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를 둘러싸고 이번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맞붙는다. 국제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양측 모두 본국에서 이례적으로 실무 책임자를 급파하는 등 총력전에 나섰다.

실무자 급파한 한·일, 23일 WTO서 '정면충돌'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23일부터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WTO 일반이사회에서 발표할 연설문에 ‘일본 정부의 무역 제한 조치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교란시키는 반(反)자유무역 행위라는 점도 강조할 계획이다. 반면 일본은 이번 조치가 안전보장 측면에서의 재검토일 뿐 WTO 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WTO 일반이사회는 164개 회원국 대표가 모여 중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정식 의제로 올라갔다. 한·일 양국은 본국에서 담당자를 파견해 발언하도록 했다. 한국에서는 산업부,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성 국장급 인사가 간다. WTO 회의에서는 주제네바 대사가 발언하는 게 일반적인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조치다.

양국의 대표자 간 설전은 불가피하다. 수출규제 조치 발표 이후 처음으로 양국의 고위급 관료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논쟁을 벌이는 셈이다. 그간 일본은 우리 정부의 국장급 양자협의 요청에 수용도 거절도 아닌 무응답으로 일관해왔다. 앞서 어렵사리 마련한 과장급 양자협의도 설명회로 격을 낮췄다. 이번 WTO 일반이사회를 국제 여론전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이사회에서 당장 의결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켜 여론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 보복 조치가 부당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한국에 동조하는 ‘후원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동시에 일본 측의 추가 무역 제한 조치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를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갈 방침이다. 산업부는 22∼23일께 일본 정부에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과 철회를 촉구하는 이메일 의견서를 보낼 예정이다. 일본은 지난 1일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도 함께 고시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