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빈곤 해법, 자유시장경제에 있다
빈곤의 원인은 무엇인가? 보수주의는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사람이 가난한 건 그 자신의 결정과 선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게 보수의 인식이다. 빈곤에서 탈출하려면 능력을 발휘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사회주의는 빈곤에 대한 책임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는 시각이다. 동포애, 측은지심 등 유대감이라는 집단주의적 도덕률을 강조하면서 규제·재분배·보조금 등 복지정책을 통해서만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보수주의와 사회주의는 법적·정책적 요인을 간과한다. 비숙련 근로자의 취업을 가로막아 그가 경험을 통해 숙련공이 될 기회까지 없애버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대표적이다. 그런 정책으로 야기된 빈곤은 개인의 탓도, 계급 갈등의 소산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를 자본가의 탐욕 탓으로 돌리는 건 정직하지 못한 사회주의 정부의 책임 회피다. “빈곤에서 탈출하려면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보수주의 처방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래서 생겨난 게 빈곤층을 위해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따뜻한 보수’다.

주목할 점은 빈곤 문제의 90% 이상은 좌파의 사회주의 실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노동을 통해 중산층이 될 기회를 차단한 주 52시간 근로제의 강제적인 노동시간 단축, 부자라거나 기업이 크다는 이유로 이들을 적폐로 여겨 높은 조세와 강력한 규제의 형태로 처벌하는 사회주의 정책 등 반(反)시장 정책실험이 빈곤층을 만든 장본인이다.

반시장 규제의 특성은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방해해 기업 투자 위축을 초래하고 일자리 창출과 소득 향상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서민경제가 무너지면서 폐업 소상공인이 100만 명을 넘어선 것도, 기업 설비투자가 10.8% 줄어 21년 만에 최악 상황인 것도 기업활동을 불안하게 한 좌파 정권의 규제 때문이다. 그 결과 실업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빈곤층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갈 기회가 차단됐다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가 지난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고, 한국에 들어와 공장을 짓는 외국인투자는 45% 감소했다는 보도다. 이는 정부 규제의 또 다른 치명적 결과다. 정부 간섭으로 국내에서는 기업하기 어렵고, 소득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일자리·소득 증대 기회가 소멸되고 있다는 증거다.

복지국가의 사회주의 실험도 빈곤을 더욱 악화시킬 뿐, 해법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무차별적인 현금살포식 복지 확대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독립심과 일하겠다는 진취적 의욕 및 모험심을 약화시킨다. 그 결과 사람들은 국가에 의지하려는 예속의 덫에 빠진다. 이는 빈곤의 확대·심화로 이어지고, 결국 복지국가는 스스로를 증폭시켜 모든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다.

요컨대 사회주의는 서민의 친구가 아니라 적(敵)이다. 서민의 친구는 ‘경제적 자유’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빈곤을 줄이고 삶의 수준을 높이는 최선의 길은 자유시장을 통한 경제성장이다. 성장 없는 경제엔 분배 갈등만 있을 뿐이다. 개인이 빈곤에서 탈출하게 하거나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회를 극대화하는 게 자유의 존재 이유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불평등의 증가는 성장을 지체시키고, 빈곤층과 중산층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좌파는 우려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틀렸다. ‘역기능적 불평등’은 자유시장의 자생적 힘에 의해 통제된다. 모든 계층의 사람이 부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자유시장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억만장자가 되고, 삼성이 수십조원의 이익을 거두는 건 수천만 명을 계층에 관계없이 생산적 관계로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 효과를 불러오는 불평등이 있다. 이는 이념·지역·학맥 등이 정치권과 연계된 먹이사슬, 즉 타인을 희생시켜 부(富)를 획득하는 정실주의가 야기하는 불평등이다. 정실주의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제거하고 경제를 파괴한다. 사회주의 실험이 만들어내는 악의 축이 정실주의다. 서민을 위한 최선의 길은 정부 지출과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어 자유를 광범위하게 확립하는 것이다. 문명의 창조적 힘은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