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 경찰청사 9층에 있는 민갑룡 경찰청장(54) 집무실 탁자에는 종이 하나 놓여 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상징인 참수리가 꼭대기에 내려앉은 12㎝ 길이의 에밀레종이다. 민 청장은 “이 종에 경찰이 가야 할 방향이 모두 들어 있다”고 말했다. 종 옆면엔 ‘국민의 경종(警鐘)이 되소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구 선생이 1947년 펴낸 ‘민주경찰’ 특호에 남긴 글귀라고 한다. 반대편에는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이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민 청장은 “경찰은 봉사를 업으로 하는 가장 행복한 직업인데도, 경찰 개개인은 국민으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받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낀다”며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경찰을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통제를 받는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24일 취임 1년을 맞는 민 청장을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만났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18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수사권 분리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18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수사권 분리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버닝썬 사건’ 등으로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 커졌습니다.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국민의 불신은 경찰의 권한 남용을 둘러싼 우려와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봅니다. 경찰과 범법자 간 유착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경찰 개개인의 정신 무장과는 별도로 제도를 바꿔 유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생각입니다. 강남경찰서를 ‘1호 특별 인사관리구역’으로 지정한 이유예요. 강남에서 유착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국 어디서든 유혹을 이겨낼 토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수시로 적격성 심사를 하고 1년 주기로 부적격자에 대한 인사를 낼 생각입니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공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일리있는 지적이지만,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보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국민과 경찰이 대립한 시절도 있었고, 강하게 공권력을 집행하다가 용산 사건 등 시민의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들이 미숙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다만 경찰은 세부 지침 등 기준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국민의 치안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경찰 같은 수사당국은 시민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임의적인 공권력 행사가 줄어들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경찰을 통제할 방안이 있습니까.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경찰위원회를 매달 두 번 이상 열고 있습니다. 전국 경찰서에 시민청문관을 배치해 일선 서장이 주요 결정을 내릴 때 감시하고 함께 결정하도록 추진하고 있어요. 초기 수사 때부터 국민 눈높이에 맞춰 현장 지휘가 이뤄져야 합니다. 의견 수렴을 위한 제도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경찰정신의 회복이에요. 경찰은 본래 시민들이 당번을 서며 동네의 치안을 지킨 데서 시작했습니다. 경찰과 시민은 하나인 셈이죠. 일제강점기 경찰제도가 도입되면서 생겨난, 시민을 잠재적인 문제 유발자로 여기는 문화를 없애야 합니다. 경찰 스스로 시민과 사회의 공생을 생각하는 경찰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권력과 권위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시민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습니다. 현재 안에 만족합니까.

“형사 사법 절차는 공정성이 생명입니다. 국민의 자유권은 물론 생살여탈권까지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열 도둑을 놓쳐도 하나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민주적인 견제 균형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수사와 기소가 완전히 분리돼야 합니다. 수사권 기소권은 모두 엄청난 권한인데 한 조직에 결합돼 있는 바람에 ‘제 식구 감싸기’나 ‘사건 가로채기’, ‘전관비리’ 등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죠. 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큰 방향성에선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 폭이 여전히 넓은 데다 수사한 경찰관에 대해 직무 배제 또는 징계 요구를 할 권한을 검찰에 준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던 검찰의 수장이 바뀌었으니 법 개정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도 검경 수사권에 대해 큰 틀에서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문회에서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 경찰의 수사종결권 부여 등 쟁점의 방향성에 동의했어요.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협력할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죠. 검찰과 경찰이 지휘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로 전환되면 국민의 불편함이 줄어들 겁니다. 양 기관의 권한이 명확해지면 무분별한 중복 수사 등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재계에서는 기업에 대한 수사가 너무 장기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됩니다.

“수사 장기화는 수사 환경의 변화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기업 수사에서의 문제는 기간보다 범위라고 봅니다. 압수수색을 통해 표적, 별건 수사를 하는 게 더 큰 공포일 겁니다. 이건 수사기관이 정도를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면 수사 기간을 줄이고 별건 수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수사 범위가 특정되고 검찰은 경찰 수사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검증하게 됩니다. 지금은 경찰에서 수사한 것을 검찰이 가져가 수사 범위를 더 확장할 수 있어요.”

■민갑룡 경찰청장은…

△1965년 전남 영암 출생
△1988년 경찰대 행정학과 졸업
△1990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2007년 경찰청 혁신기획단 업무혁신팀장(총경)
△2008년 무안경찰서장
△2009년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
△2011년 송파경찰서장
△2014년 광주지방경찰청 제1부장(경무관)
△2015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장
△2016년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치안감)
△2017년 경찰청 차장(치안정감)
△2018년 경찰청장(치안총감)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