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원인은 과거사 청산 안한 日
죽창가·국채보상운동은
정책담당자가 할 말 아니다
라종일 전 주일대사(사진)는 지난 17일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한 한·일 갈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가정보원 차장,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거쳐 주일대사(2004~2007년)로 근무했다. 당시 일본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였다.
가천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라 전 대사는 자신의 재임 시절 한·일 관계에 대해 “좋았던 시기”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전 총리 때만 해도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가 살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롯해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 건 분명 일본의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라 전 대사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여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태까진 우리가 일본에 과거의 책임을 묻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이 한국을 향해 ‘약속을 안 지키는 나라’라며 따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반한(反韓) 여론을 통해 ‘강한 일본’ 이미지를 조성하고 있다”며 “자민당과 일본 행정부 내에서 아베 총리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걸 막을 라이벌도 딱히 없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등에서 제기되는 대일 특사 파견에 대해선 “효과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 당시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을 제의했을 때 아베 총리가 받았어야 했다”며 “정상회담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특사를 보낸다고 해서 얻을 게 뭐가 있겠느냐”고 했다.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선 이유로는 “국가 간 정치 문제를 통상압박으로 푸는 게 요즘 국제 정치의 트렌드”라고 짚었다. 라 전 대사는 “일본이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분쟁하자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차단한 전례가 있다”며 “일본도 한국 정부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통상 문제와 첨단기술을 앞세워 국가 간 안보와 정치 문제를 풀려는 시도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한·일 갈등도 이런 현상의 일부”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일부 인사의 ‘국채보상운동’이나 ‘죽창가’ 언급 등에 대해선 “국가 운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말”이라고 일침을 놨다. “그 역사들은 당시 국정 실패 결과로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인데 정책담당자들이 그렇게 말하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라 전 대사는 “한국과 일본이 한 발씩 양보해 외교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국가이자 서로 의지해야 하는 이웃”이라며 “정부 대 정부로서 차분하게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