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쇼플리(미국·사진)는 낙천주의자다. 샷이 잘돼도 웃고, 안돼도 웃는 성격 좋은 선수다. 2017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데뷔한 그는 이번 시즌 2승을 포함해 짧은 기간 통산 4승을 올려 출중한 실력도 입증했다. 그런 그가 단단히 화가 났다. “공정하지 않은 일을 당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18일 북아일랜드 로열포트러시GC(파71·7344야드)에서 개막한 PGA 메이저대회 제148회 디오픈챔피언십(총상금 1075만달러)은 지난해부터 출전 선수들의 드라이버 성능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비거리가 너무 많이 난다. 장비가 의심스럽다”는 각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30명의 선수를 무작위로 골라 대회 개막 이틀 전 클럽 페이스의 탄성과 반발력을 측정했다. 공이 클럽 페이스와 접촉한 시간을 재 불법 여부를 판별하는 ‘CT(characteristic time)’ 기법과 볼 접촉 시간을 100만분의 1초까지 잴 수 있는 고성능 장비를 동원했다.

첫해인 지난해 대회에선 기준 수치에 미달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 테스트에선 유독 쇼플리가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대회장 주변에 소문이 쫙 퍼졌다. 쇼플리가 화가 난 건 통과하지 못했다는 ‘창피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주변 선수들이 농담이지만 ‘사기꾼’이라고 한다. 테스트를 주관한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지 않았다. 게다가 30명만 찍어서 테스트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며 불만을 강하게 제기했다. 양산 제품을 쓰는 게 문제가 됐다면 다른 선수들이 쓰는 제품 중에도 기준에 미달하는 장비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말은 협회로부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는 별수 없이 대회 시작 전 새 드라이버를 구하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가까스로 구한 새 헤드로 치른 첫날 대회 성적은 3오버파. 열네 번의 티샷 중 여섯 번만 페어웨이에 올렸을 뿐이다. “드라이버가 엉망이었다”며 실망한 쇼플리는 부랴부랴 무게를 조금 분산시킨 헤드를 끼워 다시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대성공. 피팅한 드라이버를 들고나간 2라운드에서 그는 데일리 베스트인 6언더파를 쳤다. 3라운드에서도 2타를 추가로 덜어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 그는 이렇게 말했다.

“(테스트 결과는) 다 묻어두기로 했다. 오늘 내 드라이버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기쁘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박상현(36)이 디오픈챔피언십 3라운드까지 공동 19위(4언더파)로 선전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기록한 역대 최고 성적은 2007년 최경주(49)가 달성한 공동 8위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