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발 규제로 글로벌 가치사슬 깨지며 새 무역전쟁 방아쇠 우려 올 상반기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미중 무역전쟁이 주춤한 가운데 일본이 이달부터 대(對)한국 수출규제에 나서면서 한국 경제 전망이 한층 어두워지고 있다.
일본이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 리스트'(백색 국가)에서 제외한다면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미중 무역전쟁 가라앉나 했더니 일본 경제 보복…韓성장률 전망 줄하향
한국은 올 상반기 미중 무역전쟁을 겪으면서 수출 분야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수출액은 작년 12월부터 7개월째 감소했고 6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3.5% 줄며 3년 5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특히 화웨이(華爲) 제재 등으로 전자기기 시장의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수출 부진이 심화했다.
IHS마킷 글로벌 전자기기 구매관리자지수(PMI)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7개월 연속으로 전 세계 전자기기 분야의 전월 대비 신규주문이 감소하고 있다.
이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한 시기와 겹친다.
이 와중에 일본이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등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하자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2%에 가깝게 낮추며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블룸버그가 이달 43개 IB 등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2.1%였다.
지난달 조사치 2.2%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IHS마킷과 ING그룹이 한국 성장률을 1.4%로 내다보며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가 1.5%, 노무라증권과 데카방크, 모건스탠리, OCBC가 1.8%를 점쳤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전망치는 2.0%다.
◇ '화이트 리스트' 제외 강행하면 韓성장률 전망 추가 하향 조정 가능성 문제는 일본의 제재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난 12일 한일 전략물자 수출통제 담당 실무자 양자 협의에서 우리나라를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오는 24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각의 결정 후 공포하게 된다.
그로부터 21일이 지난 날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양국의 긴장 관계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백색 국가 제외 조치를 강행할 가능성이 커지는 형국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지난 19일 오전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일본 측이 정한 제3국 의뢰 방식의 중재위 설치 요구 시한(18일)까지 한국 정부가 답변을 주지 않은 것에 항의했다.
고노 외무상은 이 만남 직후에도 "한국 측에 의해 야기된 엄중한 한일관계 현황을 감안해 한국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추가 경제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만약 일본이 25일 각의를 열어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하면 효력은 광복절인 내달 15일부터 생길 전망이다.
이럴 경우 한국의 성장률 전망은 추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는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제재가 장기화하면 거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기에 향후 4주간 경과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별도 보고서를 내고 현재는 한국의 성장률을 2.0%로 전망하지만, 양국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서 공급 체인이 심각하게 망가질 경우 성장률이 더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의 조치로 반도체 생산이 10%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2019∼2020년 평균 성장률은 기존 2.1%에서 0.5%포인트 내린 1.6%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고려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8%로 내리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백색 국가 제외 조치 영향이 포함되지 않았다.
◇ 일본발 수출 규제, 새 무역전쟁 방아쇠 되나…세계 경제에도 악영향 세계 경제 타격도 불가피하다.
각국이 원자재와 중간재, 최종재를 수입·수출하며 촘촘한 글로벌 가치사슬을 형성하면서 무역분쟁이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1천270억 달러(약 149조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반도체 D램과 낸드플래시를 사용하는 각종 전자기기도 연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진경제실장은 "한국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일본 기업에도 한국은 중요한 고객"이라며 "한국에 부품·소재를 수출하는 기업은 물론 역으로 파나소닉·소니 등 한국 반도체 수입하는 기업도 타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글로벌 가치사슬이 촘촘하게 연결된 만큼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중국조차도 이득을 본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라지브 비스와스 IHS마킷 아시아태평양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한일 무역 긴장은 새로운 무역 전쟁의 방아쇠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 악영향을 우려했다.
그는 "아시아국가의 수출이 이미 미중 무역 협상과 글로벌 전자기기 신규주문 감소로 강력한 역풍을 맞은 상태에서 일본의 조치가 세계 교역에 긴장을 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몇몇 경제 대국이 무역 제재를 정치적 수단으로 쓰는 일이 늘어난 것이 지난 1년간 세계 교역과 신규 수출 주문을 약화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