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국내에서 고용한 직원만 10만 명입니다.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휘청거릴 겁니다.”(전 삼성 계열사 대표 A씨)

“사방이 적(敵)입니다. 삼성을 푸대접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전 삼성전자 사장 B씨)

삼성의 성공 신화를 직접 쓴 OB(old boy)들이 삼성의 현실에 대해 걱정을 쏟아냈다. 검찰 수사 등 국내 요인에 일본 정부의 대(對)한 소재 수출 규제, 글로벌 반도체시장 불황 등 외부 악재가 겹쳐 ‘사상 초유의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시민단체, 정치권의 ‘삼성 흔들기’가 계속되면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이뤄낸 ‘글로벌 삼성’의 위상이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국내외 악재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삼성에 힘을 실어줄 때라는 얘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과 EPC(설계·조달·시공) 관련 삼성계열사 경영진이 지난달 24일 서울 상일동 삼성물산 본사에서 사업 현안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삼성물산 블라인드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과 EPC(설계·조달·시공) 관련 삼성계열사 경영진이 지난달 24일 서울 상일동 삼성물산 본사에서 사업 현안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삼성물산 블라인드 제공
내우외환 삼성

OB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삼성에 대한 검찰, 정치권, 시민단체의 ‘무차별적 공격’이었다. 검찰에 대해선 “삼성그룹 총수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을 ‘경영권 승계’로 무리하게 연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전직 삼성 사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 조작 등의 프레임은 ‘위법 여부’가 결론 나지 않은 사건”이라며 “검찰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삼성 흠집 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평가했다. 전 삼성 계열사 사장은 “시민단체가 검증 안 된 의혹을 일단 제기하면 마치 짠 듯이 사정기관이 나서 삼성을 압박한다”며 “이번 정부 내내 되풀이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삼성 흔들기 그만둬야”

삼성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컸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은 243조8000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의 약 11%를 차지했다. 23일 기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보통주 기준)은 282조3707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20%에 달했다.

한 삼성 OB는 “TV 프로그램에서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는 한 대학교수가 ‘삼성 망하면 나라 망한다는 말은 국민에게 하는 공포 마케팅’이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며 “삼성이 무엇을 위해 공포 마케팅을 하겠냐”고 반문했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삼성의 실적은 올해 크게 악화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회사들이 제시한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는 26조7450억원이다. 지난해(58조8867억원)의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사업이 동반 부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금융계열사 사장을 지낸 재계 원로는 “미·중 무역전쟁, 한·일 갈등, 반도체 불황 등에 맞서 글로벌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삼성을 왜 흔들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의 소중한 자산인 삼성을 더 키워 경제를 살릴 생각을 정치권이 왜 안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것을 몰라준다는 탄식도 나왔다. 한 OB는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직간접으로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만 50만 명”이라며 “정부의 고용정책에 발맞춰 청년 고용에 적극 나선 것에 대한 칭찬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재계 원로는 “삼성전자가 매년 사회공헌 활동에 쓰는 돈만 5000억원”이라며 “사회공헌이 조직문화가 될 수 있도록 그 어느 기업보다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 성공 이끈 3각 체계 강화해야

내부 시스템과 관련해 OB들은 “삼성의 성공을 이끈 ‘총수-컨트롤타워-전문경영인’ 3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은 적폐 논란에 해체됐고, 일부 기능을 이어받은 삼성전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마저 무차별적 검찰 수사로 사실상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 계열사 출신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본부는 사업·투자 조정을 수행하며 ‘삼성 위기 극복의 주역’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미래전략실도 신사업 육성, 경영전략 마련 등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삼성이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의 미래를 그리기에 현재 사업지원TF는 너무 작은 조직”이라며 “신사업 발굴, 미래 전략 마련 등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기능에 충실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삼성이 5~10년 뒤에 특별할 게 없는 ‘보통 기업’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경영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신산업 발굴, 미래 전략 수립 등에 집중해야 하는데, 현재의 삼성은 내외부 악재로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전직 최고경영자(CEO)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경쟁에 뒤처진다”며 “아무리 삼성이라도 수년간 혁신과 성장에 집중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고재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