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북한의 3세대(3G) 무선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몰래 관여해왔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의 진위 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WP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화웨이가 미국의 대북(對北) 제재를 위반한 것이어서 향후 미·중 무역협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화웨이 보도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파악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내용에 대해 보고받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화웨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는 5G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 전 세계에서 최상의 5G를 가질 것”이라며 “실리콘밸리는 브레인 파워 면에서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답변은 현재 미·중 간 논란이 되고 있는 화웨이의 ‘5G’와 WP 기사에 나온 ‘3G’를 혼동해 나왔을 수 있다. 어찌됐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안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관한 추가 우려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우리는 파악해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WP는 전직 화웨이 직원 등에게서 확보한 내부 문서와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화웨이가 비밀리에 북한의 상업용 무선네트워크 구축과 유지를 도왔다고 보도했다. 2008년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이 북한의 조선우편통신공사와 지분 합작으로 무선통신업체 고려링크를 세워 3G망을 구축할 때 화웨이가 중국 국유기업 판다 인터내셔널 정보기술과의 제휴를 통해 장비 및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이날 북한이 3G망을 구축하면서 고위층 2500명을 대상으로 300개의 통화를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38노스는 북한에서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되기 6개월 전인 2008년 5월 28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조선우편통신공사와 오라스콤이 연 회의의 회의록을 입수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고위층이 사용하는 별도의 이동통신망을 통해 특정 휴대폰의 연락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데이터도 따로 저장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서 화웨이는 2500대의 이동전화를 목표로 잡고 300개의 통화와 300개의 데이터 세션을 동시에 모니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화웨이와 북한의 연관성은 화웨이 및 중국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미국 정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크리스 밴 홀런 미 상원의원(민주)과 톰 코튼 상원의원(공화)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화웨이가 미국의 대북 제재와 수출 규제를 위반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무역협상 재개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거래 제한 대상으로 지정된 화웨이에 대한 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북 간 비핵화 실무협상에 유탄이 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화웨이의 미국 연구개발(R&D) 지사인 퓨처웨이가 직원 850명 중 600여 명을 해고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베이징=강동균/워싱턴=주용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