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홍콩 사틴 지역 쇼핑몰인 뉴타운 플라자에서 경찰들이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14일 홍콩 사틴 지역 쇼핑몰인 뉴타운 플라자에서 경찰들이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 정국이 갈수록 악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행정 수반이 직접 나서 사과했음에도 시위가 끊이지 않자 홍콩 정부는 최장 3개월의 계엄령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의 부유층들은 시위 장기화에 대비해 자산을 해외로 옮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홍콩 빈과일보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대규모 시위 정국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 사태를 위한 규정인 ‘공안조례’ 제17조에 근거해 계엄령을 발동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조례 제17조는 홍콩 행정장관 직권으로 최장 3개월 동안 계엄령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엄령 발동 시 홍콩 정부는 공공 집회를 금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찰의 명령에 불응하는 시민을 무조건 체포할 권한도 가지게 된다.



홍콩에서 가장 최근 계엄령이 선포됐던 때는 1956년 10월이었다. 10월10일 쌍십절(雙十節) 때 중국 본토에 들어선 공산정권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반대파가 유혈 충돌을 일으킨 ‘쌍십절 폭동’이 발생하면서다.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 59명의 사망자와 44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 측 부상자도 107명을 기록해 홍콩 역사상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됐다.



만약 이번에 홍콩 정부가 계엄령 선포를 결정하게 된다면 홍콩 경제에 미칠 파장이 극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전직 입법회 의원은 “계엄령이 선포될 경우 증시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외국 자본이 대거 이탈해 국제금융 중심지로서의 홍콩의 지위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며 “그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했다.



사태가 더욱 악화할 조짐을 보이자 홍콩의 부유층들은 자산을 해외로 옮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15일(현지시간) 복수의 홍콩 현지 프라이빗뱅킹(PB)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달 송환법 반대 시위가 촉발된 이후 자산의 해외 이전과 관련된 문의가 평소보다 4배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억만장자들 뿐 아니라 자산 수준이 1000만~2000만달러(약 118억~236억원) 가량인 부유층에서 문의가 특히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주로 싱가포르로 자금을 옮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지난 1일 입법회 청사를 일시 점거한 데 이어 지난 14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이어갔다. 지난 9일 캐리 람 장관이 송환법에 대해 “죽었다”고 표현하며 사실상 입법 포기를 선언했지만 1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주말 동안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송환법의 입법이 재차 논의될 수 없도록 이를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 시위에서 최소 47명이 경찰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연행됐던 사실이 밝혀졌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