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5월 10일 공개한 화력타격훈련 모습. ‘전술 유도 무기’로 언급된 단거리 미사일이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한경DB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5월 10일 공개한 화력타격훈련 모습. ‘전술 유도 무기’로 언급된 단거리 미사일이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한경DB
북한이 25일 발사한 미사일이 최대 690여㎞를 비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도발이 어느 정도 ‘예고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한반도 전역을 실질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에서 새로운 군사적 위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를 토대로 북한이 ‘비핵화 협상 몸값 높이기’에 다시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한 전역 위협하는 탄도미사일 완성

北, 남한 전역 타격 탄도미사일 완성 단계…'사드'로도 요격 어렵다
북한이 이번에 사용한 이동식 발사차량(TEL)은 외형이 지난 5월 4일과 9일 두 차례 쏜 ‘북한판 이스칸데르급’ KN-23 단거리 미사일의 TEL과 유사한 모양으로 군 당국은 파악했다. 그러나 두 번째 발사한 미사일이 고도 50여㎞를 유지하면서 최종적으로 690여㎞를 비행한 것으로 평가되자 한·미 군당국은 새로운 형태의 단거리 미사일일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두 달만에 발사거리가 190㎞ 늘어났고, 저고도 비행을 통해 목표물에 접근한 뒤 종말 단계에서 수평 또는 수직 등 복잡한 회피 기동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미 군당국은 이 기종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날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KN-23 완성형’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스커드와 노동 계열의 탄도미사일에 이어 남한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사실상 완성된 것이다. 북한이 지난 5월 처음 시험 발사한 미사일 KN-23은 고도와 비행거리가 들쭉날쭉해 일단 시험 과정으로 추정됐다. 북한은 이후 이 미사일 성능 보완 작업을 계속 해온 것으로 군은 파악했다.

北, ‘판문점 회동’ 후 도발 명분 쌓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판문점 회동’에서 “2~3주 안에 실무협상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진척된 건 없었고,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이유로 미국과의 실무협상 시기를 늦추려 했다.

북한은 차곡차곡 도발의 명분을 쌓는 징후를 보였다. 지난 23일엔 김정은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했다는 소식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보도됐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도발 가능성을 미국과 한국 등에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튿날엔 우리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지원하는 쌀 5만t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이 국제기구를 통해 한 우리 정부 지원을 거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의 이번 행위는 한·미 연합 군사 연습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한·미 연합훈련 및 우리군의 첨단무기 도입에 반발한 측면도 있다”며 “27일 전승기념일(정전협정 체결일)을 앞두고 군의 사기 진작과 내부 체제 결속, 비핵화 협상에 대한 내부 불만을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최근 북한의 동향 분석을 토대로 미사일 발사 징후를 주시했지만 사전에 인지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북 실무협상 ‘기선잡기’ 가능성 커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오는 8월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담에 불참하겠다고 주최 측에 통보했다. ARF를 계기로 성사될 것으로 예상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고위급 회담은 무산됐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가하는 다자안보협의체다. 북한은 2000년부터 매년 ARF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북한이 ARF에 외무상을 보내지 않는 건 2001년과 2003년, 2009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에도 국제기구국 고위 간부나 ARF 본부 대사 등 다른 간부를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미 폭스뉴스는 24일(현지시간) 행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 미사일 발사 시점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서울 방문을 끝낸 직후였다”고 전했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선잡기용’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그들(북한)은 비무장지대(DMZ) 회동을 우리 측의 과잉 열망의 증거로 해석했을 수 있다”며 “그래서 약간 물러나 무엇을 더 얻어낼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일단 침묵’

미국과 중국은 공식 언급은 자제하며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도 공식 성명을 내지 않았다.

북한과 실무협상 재개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미사일 발사의 파장을 줄이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단거리 미사일’이란 점을 내세워 이번 미사일 발사가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도 단거리 미사일이란 점을 강조하며 의미를 축소했다. 신화통신과 CCTV 등 중국 주요 관영매체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한국 언론을 인용해 일제히 속보로 내보냈다. 하지만 중국 정부 차원의 성명이나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아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