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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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경제갈등이 이번주를 기점으로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외교적 해법이 절실한 상황에서 일본과 한국을 연이어 찾는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일 갈등의 구원투수로 나설지 이목이 쏠린다.

우리 정부는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놓고 치열한 외교전에 돌입했다.

이사회에는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WTO 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중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자리다. 일반이사회에는 회원국 제네바 대표부 대사가 정부 대표로 참석하는 게 관례지만 정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WTO 업무를 담당하는 김 실장을 정부 대표로 파견했다.

김 실장은 WTO 통상 현안과 분쟁에 대한 대응 업무를 관장하는 신통상질서전략실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WTO 한일 수산물 분쟁 상소기구 심리에서 최종 승소를 이끌어낸 '통상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본 외무성은 자국 대표로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경제국장을 파견했다. 경제국장은 우리나라 실장급보다 직급이 낮다.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는 전체 14건 가운데 11번째 안건으로 상정돼 있다. 일정이 지연되면 24일로 넘어갈 수 있지만 23일 오후 늦게 다뤄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김 실장은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함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일본 정부에도 다시 한 번 규제 철회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측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관심이 있는 다른 회원국들도 의견을 낼 수 있다.

WTO 이사회가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 우대국)' 배제 공청회 기한을 단 하루 앞두고 열리는 만큼 격론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현실화할 경우 WTO 제소 등 외교적 대응책을 총동원할 계획이다.


볼턴 미 백악관 보좌관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전날 일본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을 차례로 만났다. 일본 교도통신은 징용 문제, 일본의 수출제재에 따른 한일 간 긴장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볼턴 보좌관은 고노 외무상과의 회담 후 기자들에게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 국가안보에 관한 모든 문제를 얘기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에는 한국을 찾는다. 볼턴 보좌관은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입국해 24일부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과 연쇄 면담을 갖고 한미동맹 강화과 북핵 문제, 한일 갈등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한일 갈등이 대치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별다른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미국의 중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오전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한일 관계 경색에 대한 미국 측 지지와 중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유 본부장은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 등 주요 인사를 만나 일본 측 조치의 부당성과 우리 입장을 설명할 계획이다.

앞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지난 10~14일 미국을 방문해 대미 설득전에 나선 바 있다.

반도체는 물론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전반에 짙은 불안감이 감돈다. 정부의 외교전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이 독점하는 소재·부품을 국산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당장 우리나라가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재되면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면서 "기업들도 공급처 변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정부의 지원과 외교적 노력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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