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은 롯데의 미래 전략 수립을 위한 키워드로 ‘공감’ ‘지속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신 회장이 지난 16일 VCM 참석을 위해 롯데월드타워로 들어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은 롯데의 미래 전략 수립을 위한 키워드로 ‘공감’ ‘지속 가능성’ 등을 제시했다. 신 회장이 지난 16일 VCM 참석을 위해 롯데월드타워로 들어가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이 미래 전략의 키워드로 ‘공감(共感)’을 제시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와 공감하지 못하는 기업은 존재할 수도, 성장할 수도 없다”는 메시지도 함께 내놨다.

신 회장은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간 이어진 하반기 ‘롯데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옛 사장단회의)’ 마지막날 총평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제품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특징 없는 제품과 서비스는 외면받는다”며 “고객, 임직원, 협력사, 사회공동체로부터 롯데가 ‘좋은 일 하는 기업’이란 공감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다.

신 회장은 “투자할 때 수익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함께 환경, 사회적 가치, 거버넌스 등의 요소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롯데 관계자는 “신 회장이 경영권 분쟁,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검찰 수사 등을 겪으며 새로운 기업관을 정리해 이번에 제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기동력 있는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하고, 조직문화 개선을 통해 우수한 젊은 인재 확보와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 '롯데의 길=공감' 제시하다
신동빈 "매출 극대화 같은 정량적 목표만으로는 지속성장 불가능"

“매출 극대화 같은 정량적 목표 설정이 그룹 안정성에 위협이 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말이다.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닷새간 이어진 밸류크리에이션미팅(VCM·옛 사장단회의)을 마친 뒤 롯데의 미래를 얘기하는 자리에서였다. 신 회장은 파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과거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데 급급했지만 이는 단기적 생존 수단이었다”고도 했다. 롯데가 덩치를 키워 재계 5위가 됐고, 수익 중시 경영을 했지만 앞으론 이것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신 회장은 대안으로 “사회와 공감하는 기업”을 제시했다. 5년간 형제의 난 등 온갖 수난을 겪은 뒤 그가 ‘뉴롯데의 비전’을 내놨다는 평가다.
신동빈 롯데 회장 '롯데의 길=공감' 제시하다
“사회와 공감하지 못하면 지속성장 못해”

신 회장은 계열사 발표를 다 들은 뒤 VCM 마지막 날인 20일 총평을 했다. 키워드는 ‘공감’과 ‘사회적 가치’였다. 특히 공감은 그동안 신 회장이 잘 쓰지 않던 단어여서 의외의 메시지라는 게 롯데 관계자들의 평이다.

그는 “롯데는 사회 및 고객과 공감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함께하고, 또 책임을 지는 것이 기업의 공감”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감이 전략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 소비자, 이해관계자들과 공동의 과제를 공감하는 기업의 상품만이 선택받고 이를 통해 브랜드를 유지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신 회장의 이런 발언은 롯데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년간 경영권 분쟁, 검찰 조사,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신 회장 자신이 구속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는 롯데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롯데는 ‘약한 고리’였다. 신 회장은 이런 롯데의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게 롯데 관계자들의 얘기다.

신 회장은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그는 “앞으로 투자할 때 철저한 수익성 검토와 함께 환경, 사회문제, 경영 구조 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배구조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지침이었다.

조직 유연성도 강조했다. 신 회장은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권한을 이양해 기동력 있는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각 계열사에 권한을 최대한 넘겨주고, 성과에 따른 과실을 공유하겠다는 의지다.

‘100억원 있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신 회장은 이번 회의를 앞두고 주요 계열사 대표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3년, 혹은 5년 뒤를 보고 사업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이 평가는 신 회장 혼자만 한 게 아니다. 다른 계열사 대표와 주요 임원들을 참여시켰다. 계열사 기업설명회(IR) 형식이었다. 회의 참석자들에게 매일 100억원의 가상 현금을 지급한 뒤 계열사들의 중장기 전략 발표를 듣고 이 돈을 투자하게 했다. 신 회장을 비롯해 BU장들, 롯데지주 실장급 이상 임원, 각 계열사 대표와 기획임원 등 140여 명이 평가자로 참여했다.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회사 네 곳을 공개했다. 롯데칠성음료 롯데홈쇼핑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이었다. 롯데칠성은 ‘대대적인 가격 공세를 통한 양적 성장’을 버리고, ‘고급 제품으로 제값을 받는다’는 새로운 전략을 내세워 호응을 받았다. 롯데홈쇼핑은 롯데 e커머스(전자상거래)의 미래를 이끌 것이란 내용의 발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은 화학BU 내에서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글로벌 진출과 디지털 전환, 지속 가능 경영 등 모든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지난 5월 미국 루이지애나 공장을 열고 이를 계기로 백악관에서 신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그룹 내 위상이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롯데면세점은 중장기 전략으로 해외 시장 확대를 들었다. 현재 진출해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호주 등을 기반으로 그 인접 국가로 매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롯데는 글로벌 면세점 1위인 스위스 듀프리를 제치고 3년 안에 1등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