일 일본 경제보복을 주제로 한 대통령과 5당 대표 간 회담을 제안한 뒤에도 황 대표는 “정치 이벤트에 야당을 들러리 세울 때가 아니다”며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황 대표가 두 달 만에 입장을 선회한 이유에 대해 한국당 고위 당직자는 “황 대표는 일본 경제보복과 관련해 초당적 논의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대승적으로 회담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이달 초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직후부터 “형식에 상관없이 문 대통령과 회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때마다 당내 일각에서 “청와대에 정국 주도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반론이 나왔지만, 황 대표는 “국익이 우선”이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황 대표의 이번 결정이 그를 둘러싼 ‘리더십 위기’ 논란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당직 인선을 놓고 계파 갈등이 불거지면서 당 안팎에선 황 대표의 리더십이 불안정하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당 지지율 하락 등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한편, 제1 야당 수장으로서 일본 경제보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하헌형/박재원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