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옛 모습을 간직한 지우펀. 땅거미가 지면 수치루를 중심으로 골목 전체가 붉은 빛으로 채워진다.
대만의 옛 모습을 간직한 지우펀. 땅거미가 지면 수치루를 중심으로 골목 전체가 붉은 빛으로 채워진다.
알 듯 모를 듯 친근하면서도 생각보다 아는 게 많지 않은 나라가 대만이다. 남한 절반에 가까운 국토에 인구도 2355만명으로 우리나라 절반인 나라. 근대화 이후 일제 치하의 상처까지 닮아 역사의 한편을 들여다보면 마음에서 자연스레 가까워진다. 그저 둘러만 봐도 대만의 어제와 오늘을 짐작할 수 있는 명소, 진과스(金瓜石)와 지우펀으로 떠나본다. 먹거리 가득한 야시장이 있는 곳, 수도 타이베이는 덤이다.
애니메이션 속 한장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곳
명소로 탈바꿈한 일제의 상처

출발 두 달 전 항공권을 끊고, 이후 숙소를 예약하고 동선을 짜며 기대에 부풀었던 대만, 첫 만남인데 공항에 도착하니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사진을 찍는 나는 여행의 반이 날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비가 오니 마음이 무거웠다. 숙소에 도착하니 빗줄기가 더 굵다. 비 내리는 타이베이보단 멀지 않은 곳이라도 비가 덜한 곳을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일기예보를 보면서 순서를 바꾸다 보니 진과스와 지우펀이 우선순위로 등장했다. 머뭇거림 없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진과스는 타이베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걸리는 외곽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산의 능선을 따라 두 개의 마을로 연결돼 있다. 진과스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전쟁포로들이 일하던 광산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철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금광이 발견되면서 산속에 마을이 생겨나고 금광촌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고. 거대한 금광이 연이어 발견되자 일본군은 금광을 찾아 산의 동굴과 계곡 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금광은 산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발견됐고 능선을 따라 이어진 아랫마을 지우펀까지 금광 도시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오랫동안 금광으로 부흥을 이어가던 진과스와 지우펀은 1970년대에 들어 금의 양이 급격히 줄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금광의 몰락과 함께 마을은 버려졌고 20년 가까이 녹슨 기계와 낡은 시설만 덩그러니 남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이곳이 다시 살아나게 된 건 1990년대 들어 대만 정부가 관광지 개발지역으로 정하면서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산과 계곡, 곳곳에 남아있는 금광시대의 흔적은 외지인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과 특별한 역사 덕분에 진과스와 지우펀은 영화 ‘비정성시’를 시작으로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끌었고 순식간에 대만의 명소로 급부상했다. 오랜 시간을 간직한 볼거리가 많아 대만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가장 먼저 찾는다.

부(富)의 상징 삼국지 관우를 만나다

익살스러운 모습의 수치루 골목 상인
익살스러운 모습의 수치루 골목 상인
진과스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속 마을이라 이곳을 지나는 셔틀버스 및 자가용 등 차량을 이용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택시투어를 이용해 이곳을 찾는 이도 많다. 숙소 인근 타이베이 메인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중샤오푸싱역으로 가면 그곳에 진과스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다.

버스에 올라 2시간 남짓.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발판 삼아 산허리를 돌아올라 지우펀에 멈춰 섰다. 지우펀만 돌아보려면 이곳에 내려도 좋다. 하지만 진과스를 함께 볼 계획이라면 이곳에서 10여 분 더 안쪽에 있는 진과스에 내렸다가 나오면서 지우펀을 둘러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타이베이로 돌아가려면 어차피 진과스에서 지우펀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진과스 버스정류장에서 위쪽으로 중국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를 모신 권제당(勸濟堂)이 있다. 중화권에서는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를 모신 사당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유독 관우는 의(義)와 부(富)를 상징하기도 해서 식당과 상점은 물론 일반 가정에도 종종 관우의 상징물을 둔다고 한다.

금덩이와 광부도시락의 컬래버레이션

진과스 권제당 입구에 있는 향로
진과스 권제당 입구에 있는 향로
권제당 주차장을 지나면서 길이 넓게 트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나무데크로 전망대가 마련돼 있었다. 어깨를 맞대고 능선이 연결된 높지 않은 산이 아름답다. 그 사이로 조붓한 등산로가 마을로 연결돼 있는 것 같아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그렇게 30분 만에 황금박물관에 도착했다.

황금박물관은 2층 규모로 한눈에 봐도 그리 크지는 않다. 1층엔 황금도시로 한창일 때 금을 캐고 추출하던 과정을 조형물과 마네킹 등으로 재현해 전시해놨다. 당시에 쓰인 도구도 곳곳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 2층엔 다양한 금 세공품이 전시돼 있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금붙이가 있으니 발을 디디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 단연 220㎏의 순금. 사다리꼴 육면체 모양의 이 금덩이는 금을 좋아하는 중화민족에겐 최고 인기다. 철로를 따라 10분 정도 따라 걸으면 이곳의 명물인 광공식당에 도착한다. 광부식당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그 당시 광부들이 먹었던 도시락을 요즘 식단으로 재현해낸 음식점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광부도시락이 나왔다. 하얀 맨밥 위에 볶음 양념된 채소가 덮이고, 그 위에 큼직한 고깃덩이가 구워져 올라가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홍등가 골목 따라 애니메이션 속으로

대만 전통차를 마시는 여행객
대만 전통차를 마시는 여행객
차도 옆으로 난 좁은 골목 앞에 사람들이 그득하다. 지우펀으로 향하는 입구다. 이곳은 대만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빼곡히 늘어선 찻집과 음식점, 가판이 볼거리다. 특히 어둠이 내리는 시간 골목을 밝히는 홍등은 이곳의 최고 명물.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골목 안이 온통 붉은 빛으로 채워지면 지우펀을 걷는 사람은 순식간에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아름답고 묘한 이곳 홍등의 정취를 토대로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만들어졌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골목에 들어서니 취두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다양한 기념품과 먹거리로 넘쳐났다. 다만 온갖 음식냄새에 시끌벅적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혼이 쏙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상점마다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리에 붉은 물결이 일렁인다. 아름답다. 수치루(竪崎路)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은 지우펀의 매력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주렁주렁 걸린 홍등으로 채워진 급경사 길이다.

수치루가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찻집에 들어가 차를 한잔 마셨다. 은은한 차향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홍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 어둠이 내려앉은 지우펀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수놓아진 거리를 닮았다.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니 더욱 그랬다.

소소한 볼거리와 먹거리의 향연

타이베이 북부 해안에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예류지질공원에 갈 계획이었으나 비가 너무 와서 포기하고 타이베이 도심 산책으로 예정을 변경했다. 소문난 먹거리가 즐비한 시먼딩(西門町)이다. 이곳은 고대부터 황량한 땅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도쿄의 명소 아사쿠사를 본떠 상업지구로 개발하면서 번창했다. 일제 치하에서는 극장가로 번성했고, 1980년대까지 타이베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불렸다. 이후 타이완 정부에서 타이베이 동쪽을 중심으로 도시개발을 벌여 한때 쇠락했다가 1990년대 들면서 현시 상가와 시에서 보행자 거리를 조성하고 상업지구로 장려하면서 젊은이들의 거리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지하철 시먼역에 도착해 6번 출구로 나가면 대만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쇼핑센터와 백화점, 의류매장과 극장, 음식점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시먼딩에서 미식 산책을 겸한 쇼핑을 하다가 땅거미가 지면서 스린야시장으로 이동했다. 마침 비도 그쳐 공기가 상쾌했다. 이곳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타이완의 대표 야시장이다. 이곳은 시먼딩보다 대중적이면서 대만 특유의 감성을 느끼며 로컬음식과 소소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로 주말에는 평균 5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저렴하지만 풍미 가득한 대만 음식을 먹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신기할 정도로 날것 그대로를 전시한 식재료를 둘러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요리해 내놓은 음식과 함께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더운 여름밤이 시원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날 주전부리와 함께한 야시장 산책은 비와 습기로 불편했던 마음을 씻기며 좋은 기억만 남게 해줬다.

대만=글·사진 이두용 여행작가 sognomedia@gmail.com

여행정보

한국에서 대만까지 비행기로 약 2시간30분 걸린다. 거리가 멀지 않다 보니 다양한 항공편이 있는데,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같은 저가항공부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타이항공 등 여러 항공편이 있다. 타이베이에선 가장 대중적인 지하철 MRT를 시작으로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중장거리인 관광지로 향할 땐 셔틀버스 격인 타이완하오싱을 이용하면 편하다. 이 버스는 타이완 시내에서 대만 주요 관광지를 연결해주는 교통편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원하는 지역을 오갈 수 있어 편하다. 한국어도 지원하는 데다 종종 할인 이벤트도 하니 출발 전에 홈페이지를 확인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