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전문가 사이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2탄’으로 불리는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목록) 제외 조치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빼곡히 잡혀있는 일본 내부 일정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변수라는 분석이다.

첫 번째 변수는 아베 총리(사진)의 여름 휴가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24일부터 공식 휴가에 들어갔다. 오는 29일까지 참의원 선거 등으로 인해 쌓인 피로를 풀고 업무에 복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위한 법령 개정안 처리를 위한 첫 관문인 각의(국무회의) 날짜는 당초 예상했던 26일을 지나치게 됐다.

다음 각의 날짜인 30일에도 처리되기 쉽지 않다. 일본 정부가 시행령 처리를 앞두고 숙려기간을 둬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100건이 넘는 의견서가 접수되면 통상 최대 2주까지 숙려기간을 둬야 한다. 의견 수렴 마감 시한인 24일까지 3만 건이 넘는 의견이 쏟아졌으며, 이 중 화이트리스트 제외에 반대한다는 우리 기업과 경제단체, 협의 의견 수도 100건을 훌쩍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숙려기간 설정이 강제조항이 아니지만 의견서 분석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다.

다음달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에 영향을 미칠 정치 일정들도 변수다. 당장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 맞이할 8·15 광복절이 첫 고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느냐에 따라 국면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개각 역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9월 중 개각 및 여당인 자민당 지도부 개편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수출규제 사태의 장기화 여부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일왕 즉위식(10월 22일)도 아베 총리가 섣불리 주변국과의 마찰을 일으키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정부 내에서는 일본이 실제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1115개 일반 공산품에 대한 수출 규제도 강화할 가능성이 있어 한국은 물론 일본 자국 내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섣부른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