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 회장의 공감'에 영도대교 복원한 신격호를 떠올린 이유
뜻밖이었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의 미래를 위한 키워드로 ‘공감’을 던진 것은.

롯데는 2015년 이후 폭풍과 같은 시간을 버텨야 했다. 경영권 분쟁,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비리수사와 신 회장 구속 등이 이어졌다. 신 회장이 경영진과 뉴롯데의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 20일 끝난 사장단회의가 첫 자리였다. 많은 사람은 ‘디지털, 글로벌 전략’ 등의 키워드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공감'에 영도대교 복원한 신격호를 떠올린 이유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매출보다는 공감을 강조했다. 수익성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봐야 한다고 했다.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신 회장이 던진 공감이라는 화두는 아버지 신격호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맞는 얘기다. 롯데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이는 신격호 시대의 유산이다. 돈은 벌었지만 사회를 위해 쓰는 데는 인색했다. 협력업체에는 인색했다. 지배구조는 복잡했다. 일본 기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신격호가 만든 롯데’의 전부일까. 신격호는 스물일곱에 맨손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껌과 초콜릿을 생산해 큰 기업을 일궜다.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철강산업을 해보겠다는 꿈을 안고. 하지만 정부는 그에게 관광 인프라를 부탁했다. 호텔과 백화점사업을 성공시켰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잠실 롯데월드를 구상한 것도 신격호다. 새로운 명소가 된 123층짜리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그의 의지가 이뤄낸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일도 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고향은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다. 이 지역은 1970년 댐 건설로 수몰됐다. 그는 인근에 별장을 지었다. 1971년부터 매년 5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별장에 모아 마을잔치를 열었다. 돼지머리와 막걸리로 시작한 잔치는 지역 축제가 됐다. 신 명예회장이 기력을 잃은 2014년까지 매년 열렸다. 고향에 대한 애정은 울산과학관 건립으로 이어졌다. 2011년 전국 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울산에만 전문과학관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내가 지어주겠다”고 나섰다. 240억원을 내놨다. 이 과학관 어디에서도 신격호 또는 롯데라는 이름은 볼 수 없다.

부산에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영도대교(사진)다. 영도대교는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가족을 만나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다리 상판이 들리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 도개 기능은 1966년 상실됐다. 노후화 때문이다. 이후 영도다리 재시공을 바라는 부산시민이 많아졌다. 2009년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신 명예회장의 지시로 롯데가 공사비 1100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 명예회장은 올해 99세다. 청년 신격호의 도전과 꿈, 기업가정신 그리고 조용한 사회공헌을 기록하고 이를 청년들과 나누는 일을 생각해 볼 때가 된 듯하다. 그의 아들 신동빈 회장은 마침 공감을 얘기했다. 그 출발을 아버지가 남긴 유·무형 유산을 기반으로 한 ‘신격호재단’으로 해보면 어떨까.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