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수원 이어 서울·대구서도…전국에서 갭투자에 당하는 피해자 속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집주인 잠적·파산…대리인 나타나 매수 회유하기도
"정보비대칭 줄여야…'전세보증보험'도 개선 시급"
"정보비대칭 줄여야…'전세보증보험'도 개선 시급"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하는 일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구와 수원에 이어 서울 한복판에서도 수백채의 빌라를 소유한 집주인이 자취를 감췄다. 억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은 당장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이들을 구제할 길이 마땅하지 않아 관련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증금 못 돌려줘…차라리 매수하라”
2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강서구에 빌라를 다수 소유한 A씨가 올해 초 잠적하면서 세입자들이 단체행동을 준비 중이다. 임차인들은 입주 당시 1억1000만~1억7000만원가량의 전세보증금을 A씨에게 줬지만 그가 만기를 앞두고 자취를 감추면서 돌려받을 길이 없어졌다. 대부분이 1인가구나 신혼부부다. 이사 날짜까지 받아두고 집을 빼지 못하는 세입자도 있다. A씨 소유 빌라는 일대에만 최소 50여 채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피해자는 “최대 280여 채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빌라의 경우 전체 가구의 절반이 그의 임차인”이라고 전했다.
A씨가 사라지자 돌연 B씨가 대리인을 자처하며 나타났다. B씨는 “집주인의 자금흐름이 막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집이 하나둘 경매로 넘어가고 있으니 차라리 소유권을 이전받아 보증금이라도 지켜라”고 권유 중이다. 그의 말에 수십명의 세입자들이 집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경매가 진행되면 보증금조차 건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B씨는 “세입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선의로 나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유권 이전은 집주인의 주소지에서 진행됐다. 물론 집주인은 없었다. 위임장을 가진 대리인 B씨가 법무사와 함께 소유권 이전을 진행했다. 세입자들의 보증금만큼을 매매가격으로 정한 뒤 명의만 바꾸는 방식이다. 이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부채가 사라진다. 한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전세로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른 임차인은 “임대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지만 계약을 포기해야 했다”면서 “집을 떠안게될 경우 어차피 임대주택에서도 퇴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집주인과 대리인 일당이 핑계로 든 경매는 세입자들을 겁주기 위한 행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된 부동산 가운데 아직까지 근저당이 확인된 사례가 없어서다. 경매 개시 예정인 빌라가 3채 있지만 모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반환소송을 통해 진행 중인 강제경매다.
A씨는 2015년부터 화곡동 일대 빌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연식이 오래된 빌라는 세를 안고 500만~1000만원 정도만 들이는 ‘갭투자’를 통해 매수했다. 신축빌라는 일단 분양계약을 맺었다가 세입자를 구하면 그제서야 잔금을 치렀다. 통상 빌라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80~90%에 육박하다 보니 소액만으로도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다. A씨에게 전문적으로 임차인을 맞춰주는 한 중개업소의 긴밀한 공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 A씨가 인상한 보증금은 500만원 남짓이다. 어떤 경우엔 그의 매수가격보다 세입자가 낸 보증금이 높기도 했다. 시세가 떨어지더라도 되팔 때 차손이 없는 셈이다. A씨는 현금흐름이 막히자 몇몇 빌라를 매각했다. 하지만 만기가 돌아오면서 퇴거하려는 세입자들이 늘자 ‘출구전략’으로 집 떠넘기기를 택한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거래를 맡았던 중개업소가 이때도 세입자들을 회유하는 등 A씨를 긴밀하게 도왔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빌라는 아파트와 비교해 시세 상승폭이 크지 않은 데다 전세금 인상폭도 제한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세차익이 아닌 보증금 전부를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수원 등 전국 곳곳에서 세입자 피해
최근 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웜룸 등 다가구주택 13채를 소유한 임대인 C씨가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도주해 결국 경찰이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접수한 고소장만 90여 건, 피해 금액은 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씨와 거래한 공인중개사무소 20여 곳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비슷한 시기 인근 경산에서도 다가주택 6채를 갖고 있던 D씨가 보증금을 가로채 달아나면서 37억여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수원에선 영통구 일대 원룸 건물 26채를 갖고 있던 임대인 E씨가 사실상 파산하면서 800여 가구의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날릴 처지다. 기하급수적으로 임대 규모를 늘리던 E씨가 대출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게 되면서 건물 8채는 이미 경매로 넘어갔다. E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새로 세입자를 들이기도 했다. 임차인들의 피해 규모는 5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근 삼성전자 직원 50여 명도 피해를 입어 사측이 현황 파악에 나서는가 하면 수원시도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기로 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있어 피해자 지원 TF를 꾸린 뒤 법률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세입자 피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 당산동에선 한 원룸 건물주가 신탁사에 건물을 담보신탁해 대출을 받은 뒤 선순위를 보장하겠다는 말로 임차인들을 꼬드겨 총 100억원대의 재산피해를 냈다. 이 과정에서 건물주 F씨는 전세계약서를 월세계약서로 위조해 신탁사와 금융기관을 속였다. 은행 대출 담당자들은 위조된 계약서에 개인정보가 모조리 누락됐지만 눈여겨보지 않았고 현장 실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대출을 승인했다. 결국 건물주 F씨와 은행 직원들은 사기와 사기방조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F씨가 빚을 갚지 못하자 신탁사에서 공매를 진행하면서 세입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일선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갭투자자가 처음부터 전세 사기를 목적으로 집을 매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자금난 처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갭투자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돈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현금을 별로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집이 다수 생기면 바로 문제가 생긴다. 빌라전문개발업체인 가나건설의 탁현정 이사는 “위험관리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집을 늘린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기존 임차인이 전세자금대출(안심대출)을 받은 경우에는 보증회사가 바로 구상권 행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경매, 파산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보증보험 무용지물…제도 보완 시급”
주택도시보증공사(HUG)과 SGI서울보증이 운영하는 전세보증보험이 세입자들에겐 사실상 유일한 안전장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세보증보험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기관에서 우선 임차인에게 돈을 돌려주는 제도다. ‘깡통전세’ 등의 피해가 잇따르면서 가입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문턱이 높다.
우선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의 70~90% 이내여야 한다. 아파트와 달리 전세가율이 극단적으로 높은 빌라의 경우 보증 자체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거래 사례가 많지 않아 주택가격을 산정하는 것도 애매하다. 등기상 최근 1년 매매가격이 없을 경우 공시가격의 150% 또는 공인중개사에게 확인받은 시세로 가격을 매긴다. 감정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보증신청인이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임대인이 보증기관의 채무자인 경우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것도 제약 가운데 하나다. 갭투자자들의 경우 소유한 부동산이 많기 때문에 임차인들이 가입한 전세보증보험도 여럿이다. 만약 여기서 한 건이라도 보증금 미반환으로 보증기관의 가압류가 이뤄졌을 경우 신규 임차인의 보증보험 가입이 막힌다. 증개축이 이뤄진 불법건축물인 경우에도 세입자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빌라나 단독주택 세입자들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비율이 낮은 편이다. 올 상반기까지 주택 유형별 HUG의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비율은 아파트(71.5%), 다세대주택(13.6%), 오피스텔(6.2%), 다가구주택(4.9%), 단독주택(2.2%), 연립주택(1.6%) 순이다.
전문가들은 애꿎은 세입자 피해를 막기 위해선 관련 제도 손질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집코노미가 단독 보도한 동탄신도시 고의경매 사건의 피해자측 법률대리인인 김학무 법무법인 부원 대표변호사는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정보비대칭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파트의 경우 실거래가 정보를 쉽게 볼 수 있어 임차인들이 적정 시세와 전세가격이 얼마인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지만 빌라나 오피스텔 등 취약계층 주거지의 경우 이에 대한 데이터가 거의 없는 편”이라며 “사전에 적정 전세가율을 따져볼 수 있도록 공시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 임의규정인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며 “보험 심사를 통해 무리한 투자를 한 집주인을 거를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는 전세 건전성을 사전에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2016년 9월 발의했지만 3년째 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HUG 관계자는 “다양한 주택 유형에 대한 전세보증보험 절차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보증 리스크를 고려해 아파트 외 주택에 대한 보증료율 인하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보증금 못 돌려줘…차라리 매수하라”
2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강서구에 빌라를 다수 소유한 A씨가 올해 초 잠적하면서 세입자들이 단체행동을 준비 중이다. 임차인들은 입주 당시 1억1000만~1억7000만원가량의 전세보증금을 A씨에게 줬지만 그가 만기를 앞두고 자취를 감추면서 돌려받을 길이 없어졌다. 대부분이 1인가구나 신혼부부다. 이사 날짜까지 받아두고 집을 빼지 못하는 세입자도 있다. A씨 소유 빌라는 일대에만 최소 50여 채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피해자는 “최대 280여 채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빌라의 경우 전체 가구의 절반이 그의 임차인”이라고 전했다.
A씨가 사라지자 돌연 B씨가 대리인을 자처하며 나타났다. B씨는 “집주인의 자금흐름이 막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집이 하나둘 경매로 넘어가고 있으니 차라리 소유권을 이전받아 보증금이라도 지켜라”고 권유 중이다. 그의 말에 수십명의 세입자들이 집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경매가 진행되면 보증금조차 건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B씨는 “세입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선의로 나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유권 이전은 집주인의 주소지에서 진행됐다. 물론 집주인은 없었다. 위임장을 가진 대리인 B씨가 법무사와 함께 소유권 이전을 진행했다. 세입자들의 보증금만큼을 매매가격으로 정한 뒤 명의만 바꾸는 방식이다. 이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부채가 사라진다. 한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전세로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른 임차인은 “임대아파트에 청약해 당첨됐지만 계약을 포기해야 했다”면서 “집을 떠안게될 경우 어차피 임대주택에서도 퇴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집주인과 대리인 일당이 핑계로 든 경매는 세입자들을 겁주기 위한 행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된 부동산 가운데 아직까지 근저당이 확인된 사례가 없어서다. 경매 개시 예정인 빌라가 3채 있지만 모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반환소송을 통해 진행 중인 강제경매다.
A씨는 2015년부터 화곡동 일대 빌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연식이 오래된 빌라는 세를 안고 500만~1000만원 정도만 들이는 ‘갭투자’를 통해 매수했다. 신축빌라는 일단 분양계약을 맺었다가 세입자를 구하면 그제서야 잔금을 치렀다. 통상 빌라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80~90%에 육박하다 보니 소액만으로도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다. A씨에게 전문적으로 임차인을 맞춰주는 한 중개업소의 긴밀한 공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 A씨가 인상한 보증금은 500만원 남짓이다. 어떤 경우엔 그의 매수가격보다 세입자가 낸 보증금이 높기도 했다. 시세가 떨어지더라도 되팔 때 차손이 없는 셈이다. A씨는 현금흐름이 막히자 몇몇 빌라를 매각했다. 하지만 만기가 돌아오면서 퇴거하려는 세입자들이 늘자 ‘출구전략’으로 집 떠넘기기를 택한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거래를 맡았던 중개업소가 이때도 세입자들을 회유하는 등 A씨를 긴밀하게 도왔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빌라는 아파트와 비교해 시세 상승폭이 크지 않은 데다 전세금 인상폭도 제한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세차익이 아닌 보증금 전부를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수원 등 전국 곳곳에서 세입자 피해
최근 대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웜룸 등 다가구주택 13채를 소유한 임대인 C씨가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도주해 결국 경찰이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접수한 고소장만 90여 건, 피해 금액은 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씨와 거래한 공인중개사무소 20여 곳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비슷한 시기 인근 경산에서도 다가주택 6채를 갖고 있던 D씨가 보증금을 가로채 달아나면서 37억여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수원에선 영통구 일대 원룸 건물 26채를 갖고 있던 임대인 E씨가 사실상 파산하면서 800여 가구의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날릴 처지다. 기하급수적으로 임대 규모를 늘리던 E씨가 대출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게 되면서 건물 8채는 이미 경매로 넘어갔다. E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새로 세입자를 들이기도 했다. 임차인들의 피해 규모는 5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근 삼성전자 직원 50여 명도 피해를 입어 사측이 현황 파악에 나서는가 하면 수원시도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기로 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있어 피해자 지원 TF를 꾸린 뒤 법률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세입자 피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 당산동에선 한 원룸 건물주가 신탁사에 건물을 담보신탁해 대출을 받은 뒤 선순위를 보장하겠다는 말로 임차인들을 꼬드겨 총 100억원대의 재산피해를 냈다. 이 과정에서 건물주 F씨는 전세계약서를 월세계약서로 위조해 신탁사와 금융기관을 속였다. 은행 대출 담당자들은 위조된 계약서에 개인정보가 모조리 누락됐지만 눈여겨보지 않았고 현장 실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대출을 승인했다. 결국 건물주 F씨와 은행 직원들은 사기와 사기방조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F씨가 빚을 갚지 못하자 신탁사에서 공매를 진행하면서 세입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일선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갭투자자가 처음부터 전세 사기를 목적으로 집을 매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자금난 처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갭투자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돈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현금을 별로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속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집이 다수 생기면 바로 문제가 생긴다. 빌라전문개발업체인 가나건설의 탁현정 이사는 “위험관리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집을 늘린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기존 임차인이 전세자금대출(안심대출)을 받은 경우에는 보증회사가 바로 구상권 행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경매, 파산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보증보험 무용지물…제도 보완 시급”
주택도시보증공사(HUG)과 SGI서울보증이 운영하는 전세보증보험이 세입자들에겐 사실상 유일한 안전장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세보증보험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기관에서 우선 임차인에게 돈을 돌려주는 제도다. ‘깡통전세’ 등의 피해가 잇따르면서 가입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문턱이 높다.
우선 전세보증금이 주택가격의 70~90% 이내여야 한다. 아파트와 달리 전세가율이 극단적으로 높은 빌라의 경우 보증 자체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거래 사례가 많지 않아 주택가격을 산정하는 것도 애매하다. 등기상 최근 1년 매매가격이 없을 경우 공시가격의 150% 또는 공인중개사에게 확인받은 시세로 가격을 매긴다. 감정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보증신청인이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임대인이 보증기관의 채무자인 경우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것도 제약 가운데 하나다. 갭투자자들의 경우 소유한 부동산이 많기 때문에 임차인들이 가입한 전세보증보험도 여럿이다. 만약 여기서 한 건이라도 보증금 미반환으로 보증기관의 가압류가 이뤄졌을 경우 신규 임차인의 보증보험 가입이 막힌다. 증개축이 이뤄진 불법건축물인 경우에도 세입자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빌라나 단독주택 세입자들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비율이 낮은 편이다. 올 상반기까지 주택 유형별 HUG의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비율은 아파트(71.5%), 다세대주택(13.6%), 오피스텔(6.2%), 다가구주택(4.9%), 단독주택(2.2%), 연립주택(1.6%) 순이다.
전문가들은 애꿎은 세입자 피해를 막기 위해선 관련 제도 손질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집코노미가 단독 보도한 동탄신도시 고의경매 사건의 피해자측 법률대리인인 김학무 법무법인 부원 대표변호사는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정보비대칭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파트의 경우 실거래가 정보를 쉽게 볼 수 있어 임차인들이 적정 시세와 전세가격이 얼마인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지만 빌라나 오피스텔 등 취약계층 주거지의 경우 이에 대한 데이터가 거의 없는 편”이라며 “사전에 적정 전세가율을 따져볼 수 있도록 공시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 임의규정인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며 “보험 심사를 통해 무리한 투자를 한 집주인을 거를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는 전세 건전성을 사전에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2016년 9월 발의했지만 3년째 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HUG 관계자는 “다양한 주택 유형에 대한 전세보증보험 절차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보증 리스크를 고려해 아파트 외 주택에 대한 보증료율 인하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