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준비 안 된 치킨게임은 도박이다
후금 황제 홍타이지(청 태종)가 병자호란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인조의 ‘절화교서(絶和敎書)’였다. 인조는 병자년(1636년) 3월(음력) 팔도에 하달한 이 교서에서 후금과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러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듯하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평안감사 홍명구에게 보낸 문서가 마침 본국으로 돌아가던 후금 사신 일행에 탈취돼 홍타이지의 손에 들어갔던 것. 홍타이지는 형제국으로 지내기로 한 정묘년의 맹약을 조선이 먼저 깼다고 증거로 디밀었다.

병자년 섣달 8일, 청나라군 선봉대 300명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병자호란은 47일 만에 끝났다. 그런데 절화교서를 3월에 입수한 홍타이지는 왜 엄동설한에 전쟁을 시작했을까. 산성을 거점으로 지구전을 펼치려는 조선의 허점을 찌르기 위해서였다. 청나라군은 산성을 치지 않고 통과해 곧바로 서울로 진군했다. 겨울전쟁을 택한 것도 압록강이 얼기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구범진,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남한산성에 고립된 조선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갈렸다. 위기 땐 언제나 그렇듯이 명분론과 현실론이 대립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주전파의 주장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삼전도의 굴욕’ 이후 세자와 수많은 백성이 심양에 볼모로 끌려가고 전쟁배상금을 물어낸 것 이상의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것이 분명하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몽진하지 않고 한양을 지키며 결사항전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밀리언셀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쓴 역사저술가 박영규 씨는 “선조의 몽진은 작전상 도주라는 말이 적합하다”고 저서 《조선전쟁실록》에서 주장했다.

‘강(强) 대 강’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무역분쟁을 보며 이런 역사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걱정일까. 일본의 전격적인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시작된 양국 간 갈등은 이미 ‘무역분쟁’을 넘어 ‘무역전쟁’ ‘경제전쟁’으로 규정될 만큼 확전일로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결전 의지를 천명하고 있고,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도 불이 붙었다. 일본은 전략물자 수출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 등 추가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이대로 가면 치킨게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강 대 강' 확전이 능사 아니다

홍타이지는 조선의 절화교서를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자신을 황제로 칭하는 ‘칭제(稱帝)’ 과정에 조선을 동참시켜 명나라를 치기 위한 사전 작업의 하나였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단순히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반발이라고만 하기 어려운 것은 속내가 달라 보여서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의 일본 소외론(재팬 패싱) 극복, 일본을 추격하는 한국 경제력에 대한 견제 등 다목적 포석이라고 많은 국내외 전문가가 진단하고 있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확고한 의지와 각오뿐만 아니라 희생을 감내할 만한 전략, 전술과 힘이 필요하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상대방을 향해 마주 달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상당수 전문가가 양국 간 갈등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상호 양보에 기반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토착왜구’ ‘친일파’라는 비난에 직면하는 게 현실이다. 치킨게임의 과정에서 풍파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이다. 명분을 버려서는 안 되지만 집착해서도 안 될 일이다. 형세가 불리할 땐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이다. ‘강 대 강’으로 가기 전에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는 치킨게임을, 전쟁을 할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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