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업무시간에 영어 가르쳐줘" 지시했다면 '직장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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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설명…하급자도 가해자 될 수 있어
어린 시절 외국에서 자라 영어를 잘하는 직장인 A 씨는 회사 선배들로부터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선배들은 A 씨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지시했다.
A 씨는 업무 시간에 남몰래 회의실에서 선배 몇 명을 앉혀 놓고 영어를 가르쳤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배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A 씨의 부담은 점점 커졌다.
400쪽이 넘는 영어 교재를 스캔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게 다반사가 됐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B 씨는 거래팀에서 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어느 날 팀장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내일 거래처와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며 계약 서류 작성을 B 씨에게 지시했다.
B 씨의 업무가 아닌데도 계약 담당자가 연차휴가 중인 탓에 생소한 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정시 퇴근을 하고 가족과 외식을 할 계획이었던 B 씨는 졸지에 야근을 하게 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틀째인 17일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기준을 몇몇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A 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만, B 씨는 해당하지 않는다.
두 사람 다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해진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A 씨의 영어 교육은 업무상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B 씨의 계약 서류 작성은 정황으로 미뤄 '업무상 적정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사적인 지시를 하거나 사생활에 관해 묻는 것도 원칙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직장인 C 씨는 회사 선배로부터 술자리를 만들라는 반복적인 요구에 시달렸다.
선배는 "아직 날짜를 못 잡았냐", "사유서를 써라", "성과급의 30%는 선배 접대용이다" 등의 말로 C 씨를 압박했고 실제로 술자리를 만들라는 지시 이행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게 했다.
D 씨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최근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털어놨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상사는 D 씨와 마주치자 "애인 생겼냐", "뭐하는 사람이냐" 등 연애에 관해 물었다.
C 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사적 용무 지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D 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상사가 성적인 언동으로 볼 만한 짓궂은 질문을 한 것도 아닌 만큼, 직장 생활 중 발생하는 통상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근무시간 외에 회사 밖에서 일어난 일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E 씨의 상사는 일과가 끝난 밤중에 술에 취해 팀원들이 쓰는 모바일 메신저에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는 글을 올리곤 했다.
팀원들이 답을 안 하면 그는 "왜 답을 안 하느냐"는 문자를 올리며 다그쳤다.
F 씨는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회사 동료를 만났다.
서로 동창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사람은 옛날얘기를 하다가 말다툼을 하게 됐다.
E 씨의 사례는 퇴근 이후 온라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반면, F 씨의 사례는 순전히 개인적인 갈등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해도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반드시 상급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등한 직급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측면의 사회적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학교 출신이 다수인 회사에서 다른 학교 출신인 사람을 따돌린다면 사회적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하급자도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업무 능력을 널리 인정받는 하급자가 사내 평가의 우위를 이용해 상급자의 지시를 사사건건 무시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하급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인정되려면) 상대방이 저항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큰 수준의 '관계의 우위'가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법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고 대응 조치를 해야 할 사람은 사용자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일 경우 해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대표이사가 행위자로 지목돼 피해자가 사내 정식 조사를 요구할 경우 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기업 내 감사나 외부 전문가 등이 조사하고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는 별도 체계를 갖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사업장에서 적절한 조사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진정을 접수한 지방노동관서는 사업장의 법 위반 여부 등이 확인되면 일정 기간을 두고 '개선 지도'를 하게 된다.
사업장이 개선 지도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사내 사건 처리 결과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돼도 지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가해자도 사업주의 징계 조치 등에 불만이 있으면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면 된다.
/연합뉴스
어린 시절 외국에서 자라 영어를 잘하는 직장인 A 씨는 회사 선배들로부터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선배들은 A 씨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지시했다.
A 씨는 업무 시간에 남몰래 회의실에서 선배 몇 명을 앉혀 놓고 영어를 가르쳤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배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A 씨의 부담은 점점 커졌다.
400쪽이 넘는 영어 교재를 스캔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게 다반사가 됐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B 씨는 거래팀에서 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어느 날 팀장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내일 거래처와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며 계약 서류 작성을 B 씨에게 지시했다.
B 씨의 업무가 아닌데도 계약 담당자가 연차휴가 중인 탓에 생소한 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정시 퇴근을 하고 가족과 외식을 할 계획이었던 B 씨는 졸지에 야근을 하게 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틀째인 17일 직장 내 괴롭힘의 판단 기준을 몇몇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A 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만, B 씨는 해당하지 않는다.
두 사람 다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해진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A 씨의 영어 교육은 업무상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B 씨의 계약 서류 작성은 정황으로 미뤄 '업무상 적정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사적인 지시를 하거나 사생활에 관해 묻는 것도 원칙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직장인 C 씨는 회사 선배로부터 술자리를 만들라는 반복적인 요구에 시달렸다.
선배는 "아직 날짜를 못 잡았냐", "사유서를 써라", "성과급의 30%는 선배 접대용이다" 등의 말로 C 씨를 압박했고 실제로 술자리를 만들라는 지시 이행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게 했다.
D 씨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최근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털어놨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상사는 D 씨와 마주치자 "애인 생겼냐", "뭐하는 사람이냐" 등 연애에 관해 물었다.
C 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사적 용무 지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D 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상사가 성적인 언동으로 볼 만한 짓궂은 질문을 한 것도 아닌 만큼, 직장 생활 중 발생하는 통상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근무시간 외에 회사 밖에서 일어난 일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E 씨의 상사는 일과가 끝난 밤중에 술에 취해 팀원들이 쓰는 모바일 메신저에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는 글을 올리곤 했다.
팀원들이 답을 안 하면 그는 "왜 답을 안 하느냐"는 문자를 올리며 다그쳤다.
F 씨는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회사 동료를 만났다.
서로 동창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사람은 옛날얘기를 하다가 말다툼을 하게 됐다.
E 씨의 사례는 퇴근 이후 온라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반면, F 씨의 사례는 순전히 개인적인 갈등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해도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반드시 상급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등한 직급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측면의 사회적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학교 출신이 다수인 회사에서 다른 학교 출신인 사람을 따돌린다면 사회적 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하급자도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업무 능력을 널리 인정받는 하급자가 사내 평가의 우위를 이용해 상급자의 지시를 사사건건 무시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하급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인정되려면) 상대방이 저항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큰 수준의 '관계의 우위'가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법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고 대응 조치를 해야 할 사람은 사용자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일 경우 해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대표이사가 행위자로 지목돼 피해자가 사내 정식 조사를 요구할 경우 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기업 내 감사나 외부 전문가 등이 조사하고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는 별도 체계를 갖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사업장에서 적절한 조사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관할 지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진정을 접수한 지방노동관서는 사업장의 법 위반 여부 등이 확인되면 일정 기간을 두고 '개선 지도'를 하게 된다.
사업장이 개선 지도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사내 사건 처리 결과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돼도 지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가해자도 사업주의 징계 조치 등에 불만이 있으면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면 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