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TO 회의장 들어서는 韓·日 대표 >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왼쪽)과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하라 준이치 일본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가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WTO 회의장 들어서는 韓·日 대표 >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왼쪽)과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하라 준이치 일본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가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 5단체가 23일 경제보복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한국 배제 움직임에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수출 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이날 일본 경제산업성에 제출했다. 일본이 개정안 고시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조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도 24일 의견서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도 23일 장관 명의로 10쪽이 넘는 분량의 정부 공식 의견서를 보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100곳이 넘는 기관과 기업이 의견서를 낼 전망”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100건이 넘는 의견서가 접수되면 2주간의 숙려기간을 둬야 한다. 우리 정부로선 국제사회를 통해 압박할 시간을 벌 수 있다.

日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견 접수 24일 마감…'보복 2탄' 터지나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2탄’으로 불리는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와 관련한 의견 수렴 마감시한을 하루 앞두고 한·일 양국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와 경제 5단체 등 한국 경제계는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촉구하는 공식 의견서를 일본 경제산업성에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화이트리스트 제외’ 의견 수렴 시한(24일)이 끝나기 전에 양국 실무자 간 양자협의를 하자는 우리 측 제안을 일본에서 끝내 묵살하면서 전면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115개 품목 수출제한 현실화하나

경제 5단체는 23일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고시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철회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면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1115개 일반 공산품에 대한 수출규제도 강화할 수 있어 한국 산업에 전방위적인 위협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제 5단체는 의견서를 통해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양국 기업이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를 손상할 뿐 아니라 무역·산업 관계에 불확실성을 초래할 것”이라며 “글로벌 밸류체인(GVC)을 교란해 양국 산업계는 물론 세계 경제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날 성윤모 장관 명의로 10쪽이 넘는 분량의 정부 공식 의견서를 일본 경제산업성에 보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본 수출규제로 인해 피해를 본 기업들도 별도로 24일 일본 정부에 의견서를 보낼 예정이다.

靑 “시간 벌면 많은 일 벌어질 수 있다”

일본은 이달 1일 반도체 소재 등 3개 원자재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우방국 명단인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함께 고시했다. 법령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 마감 시한은 24일이다. 청와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에 반발하는 의견서 100개 이상이 일본 측에 전달될 것으로 예상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보면 101개 이상의 의견서가 전달될 경우 일본 측이 숙려기간을 갖는다는 조항이 있다”며 “큰 반전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시간을 버는 사이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4일까지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관련한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아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공포 후 21일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100건이 넘는 의견서가 전달돼 숙려기간을 갖게 되면 각의 결정 시점이 8월 초·중순까지 연기되는 셈이다.

결국 열쇠 쥔 건 日

일본은 숙려기간 설정이 강제조항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각 시행을 위한 명분쌓기용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의 의지에 따라 시행 시점이 고무줄처럼 조정될 수 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2일 “숙려기간을 2주 이상 설정해야 한다는 법률 기준은 일률적인 것은 아니다”며 “제출된 의견에 따라 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제출된 의견에 대한 검토를 하루 이틀에 마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로 들어온 의견 하나하나에 답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입장을 밝혀야 하므로 준비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통상적으로 일본 정부의 각의는 금요일에 열리는데 24일까지 의견 수렴을 한 직후인 26일에 곧바로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공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일본 정부가 각종 의견수렴 절차를 마치고 곧바로 임시각의를 열어서 공포하면 이르면 내달 15일부터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시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재원/김재후 기자/도쿄=김동욱 특파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