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여름휴가는 한 해의 중간에 찍는 쉼표와 같다. 지친 마음을 돌보고 재충전하기 위한 시간이다. 잘 쉬는 데도 전략이 필요하다. 편안한 휴가를 보내려면 휴가 시기를 잘 고르는 게 절반이다. 동료들의 휴가 일정을 신경 쓰지 않고 휴가를 미리 정하는 ‘선점족’이 있는가 하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전략으로 정보부터 수집하는 ‘눈치족’이 있다. 휴가지에서 업무 관련 전화나 메시지를 받지 않기 위한 ‘사전 작업’도 나름 필요하다. 여름휴가를 앞둔 김과장 이대리들의 ‘기술’을 들어봤다.

[김과장 & 이대리] 상사는 피하고 주말은 붙이고…여름휴가 선택의 기술
전략1=좋은 시기를 선점하라


여름 휴가철이 되면 직장인은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움직이는 자와 기다리는 자. 일찌감치 휴가계획을 내는 ‘선점족’ 가운데선 자녀를 둔 학부모 직장인이 많다. 휴가 시기를 정할 때가 오면 성수기의 절정인 ‘7말8초’를 주저없이 짚는다. 학교와 학원 방학시기에 맞춰 여행을 다녀와야 해서다. 한 의류업체에 다니는 박 과장은 “성수기가 더 덥고 가격도 비싸서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며 “이때 휴가를 내지 못하면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휴가 비용을 절감하려는 ‘알뜰족’도 휴가 시기를 고르는 데 신경을 쓴다. 국내 한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이 대리는 연초가 되면 미리 휴가계획을 팀장에게 구두로 보고한다. 그는 7~8월에 가는 여름휴가는 물론 12월 겨울휴가 일정도 미리 잡는다. 비행기표도 6개월 미리 구매한 덕에 싸게 구한다. 이 대리는 “항공권을 미리 샀다고 연초부터 얘기하면 크게 눈치를 주지 않는 분위기”라며 “계획을 미리 짜면 항공권, 호텔 등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명절이나 휴일이 낀 황금연휴만 재빨리 선점하는 ‘체리피커’들은 눈총을 받기도 한다. 증권사에 다니는 김 선임은 올여름 휴가로 광복절 다음날 하루, 추석 전 1주일을 골랐다. 부원들이 공유하는 휴가 달력에 제일 먼저 이름을 적었다. 선후배 직원들은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다. 같은 회사 후배인 한 주임은 “업무상 서로 휴일을 겹쳐 쓰기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 매번 한 사람만 황금휴가를 가는 건 부당하다”며 “순번제를 도입하는 식으로 휴가 기회가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을 건의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략2=남의 휴가 날짜도 확인해라

남의 휴가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 직장인의 ‘작은 휴가’로 불리는 무두절(無頭節)을 오래 즐기기 위해서다. 그래서 적지 않은 직장인은 상사의 휴가부터 확인한다. 건설사에 근무하는 홍 대리는 부장이 휴가 가는 주를 미리 파악해 바로 다음 주를 ‘찜’했다. 부장이 없는 한 주를 즐기고 그가 돌아올 즈음에 휴가를 쓰면 사실상 2주를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다. 홍 대리는 “부장이 휴가 가는 주를 미리 알아내기 위해 지난달 내내 붙어다녔다”며 “이 정도 노력은 해야 무두절을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원급 및 부서장급 직장인들도 고충은 있다. 간부마다 서로 겹치는 시기를 피해 휴가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안 부장은 “예전엔 부장만 되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젠 다른 부장들이 언제 휴가를 쓰나 눈치를 봐야 한다”며 “휴가를 길게 쓰면 진급 경쟁에서 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오히려 휴가를 쓰는 게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제 휴가’를 지정하는 회사도 있다. 한 자동차회사는 이달 29일부터 다음달 16일 사이 전 임원에게 5일씩 휴가를 쓰라는 ‘지침’을 내렸다. 임원들이 눈치 보며 휴가를 쓰지 않는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취지다. 한 보안업체는 2016년부터 전체 부서장 200여 명을 1년에 한 번씩 1주일간 동시 휴가를 보내는 ‘부서장 프리주(free週)’를 시행 중이다. 부서장이 없어도 차질 없이 업무가 굴러갈 수 있도록 임시 부서장 제도도 마련했다.

휴가 전략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직장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쓰는 문화가 빠르게 자리잡으면서다. 서울 강남의 소프트웨어업체에 다니는 안 대리는 “한 달 동안 휴가를 내고 발리에 다녀온 직장 동료도 있다”며 “2주는 완전히 일을 놓고 쉬고 2주는 현지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략3=나의 휴가를 알리지 마라 vs 알려라

‘언제’ 휴가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가느냐도 그에 못지않다. 휴가를 떠나기 전 ‘사전작업’을 잘 해둬야 온전한 휴가를 보낼 수 있어서다. 서울의 한 정보기술(IT) 중소기업 마케팅 부서에 다니는 최 대리는 휴가를 앞두고 인수인계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진행 중인 업무 리스트를 작성하고 필요한 파일들은 저장 장치에 담아 후배에게 줄 계획이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도 휴가 예정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사진으로 바꾸고 ‘휴가 중입니다. 7/27~8/4’라는 문구도 넣을 예정이다.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해외 로밍 대신 현지에서 유심을 구매해 임시 휴대폰을 사용할 계획이다.

최 대리는 “회사 선후배는 물론 거래처 직원들에게도 휴가 인사를 할 예정”이라며 “최대한 휴가를 널리 알려야 의도치 않은 방해를 덜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휴가계획을 주변에 널리 알려 ‘독’이 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혼자 동유럽 여행을 계획했던 김 대리는 회사에 휴가계획을 자랑했다가 낭패를 봤다. 휴가를 같이 갈 사람이 없는 싱글 상사가 “나도 갈 사람이 없는데 같이 가도 되느냐”고 물어보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사내에서 친한 편이긴 했지만 휴가를 같이 가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작스런 요청에 거절을 못했다. 김 대리는 “혼자 여행하며 또래 친구를 사귈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다 물거품이 됐다”며 “올해부터는 휴가를 떠나기 직전까지 절대 어디로 갈지 떠벌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