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보좌관들이 지난 4월25일부터 26일 새벽까지 국회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는 더불어민주당 당직자와 국회 관계자들을 저지한 후 휴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보좌관들이 지난 4월25일부터 26일 새벽까지 국회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는 더불어민주당 당직자와 국회 관계자들을 저지한 후 휴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법을 만들고 선거판을 흔드는 국회의 ‘숨은 권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의원 한 마디에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신분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불법 유혹에 노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입법 과정의 최전선에 있지만, 고용이 불안정해 의원들의 강권을 거절하기 힘든 위치라서다.

유혹받는 보좌관

“일반 회사처럼 생각하고 일하면 나중에 큰일난다.” 18년째 국회에서 보좌관 생활을 하고 있는 야당 의원실 소속 A씨는 22일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온갖 루트를 통해 청탁이 들어오는 자리인데다 선거철엔 이기기 위한 여러 ‘작전’에 동원되기도 한다. 본인이 선을 넘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6년째 국회서 근무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B보좌관은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불법에) 무뎌지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실제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의원 시절 보좌관이 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에 연루되면서 당 사무총장 직을 사퇴한 적이 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역시 2013년 보좌관이 향응을 제공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엔 손혜원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이 보안자료를 활용해 부동산을 사들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의원이 불법에 연루될 경우 보좌진까지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일도 많다. 의원의 개인 비리 때문에 보좌관까지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여러 차례 소송에 휩싸인 경험이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하다. 정상적인 업무 과정에서 협박죄로 고소 당한 적도 있어 트라우마까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정국 때는 경호기획관실 직원 등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보좌관 10여명이 고소·고발을 당했다. ‘여의도 옆 대나무숲’이라는 국회 보좌진 익명 커뮤니티에는 “어르신(의원)들이야 더 이상 아까울 것 없겠지만 젊으신 분들은 빨간 줄 하나에 인생이 발목 잡힌다”는 성토가 쏟아지기도 했다.

국회의 숨은 권력

보좌관들이 불법 유혹에 노출돼 있는 것은 그만큼 권력의 핵심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원실마다 맡는 역할이 약간씩 다르지만 보좌진들은 보통 정책을 만들고 법안을 짜고 정치적인 사안을 판단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보다 더 많이 안다. 의원을 수행하는 의전부터 민원 처리, 지역구 관리, 입법 보좌, 문서 작성까지 전천후로 일한다. 국회의원 300명의 입법과 의정활동을 돕는 2700여명의 보좌진이 일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여야 의원실의 보좌진 112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5.2%는 본인 의사가 의원들의 입법 및 정치 활동에 잘 반영된다고 답했다. 반영이 잘 되지 않는다는 비율은 1.8%밖에 안 됐다. 정갑윤 한국당 의원실의 고광철 보좌관은 “고생을 많이 하긴 하지만 그만큼 영향력이 큰 자리”라면서 “그동안 없었던 법을 새로 만들 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직업 만족도도 높다. 보좌관 직업에 만족한다는 답이 65.2%였다. 불만족한다는 12.6%의 5배나 됐다. 4급 보좌관의 경우 약 8330만원, 5급 비서관은 7350만원 가량의 연봉을 받는다. 한 보좌관은 “어디 가서 기죽지 않을 만큼은 번다”고 평가했다.

입법 권력에 가까이 있다보니 보좌관에 쩔쩔매는 사람도 많다. 정무위나 산업위, 국토위 등 각종 사업의 인허가에 관여할 여지가 큰 상임위에 의원이 속해있으면 보좌관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국회에 법안을 올려야 하는 공무원들에게도 보좌관은 ‘잘 보여야 할 사람’이다. 한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부르는대로 가고, 일정에 맞춰 보좌관이 원하는 자료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보좌관의 두 얼굴

하지만 보좌관은 국회의원 앞에선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생사여탈권이 의원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에 팩스 한장만 보내면 보좌진을 즉각 해고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불법을 강요하면 거부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 보좌관은 “국회의원이라는 작은 소기업에 고용된 입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의원들은 1명 당 19.7명의 보좌진을 채용했다. 보좌진 인원이 1명 당 9명인 것을 감안하면 들어온 인원만큼 나간 인원도 있다는 뜻이다. 한 보좌관은 “경력이 10년 넘은 보좌진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걸 보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관 인력들이 가장 크게 물갈이 되는 때는 선거 이후다. 의원이 낙선하면 일자리를 잃는다.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거나 인맥이 좋은 보좌관은 ‘스카웃’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국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 일부 보좌관들은 ‘사노비’ ‘머슴’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의원들의 말이 그만큼 절대적이어서다. 설문 결과 상사(국회의원)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폭력이나 폭언 등의 대상이 된 적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자의 4명 중 1명인 24.1%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국회 보좌진들의 익명게시판엔 “내 삶을 장기판의 말이라 생각하지 말아달라, 보좌직원의 사노비화를 막아달라” 등 갑질을 고발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각 당 보좌진 협의회는 보좌관 처우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한국당보좌진협의회 회장인 이종태 보좌관은 “의원이 보좌진을 해고할 때 30일 전에 서면으로 통지하는 면직예고제를 추진할 것”이라며 “보좌진의 권익과 위상을 높여 자부심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