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갈등 중재 나설 뜻 내비쳐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1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기자들에게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친구이자 동맹”이라며 “양국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겠다”고 말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이에 앞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을 만난 뒤 “우리는 동맹이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관련된 모든 이슈에 관여(engage)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만 “기본적으로 양국이 민감한 이슈를 해결해야 하며, 곧 해법을 찾기를 기대한다”며 적극적인 중재 역할에서는 한발 물러섰다.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의 핵심 동맹인 만큼 양자 관계에 영향을 줄 정도의 적극적인 개입은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차장은 이에 대해 “우리 입장을 자세히 설명했고 스틸웰 차관보가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했다. 美, 관여 의사 밝혔지만…"韓·日이 조속히 해법 찾길"
‘미국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의 방한에 온통 이목이 쏠린 이유다. 청와대가 ‘접견 공간이 공사 중’이라는 해명에 나섰지만 통상 차관보가 청와대를 예방해온 것과 달리 스틸웰 차관보를 만나기 위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외교부를 직접 찾은 것을 두고 한국 정부의 다급함이 엿보인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일 스틸웰 차관보와 40분가량 만난 김 차장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등에 대해 한국 측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스틸웰 차관보에게 “이렇게 도전적이고 어려운 시기에 다양한 레벨에서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며 협력을 당부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우리 측 당국자들과의 연쇄 회동 이후 이뤄진 약식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 두 나라의 해결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한·일 갈등과 관련해 미국 측이 특별한 입장을 밝혀오지 않은 것과 사뭇 분위기가 달라진 셈이다. 아울러 “현재 한·일 관계의 긴장 상황에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 것을 알고 있다”며 “나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일 양국과의 동맹을 모두 강조하며 한쪽 편을 들진 않았다. 그는 “미국은 우리와 가까운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며 “진실은 한·일 간 협력 없인 어떤 중요한 이슈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이 민감한 쟁점을 풀어내야 하며 이를 위한 방안을 찾길 희망한다”며 결국 한국과 일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스틸웰 차관보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맞서기 위한 미국 측 팽창 전략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언급하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잘 조율한다면 더 효율적으로 집행할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만남에서 호르무즈 해협 호위와 관련해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한·일 문제에서 역할을 기대했던 미국 측이 되레 ‘안보 청구서’를 내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사회에서 이처럼 쉽게 우군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한국 정부는 ‘긴급 외신기자 간담회’를 여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같은 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의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로 “애플, 아마존, 델, 소니 그리고 세계 수십억 명의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한·일 양국 마찰이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소 부원장은 “누구 편을 들 수는 없으니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일 뿐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라는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박재원/이미아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