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前 주일대사 "日 수출규제는 투트랙 외교원칙 허문 것"
문재인 정부 첫 주일대사를 지낸 이수훈 전 대사(사진)는 17일(현지시간) 일본의 수출통제에 대해 “한·일 간 상당 기간 합의된 ‘투트랙’ 외교원칙을 허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대사는 이날 미국 워싱턴특파원들과 만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과거사를 직시하면서 경제나 안보 등의 분야에서 미래지향적 협력을 하자’고 연설했고, 이게 대체로 한·일 두 정부의 외교원칙”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사 때문에 일본 정부가 느낀 좌절이 쌓인 건 이해하지만 이것을 이런 식으로 분출하는 건 투트랙 원칙을 허문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사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미국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가 16, 17일 이틀간 워싱턴DC에서 연 비공개 오피니언 리더 세미나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다. 이 전 대사는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분위기에 관해 “초기엔 중립을 유지한다는 입장에서 지금은 우려를 넘어 심각하다는 인식에 도달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처음에는) ‘순전히 한·일 두 나라, 두 정부 사이의 이슈이기 때문에 알아서 잘 해법을 찾으라’는 거였는데, 지금은 그런 단계를 조금 넘어서고 있는 것 같고 그런 분위기가 확실히 감지되고 있다”고도 했다.

한·일 갈등 해결 방안과 관련해 “우리가 피해자이고 일본이 가해자”라며 “일본이 노력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고 원상회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부연했다. 이 전 대사는 ‘일본의 수출통제 조치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암묵적 동의 속에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일본과 한국이 다 동맹국인데 중간에서 (그러는 것은) 균열을 볼지도 모르는 행동”이라며 “있을 수 없고, 우리 내부에서 이런 인식을 하면 곤란하다”고 반박했다.

일본이 제3국을 통한 중재위 구성을 요구하는 데 대해선 “한국 정부도 안 된다는 건 아니었고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현재까지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면서도 “중재위 해법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께서, (강제징용) 피해자께서 공감을 표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사는 경남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외교안보분과위원장을 지냈다. 이어 2017년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주일대사를 지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