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공감 내세운 일반인 예능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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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때 상당히 힘들었죠. 저도 부도가 났었고, 부도 안 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요새도 경기가 안 좋아 대출 받은 것 이자만 갚고 있어요.”
뜨거운 여름에도 열기가 가득한 서울 문래동 골목길. 이곳에서 20년째 용접 업체를 꾸려가고 있는 사장님은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2’에 나와 어려운 사정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여유가 생기면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에게 다녀오고 싶다는 바람도 전한다. 그리고는 MC를 맡고 있는 유재석, 조세호와 유쾌하게 퀴즈를 푼다.
요즘 예능에선 이런 얼굴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자식들을 위해 어디선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아버지, 취업을 하기 위해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딸 등 꼭 우리네 가족과 닮았다.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담긴 작은 웃음, 불안과 마주하면 괜히 마음이 짠하고 편안해 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인 예능이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여전히 ‘관찰 예능’이란 이름으로 연예인들의 일상에 집중한 프로그램들이 많긴 하다. 이 또한 큰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호화로운 집과 차를 가진 연예인들이 지인들과 마음껏 놀러 다니는 것을 반복해 보다보면 괴리감과 박탈감이 밀려 온다.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즐거움이 아닌가. 게다가 연일 터지는 연예인들의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더 이상 이들의 ‘리얼리티’는 있는 그대로의 ‘리얼리티’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일반인 예능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관찰 예능의 홍수 속에서, 이 피로도를 씻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정 지역을 정해 돌아다니며 행인들과 이야기 하고 퀴즈도 푸는‘유 퀴즈 온 더 블럭’과 평범한 가정집들을 찾아 다니며 밥을 함께 먹는 JTBC ‘한끼줍쇼’가 대표적이다. 이전에도 일부 일반인 예능이 있긴 했다.1996~2000년 큰 인기를 얻었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 등이다. 교통신호와 정지선을 잘 지킨 시민을 찾아 양심냉장고를 선물했다. 해당 시민이 어디로 가려 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등을 물으며 대화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금의 일반인 예능과는 성격이 다소 달랐다. 일반인 전체 얘기를 대변하는 ‘공감’보다 작은 영웅을 통한 ‘감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공익을 강조한 일반인 예능이 보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것엔 이런 영향이 컸다.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한끼줍쇼’는 이와 달리 ‘개별성’과 ‘우연성’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개별성은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의 일상이 다르듯, 이들의 이야기도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이들은 매회 다른 사람들을 찾아 만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모으고 있다. 우연성도 잘 짜여진 틀 안에서 움직이던 기존 예능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작품들은 미리 누군가를 섭외하지 않고, 지역만 정해놓고 불쑥 찾아가 카메라를 비춘다. 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여기에 ‘퀴즈’라는 고전적인 수단을 접목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퀴즈 하나를 맞추면 100만원의 상금을 준다. 퀴즈를 틀려도 추첨을 통해 상품을 준다. 퀴즈가 일반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평범한 하루에 주어지는 ‘행운’의 기능을 하는 셈이다. 퀴즈 전후로 행운보다 더 가치있는 ‘행복’의 이야기도 쏟아진다. ‘한끼줍쇼’는 집을 방문한다는 콘셉트 자체로 차별화한 작품이다. 사적인 공간을 노출해야 하는 부담 탓에 쉽게 문을 열어주진 않는다.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인지도 굴욕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 문을 열리면 분위기는 반전된다. 문을 연 사람은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밥상을 차리고, 이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 안으로 카메라를 비추는 과정은 꽤 험난하지만, 한번 들어가고 나면 어느 프로그램보다 일반인들의 삶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지난 5월 ‘유 퀴즈 온 더 블럭 2’에 나온 한 서울대생의 이야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은 화제가 됐다. 유재석이 “서울대에 입학하려면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하냐”고 묻자, 학생은 “그런데 요즘 좀 느낀 게 있다. 문제 한두 개 더 맞혔다고 인생이 더 행복해지진 않더라”고 답했다. 잘 알고 있지만 잊고 사는 행복의 가치. 우리는 일반인 예능을 통해 그 가치를 되새기고 있는 게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뜨거운 여름에도 열기가 가득한 서울 문래동 골목길. 이곳에서 20년째 용접 업체를 꾸려가고 있는 사장님은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2’에 나와 어려운 사정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여유가 생기면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에게 다녀오고 싶다는 바람도 전한다. 그리고는 MC를 맡고 있는 유재석, 조세호와 유쾌하게 퀴즈를 푼다.
요즘 예능에선 이런 얼굴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자식들을 위해 어디선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아버지, 취업을 하기 위해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딸 등 꼭 우리네 가족과 닮았다.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담긴 작은 웃음, 불안과 마주하면 괜히 마음이 짠하고 편안해 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인 예능이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다.
여전히 ‘관찰 예능’이란 이름으로 연예인들의 일상에 집중한 프로그램들이 많긴 하다. 이 또한 큰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호화로운 집과 차를 가진 연예인들이 지인들과 마음껏 놀러 다니는 것을 반복해 보다보면 괴리감과 박탈감이 밀려 온다.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즐거움이 아닌가. 게다가 연일 터지는 연예인들의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더 이상 이들의 ‘리얼리티’는 있는 그대로의 ‘리얼리티’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일반인 예능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관찰 예능의 홍수 속에서, 이 피로도를 씻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정 지역을 정해 돌아다니며 행인들과 이야기 하고 퀴즈도 푸는‘유 퀴즈 온 더 블럭’과 평범한 가정집들을 찾아 다니며 밥을 함께 먹는 JTBC ‘한끼줍쇼’가 대표적이다. 이전에도 일부 일반인 예능이 있긴 했다.1996~2000년 큰 인기를 얻었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 등이다. 교통신호와 정지선을 잘 지킨 시민을 찾아 양심냉장고를 선물했다. 해당 시민이 어디로 가려 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등을 물으며 대화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금의 일반인 예능과는 성격이 다소 달랐다. 일반인 전체 얘기를 대변하는 ‘공감’보다 작은 영웅을 통한 ‘감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공익을 강조한 일반인 예능이 보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것엔 이런 영향이 컸다.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한끼줍쇼’는 이와 달리 ‘개별성’과 ‘우연성’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개별성은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의 일상이 다르듯, 이들의 이야기도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이들은 매회 다른 사람들을 찾아 만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모으고 있다. 우연성도 잘 짜여진 틀 안에서 움직이던 기존 예능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작품들은 미리 누군가를 섭외하지 않고, 지역만 정해놓고 불쑥 찾아가 카메라를 비춘다. 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여기에 ‘퀴즈’라는 고전적인 수단을 접목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퀴즈 하나를 맞추면 100만원의 상금을 준다. 퀴즈를 틀려도 추첨을 통해 상품을 준다. 퀴즈가 일반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평범한 하루에 주어지는 ‘행운’의 기능을 하는 셈이다. 퀴즈 전후로 행운보다 더 가치있는 ‘행복’의 이야기도 쏟아진다. ‘한끼줍쇼’는 집을 방문한다는 콘셉트 자체로 차별화한 작품이다. 사적인 공간을 노출해야 하는 부담 탓에 쉽게 문을 열어주진 않는다.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인지도 굴욕을 겪기도 한다. 그러다 문을 열리면 분위기는 반전된다. 문을 연 사람은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밥상을 차리고, 이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 안으로 카메라를 비추는 과정은 꽤 험난하지만, 한번 들어가고 나면 어느 프로그램보다 일반인들의 삶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지난 5월 ‘유 퀴즈 온 더 블럭 2’에 나온 한 서울대생의 이야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은 화제가 됐다. 유재석이 “서울대에 입학하려면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하냐”고 묻자, 학생은 “그런데 요즘 좀 느낀 게 있다. 문제 한두 개 더 맞혔다고 인생이 더 행복해지진 않더라”고 답했다. 잘 알고 있지만 잊고 사는 행복의 가치. 우리는 일반인 예능을 통해 그 가치를 되새기고 있는 게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