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선택이 곧 결말…정형화된 공식 깨부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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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어느 콘텐츠에나 통용되는 ‘불변의 법칙’이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이젠 새로운 법칙이 만들어지고 있다. ‘결말은 당신 마음대로다.’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이 새로운 법칙은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부터 다큐멘터리, 광고까지 스토리가 필요한 곳에 ‘인터랙티브 콘텐츠(Interactive Contents)’가 쏟아지고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작품을 말한다. 단계별로 여러 선택을 하게 되고, 이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말을 받아들게 된다. 넷플릭스가 지난해부터 영화 ‘블랙미러:밴더스내치’와 다큐멘터리 ‘당신과 자연의 대결’을 공개하며 치고 나갔다. 최근엔 유튜브가 뛰어들었다.
지난 15일 유튜브가 공개한 ‘아오르비’는 7분이란 짧은 시간에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매력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라 칭하긴 하지만 광고에 좀더 가깝다. 맥주 브랜드 카스와 함께 만든 점도 그렇다. 그러나 기존 광고는 넘볼 수 없는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주인공부터 영화 ‘기생충’에 나온 배우 최우식이 맡았다. 이야기는 그가 선택이 금지된 국가인 ‘선택통제국’에서 모든 선택이 응원 받는 ‘야쓰랜드’로 탈출할지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냥 살던대로 살자’와 ‘야쓰랜드를 찾아 떠나자’ 중 하나를 골라 터치하면 된다. 그렇게 총 다섯 번의 선택을 하게 된다. 심지어 당근을 살지, 침대 밑으로 숨을지를 고르는 선택지도 있다. 색다른 재미에 조회 수는 2만4000뷰를 넘어섰다.
정형화된 공식을 거부하고 깨부수는 것이 하나의 콘텐츠 트렌드가 돼 가고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창작부터 수용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기존 공식에서 벗어나려 하며 변화의 중심에 섰다. 콘텐츠 주도권을 한번도 쥐어보지 못한 사용자에게 권한을 내줘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전략이다. 사용자는 작품의 판을 흔드는 주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들에 갈곳을 잃었던 대중의 걸음은 이 판타지 앞에 멈춰설 수 밖에 없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몰입도가 높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영화 ‘블랙미러:밴더스내치’는 주인공이 개발한 게임이 어느 정도 성공할지가 결말로 나온다. 좀 더 좋은 결과를 내려면 아침에 어떤 시리얼을 먹고, 버스에서 무슨 음악을 들을지 등 사소한 선택마저도 미션을 수행하듯 집중해서 해야 한다. ‘당신과 자연의 대결’도 영국 출신의 유명 탐험가 베어 그릴스를 내세운 다큐멘터리이지만, 게임과 비슷하다. 작품은 도달해야 할 목표를 먼저 알려주고, 그 목표를 향해 모험하게 한다. 백신을 운반하다 실종된 박사를 찾아야 하는 식이다. 박사를 구하는 과정도 게임처럼 험난하기만 하다. 온갖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며, 위험한 절벽에도 올라야 한다. 바쁜 현대인의 시선을 오래 잡아두기에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싶다.
이런 장점에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업체들도 앞다퉈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네이버는 동화 20여 편을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만들었다. ‘신과 함께’ 등을 만든 덱스터스튜디오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선보인다. 방송에서도 이미 시도가 이뤄졌다. 지난해 MBC가 선보인 예능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는 시청자의 문자투표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야기 전개를 결정했다. 영상 콘텐츠 시장을 넘어 공연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요즘 서울 대학로에선 관객과 결말을 함께 맺는 연극이 잇따르고 있다. 관객과 배우가 토론을 통해 결말을 결정하는 ‘시비노자’, 공연 도중 관객들과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대화를 하며 의견을 실시간 중계하는 ‘#나만빼고’ 등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동안 콘텐츠마다 비슷한 전개와 결말이 반복되는 걸 보며, 이 말을 위로삼아 왔다. 창작자도, 사용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인터랙티브 콘텐츠라고 해서 모든 것이 새로울 순 없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 하나의 콘텐츠만으로도 조금은 다른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의지가 쌓이면 커다란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이제 하늘 아래 새로운 것도 있다는 걸 증명할 때가 온 것 같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이 새로운 법칙은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부터 다큐멘터리, 광고까지 스토리가 필요한 곳에 ‘인터랙티브 콘텐츠(Interactive Contents)’가 쏟아지고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작품을 말한다. 단계별로 여러 선택을 하게 되고, 이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말을 받아들게 된다. 넷플릭스가 지난해부터 영화 ‘블랙미러:밴더스내치’와 다큐멘터리 ‘당신과 자연의 대결’을 공개하며 치고 나갔다. 최근엔 유튜브가 뛰어들었다.
지난 15일 유튜브가 공개한 ‘아오르비’는 7분이란 짧은 시간에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매력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라 칭하긴 하지만 광고에 좀더 가깝다. 맥주 브랜드 카스와 함께 만든 점도 그렇다. 그러나 기존 광고는 넘볼 수 없는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주인공부터 영화 ‘기생충’에 나온 배우 최우식이 맡았다. 이야기는 그가 선택이 금지된 국가인 ‘선택통제국’에서 모든 선택이 응원 받는 ‘야쓰랜드’로 탈출할지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냥 살던대로 살자’와 ‘야쓰랜드를 찾아 떠나자’ 중 하나를 골라 터치하면 된다. 그렇게 총 다섯 번의 선택을 하게 된다. 심지어 당근을 살지, 침대 밑으로 숨을지를 고르는 선택지도 있다. 색다른 재미에 조회 수는 2만4000뷰를 넘어섰다.
정형화된 공식을 거부하고 깨부수는 것이 하나의 콘텐츠 트렌드가 돼 가고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창작부터 수용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기존 공식에서 벗어나려 하며 변화의 중심에 섰다. 콘텐츠 주도권을 한번도 쥐어보지 못한 사용자에게 권한을 내줘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전략이다. 사용자는 작품의 판을 흔드는 주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들에 갈곳을 잃었던 대중의 걸음은 이 판타지 앞에 멈춰설 수 밖에 없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몰입도가 높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영화 ‘블랙미러:밴더스내치’는 주인공이 개발한 게임이 어느 정도 성공할지가 결말로 나온다. 좀 더 좋은 결과를 내려면 아침에 어떤 시리얼을 먹고, 버스에서 무슨 음악을 들을지 등 사소한 선택마저도 미션을 수행하듯 집중해서 해야 한다. ‘당신과 자연의 대결’도 영국 출신의 유명 탐험가 베어 그릴스를 내세운 다큐멘터리이지만, 게임과 비슷하다. 작품은 도달해야 할 목표를 먼저 알려주고, 그 목표를 향해 모험하게 한다. 백신을 운반하다 실종된 박사를 찾아야 하는 식이다. 박사를 구하는 과정도 게임처럼 험난하기만 하다. 온갖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며, 위험한 절벽에도 올라야 한다. 바쁜 현대인의 시선을 오래 잡아두기에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싶다.
이런 장점에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업체들도 앞다퉈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네이버는 동화 20여 편을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만들었다. ‘신과 함께’ 등을 만든 덱스터스튜디오는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선보인다. 방송에서도 이미 시도가 이뤄졌다. 지난해 MBC가 선보인 예능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는 시청자의 문자투표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야기 전개를 결정했다. 영상 콘텐츠 시장을 넘어 공연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요즘 서울 대학로에선 관객과 결말을 함께 맺는 연극이 잇따르고 있다. 관객과 배우가 토론을 통해 결말을 결정하는 ‘시비노자’, 공연 도중 관객들과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대화를 하며 의견을 실시간 중계하는 ‘#나만빼고’ 등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동안 콘텐츠마다 비슷한 전개와 결말이 반복되는 걸 보며, 이 말을 위로삼아 왔다. 창작자도, 사용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인터랙티브 콘텐츠라고 해서 모든 것이 새로울 순 없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 하나의 콘텐츠만으로도 조금은 다른 감동을 선사하겠다는 의지가 쌓이면 커다란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이제 하늘 아래 새로운 것도 있다는 걸 증명할 때가 온 것 같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