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경식 베스티안재단 이사장 "바이오헬스산업 중심은 병원…창업 요람으로 키우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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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살려달라' 한 마디에
숙명처럼 27년간 화상환자 돌봐
숙명처럼 27년간 화상환자 돌봐
화상 전문병원 베스티안병원을 운영하는 베스티안재단 김경식 이사장은 자신을 ‘야전군’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국내에서 화상 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한 외과의사로 통한다. 화상 치료는 어렵고 더럽고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의료계에선 ‘3D’ 분야로 꼽힌다. 그런데도 김 이사장은 27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화상환자 치료에 매달려왔다. 화재·재난사고 때마다 밀려드는 환자를 묵묵히 치료했다. 인천 호프집, 이천 냉동창고, 서울 강남 구룡마을 화재사고 때도 마찬가지다. 밤낮으로 예고 없이 실려 오는 화상환자를 돌보느라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고 했다.
시작은 1992년 서울 대치동에 문을 연 순화의원이다. 병상 28개에 직원 17명이 근무하던 동네의원은 서울, 부산, 충북 오송 등 세 개 병원에 병상 457개, 직원 510명이 근무하는 베스티안재단으로 성장했다. 이 병원에 근무하는 화상전문의는 30여 명이다. 국내 전체 화상전문의의 절반을 넘는다. 국내 중증 화상 입원 환자의 39%를 재단 산하 병원에서 치료한다. 김 이사장은 의사 창업 전도사로도 불린다. 이 병원 출신 의사 등이 창업한 바이오기업은 네 곳이다. 김 이사장을 서울 역삼동 일식집 최수사 대게마을에서 만났다. 그는 “서울 베스티안병원은 대치동에 있지만 재단 사무실이 근처에 있어 외부 손님이 올 때면 종종 찾는다”고 했다.
피란 온 아버지의 터전이었던 부산
새우 은행 등이 들어간 일식 달걀찜이 전식으로 나왔다. 곱게 간 마에 바다 내음 가득한 해삼 내장이 올려진 음식이 입맛을 돋웠다. 마의 뮤신 성분은 위를 보호한다. 산에서 나는 장어로 불릴 정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이를 내놓는 일식집은 점점 줄고 있다. 갈아둔 마는 쉽게 갈변돼 관리하기 번거롭기 때문이다. 전식 하나만으로도 음식을 대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바다는 김 이사장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부산중앙고를 졸업한 그는 부산 대신동에서 나고 자랐다. 부산은 6·25전쟁 때 북한 남포에서 피란 온 그의 부친이 자리잡은 곳이다. 부친은 이곳에서 관세사로 근무했다. 학창시절 김 이사장은 열심히 공부만 하던 아이였다. 지척에 있는 자갈치시장으로 놀러간 일조차 손에 꼽을 정도다. “형이 공대 건축학과를 나왔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형은 대학생이 됐죠. 형을 따라가겠다고 서울대 공대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어요. 2차에서 붙은 게 한양대 의대였습니다. 그렇게 의사가 됐죠.”
운명처럼 찾아온 화상의사의 삶
의대에 들어간 뒤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운명처럼 화상환자를 돌보게 됐다. 그는 “당시는 일반외과는 암을 수술하고 이식을 해야 폼 나던 시절이었다”며 “개원해 외과를 차리고 보니 주변 대학병원에서 손을 놓은 화상환자가 많이 찾아왔다”고 했다. 순화의원이 문을 연 1992년은 국내에 화상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대학병원조차 없던 때였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던 화상환자가 몰려들었다. 환자를 내치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치료하다 보니 입소문이 났다.
인생의 이정표가 된 환자를 만난 것은 개원하고 4년이 지나서다. 군대에서 전기화상을 입은 젊은 환자였다. 노출된 신체 면적의 70% 정도에 화상을 입었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여러 차례 수술했지만 수시로 상태가 나빠졌다. ‘이 친구 마지막만은 내가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에 김 이사장은 퇴근했다가도 비상호출을 받으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는 넉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을 전하는 김 이사장의 손을 잡고 보호자가 말했다. “다음에는 우리 아들 같은 환자를 꼭 살려주세요.” 화상치료를 숙명으로 바꾼 한마디였다.
돈 버는 족족 시설과 인력에 투자했다. 정성을 쏟았더니 치료 결과도 좋아졌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사고 때 환자 50여 명 중 10여 명이 실려왔다. 모두 살려 퇴원시켰다. 김 이사장은 “화상환자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중환자라도 정신이 멀쩡하기 때문에 의사가 라포르(의사와 환자 간 신뢰관계를 일컫는 용어)를 형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의사들 사이에서 화상환자를 잘 진료하려면 가슴이 아파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사회 복귀가 힘든 화상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공공의료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메인 요리로 회가 나왔다. 두툼한 광어, 도미, 참치회를 묵은지에 싸서 먹는 게 별미다. 여름 보양식인 민어와 병어를 조린 요리도 차례로 나왔다. 칼칼한 병어조림이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자리가 무르익자 김 이사장은 “술 마시는 게 직업”이라며 건배를 청했다. 화상환자는 지옥에 비유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이들을 돌보는 의사들에게도 고통이 전해진다. 괴로움을 삭이려 술을 마셨다. 이제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마신다. “회의나 조회 같은 격식 차린 자리를 싫어해요. 직원들과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대폿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죠. 500명 넘는 직원과 대화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술 마시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중증 화상환자 허브 꿈꾸는 오송병원
화상은 돈벌이가 안 되는 대표 진료 분야다. 순화의원을 베스티안병원으로 증축한 것은 2002년이다. 강남 부잣집 아들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로 무리한 투자였다. 은행 대출이 80%나 됐다. 기회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대치동 땅값이 올라 자산가치가 높아졌다. 경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화상전문 네트워크병원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즈음이다. 2010년 부산에 두 번째 병원을 열었다. 두 곳 모두 화상 전문병원으로 키웠다. 국내 화상전문병원은 이들을 포함해 다섯 곳뿐이다. 대전과 부천에는 협력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했다. 2015년 중국 하얼빈시 제5병원에 한중피부재건센터를 열었다. 중국 의사들에게 화상치료법을 가르치고 함께 연구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11월 오송에 새 병원을 열었다. 오송첨단의료산업복합단지에 하나뿐인 병원이다. 김 이사장은 “중증 응급환자 치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옥상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중환자실까지 한번에 연결되도록 설계했다”며 “전체 120개 병상 중 화상 중환자만 30개 병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고 했다. 국내 화상 분야 중환자를 치료하는 허브로 키우는 게 목표다.
위기도 있었다. 오송병원 개원이 두 달 정도 늦어지면서 병원 운영 자금이 한때 바닥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화제가 바뀌었다. 김 이사장은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계속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힘든 고민과 일상생활을 나누는 생각 분리 훈련을 한다”고 했다. 운동도 오랜 습관이다. 그는 “습관이 되기까지 힘들었지만, 이제는 운동을 안 하는 것이 더 불편하다”며 “기업도 마찬가지로 신뢰를 얻기까지는 힘들지만 일단 신뢰가 생기면 이후에는 수월해진다”고 했다.
“의사들 창업에 뛰어들어야”
마무리 식사로 보리굴비가 나왔다. 차가운 녹차물에 보리굴비를 한 점 얹자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녹차와 밥, 생선회가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베스티안재단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사회안전망인 화상환자를 치료하는 공공성 높은 병원이지만, 국내 중소병원재단 중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다. 바이오헬스 민간 교류 모임인 혁신신약살롱을 오송에 처음 도입한 것도 베스티안재단이다. 김 이사장은 “돈에 상관 없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려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며 “이 때문에 의사 창업과 연구 사업화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했다. 그는 “오송병원을 통해 병원 중심 메디클러스터를 조성해나갈 계획”이라며 “베스티안이노베이션센터를 통해 전국의 바이오헬스 기술을 가진 회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모으고 있다”고 했다.
줄기세포 회사인 피씨지바이오도 베스티안재단 관계사다. 화상환자에게 이식하는 피부를 배양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줄기세포 배양액을 활용해 화상치료제를 개발하고 빛의 파장을 이용해 화상 상처의 깊이를 재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도 있다. 외부 감염을 막는 캡슐 병상에 환자가 누워 화상 정도를 판별하고 레이저로 화상 부위를 자른 뒤 재생을 위한 인공피부를 붙이는 치료를 하는 게 목표다.
김 이사장은 의사 창업이 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서울 강남구의 의사가 전남·북 의사를 합친 것보다 많다”며 “머리 좋은 의사들이 사회에 나와 강남에서 미용 치료만 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꼬집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돕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본부도 운영한다. 지난해 372명에게 의료비를 지원했다. 화상치료병원으로서의 미래 그림은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재활센터를 짓는 것이다. “화상전문의사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화상은 재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방법도 마련해줘야죠. 재활센터까지 세우면 병원으로서는 완성품이 되는 것 아닐까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국내 최대 화상치료전문병원…年 9만여 명 화상환자 치료
베스티안재단은 국내에 하나뿐인 화상치료전문 병원 재단법인이다. 서울 대치동 베스티안서울병원, 부산 화명동 베스티안부산병원, 충북 오송 베스티안병원 등 세 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다섯 개 화상전문병원 중 두 곳이 서울과 부산의 베스티안병원이다. 연간 60만 명의 국내 화상환자 중 9만6000명이 베스티안재단 소속 병원에서 치료받는다. 중증 환자가 많아 전체 입원 화상환자의 15%가 이곳을 찾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과 의료를 접목하기 위한 시도도 활발하다. 최근 병원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데이터바우처사업을 시작했다. 피씨지바이오, 리젠케어, 파인인사이트 등은 베스티안재단 소속 의사 등이 창업한 바이오헬스 기업이다
■ 김경식 베스티안재단 이사장 약력
△1958년 부산 출생
△1984년 한양대 의대 졸업, 외과학 전문의
△1992년 국립의료원 의과학교실 전임의 순화의원 개원
△2002년 병원 증축 후 베스티안병원으로 이름 변경
△2008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e-MBA 석사
△2016년~ 베스티안재단 이사장 한국병원경영학회 부회장
△2018년~ 대한전문병원협의회 부회장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한양대 의대 총동문회장 ■김경식 이사장의 단골집 최수사
대게마을 묵은지 곁들인 회 별미…알짜 맛집 소문
서울 역삼역 인근에 있는 정통 일식집이다. 이 지역 직장인 사이에서는 알짜 맛집으로 통한다. 역삼동에 처음 문을 연 것은 30년 전이다. 2001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1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3층은 홀과 방을 함께 운영하고 4층은 개별 방으로만 구성됐다. 분위기가 조용해 직장인 회식과 외부 미팅 장소로 많이 활용한다.
기본회는 광어 도미 참치 등으로 구성된다. 완도 제주도 등 동해와 남해산 활어를 매일 배달받는다. 생선 선도를 관리하기 위해 식당 사장이 매주 두 번 수산시장을 찾는다. 기본찬으로 양념을 없앤 묵은지가 함께 나온다. 회를 싸 먹으면 별미다. 정통 일식과 대게를 함께 맛볼 수 있는 대게정식은 이곳만의 메뉴다. 대게 한 마리를 두 명이 먹을 수 있다. 점심 초밥 메뉴도 인기다. 1인 기준으로 초밥세트 1만원, 점심특선 회정식 3만원, 대게정식 6만8000원 등이다.
시작은 1992년 서울 대치동에 문을 연 순화의원이다. 병상 28개에 직원 17명이 근무하던 동네의원은 서울, 부산, 충북 오송 등 세 개 병원에 병상 457개, 직원 510명이 근무하는 베스티안재단으로 성장했다. 이 병원에 근무하는 화상전문의는 30여 명이다. 국내 전체 화상전문의의 절반을 넘는다. 국내 중증 화상 입원 환자의 39%를 재단 산하 병원에서 치료한다. 김 이사장은 의사 창업 전도사로도 불린다. 이 병원 출신 의사 등이 창업한 바이오기업은 네 곳이다. 김 이사장을 서울 역삼동 일식집 최수사 대게마을에서 만났다. 그는 “서울 베스티안병원은 대치동에 있지만 재단 사무실이 근처에 있어 외부 손님이 올 때면 종종 찾는다”고 했다.
피란 온 아버지의 터전이었던 부산
새우 은행 등이 들어간 일식 달걀찜이 전식으로 나왔다. 곱게 간 마에 바다 내음 가득한 해삼 내장이 올려진 음식이 입맛을 돋웠다. 마의 뮤신 성분은 위를 보호한다. 산에서 나는 장어로 불릴 정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이를 내놓는 일식집은 점점 줄고 있다. 갈아둔 마는 쉽게 갈변돼 관리하기 번거롭기 때문이다. 전식 하나만으로도 음식을 대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바다는 김 이사장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부산중앙고를 졸업한 그는 부산 대신동에서 나고 자랐다. 부산은 6·25전쟁 때 북한 남포에서 피란 온 그의 부친이 자리잡은 곳이다. 부친은 이곳에서 관세사로 근무했다. 학창시절 김 이사장은 열심히 공부만 하던 아이였다. 지척에 있는 자갈치시장으로 놀러간 일조차 손에 꼽을 정도다. “형이 공대 건축학과를 나왔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형은 대학생이 됐죠. 형을 따라가겠다고 서울대 공대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어요. 2차에서 붙은 게 한양대 의대였습니다. 그렇게 의사가 됐죠.”
운명처럼 찾아온 화상의사의 삶
의대에 들어간 뒤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운명처럼 화상환자를 돌보게 됐다. 그는 “당시는 일반외과는 암을 수술하고 이식을 해야 폼 나던 시절이었다”며 “개원해 외과를 차리고 보니 주변 대학병원에서 손을 놓은 화상환자가 많이 찾아왔다”고 했다. 순화의원이 문을 연 1992년은 국내에 화상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대학병원조차 없던 때였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던 화상환자가 몰려들었다. 환자를 내치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치료하다 보니 입소문이 났다.
인생의 이정표가 된 환자를 만난 것은 개원하고 4년이 지나서다. 군대에서 전기화상을 입은 젊은 환자였다. 노출된 신체 면적의 70% 정도에 화상을 입었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여러 차례 수술했지만 수시로 상태가 나빠졌다. ‘이 친구 마지막만은 내가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에 김 이사장은 퇴근했다가도 비상호출을 받으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는 넉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을 전하는 김 이사장의 손을 잡고 보호자가 말했다. “다음에는 우리 아들 같은 환자를 꼭 살려주세요.” 화상치료를 숙명으로 바꾼 한마디였다.
돈 버는 족족 시설과 인력에 투자했다. 정성을 쏟았더니 치료 결과도 좋아졌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사고 때 환자 50여 명 중 10여 명이 실려왔다. 모두 살려 퇴원시켰다. 김 이사장은 “화상환자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중환자라도 정신이 멀쩡하기 때문에 의사가 라포르(의사와 환자 간 신뢰관계를 일컫는 용어)를 형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의사들 사이에서 화상환자를 잘 진료하려면 가슴이 아파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사회 복귀가 힘든 화상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공공의료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메인 요리로 회가 나왔다. 두툼한 광어, 도미, 참치회를 묵은지에 싸서 먹는 게 별미다. 여름 보양식인 민어와 병어를 조린 요리도 차례로 나왔다. 칼칼한 병어조림이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자리가 무르익자 김 이사장은 “술 마시는 게 직업”이라며 건배를 청했다. 화상환자는 지옥에 비유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이들을 돌보는 의사들에게도 고통이 전해진다. 괴로움을 삭이려 술을 마셨다. 이제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마신다. “회의나 조회 같은 격식 차린 자리를 싫어해요. 직원들과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대폿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죠. 500명 넘는 직원과 대화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술 마시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중증 화상환자 허브 꿈꾸는 오송병원
화상은 돈벌이가 안 되는 대표 진료 분야다. 순화의원을 베스티안병원으로 증축한 것은 2002년이다. 강남 부잣집 아들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로 무리한 투자였다. 은행 대출이 80%나 됐다. 기회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대치동 땅값이 올라 자산가치가 높아졌다. 경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화상전문 네트워크병원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즈음이다. 2010년 부산에 두 번째 병원을 열었다. 두 곳 모두 화상 전문병원으로 키웠다. 국내 화상전문병원은 이들을 포함해 다섯 곳뿐이다. 대전과 부천에는 협력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했다. 2015년 중국 하얼빈시 제5병원에 한중피부재건센터를 열었다. 중국 의사들에게 화상치료법을 가르치고 함께 연구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11월 오송에 새 병원을 열었다. 오송첨단의료산업복합단지에 하나뿐인 병원이다. 김 이사장은 “중증 응급환자 치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옥상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중환자실까지 한번에 연결되도록 설계했다”며 “전체 120개 병상 중 화상 중환자만 30개 병상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고 했다. 국내 화상 분야 중환자를 치료하는 허브로 키우는 게 목표다.
위기도 있었다. 오송병원 개원이 두 달 정도 늦어지면서 병원 운영 자금이 한때 바닥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화제가 바뀌었다. 김 이사장은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계속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힘든 고민과 일상생활을 나누는 생각 분리 훈련을 한다”고 했다. 운동도 오랜 습관이다. 그는 “습관이 되기까지 힘들었지만, 이제는 운동을 안 하는 것이 더 불편하다”며 “기업도 마찬가지로 신뢰를 얻기까지는 힘들지만 일단 신뢰가 생기면 이후에는 수월해진다”고 했다.
“의사들 창업에 뛰어들어야”
마무리 식사로 보리굴비가 나왔다. 차가운 녹차물에 보리굴비를 한 점 얹자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녹차와 밥, 생선회가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베스티안재단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사회안전망인 화상환자를 치료하는 공공성 높은 병원이지만, 국내 중소병원재단 중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다. 바이오헬스 민간 교류 모임인 혁신신약살롱을 오송에 처음 도입한 것도 베스티안재단이다. 김 이사장은 “돈에 상관 없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려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며 “이 때문에 의사 창업과 연구 사업화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했다. 그는 “오송병원을 통해 병원 중심 메디클러스터를 조성해나갈 계획”이라며 “베스티안이노베이션센터를 통해 전국의 바이오헬스 기술을 가진 회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모으고 있다”고 했다.
줄기세포 회사인 피씨지바이오도 베스티안재단 관계사다. 화상환자에게 이식하는 피부를 배양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줄기세포 배양액을 활용해 화상치료제를 개발하고 빛의 파장을 이용해 화상 상처의 깊이를 재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도 있다. 외부 감염을 막는 캡슐 병상에 환자가 누워 화상 정도를 판별하고 레이저로 화상 부위를 자른 뒤 재생을 위한 인공피부를 붙이는 치료를 하는 게 목표다.
김 이사장은 의사 창업이 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서울 강남구의 의사가 전남·북 의사를 합친 것보다 많다”며 “머리 좋은 의사들이 사회에 나와 강남에서 미용 치료만 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꼬집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돕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본부도 운영한다. 지난해 372명에게 의료비를 지원했다. 화상치료병원으로서의 미래 그림은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재활센터를 짓는 것이다. “화상전문의사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화상은 재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방법도 마련해줘야죠. 재활센터까지 세우면 병원으로서는 완성품이 되는 것 아닐까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국내 최대 화상치료전문병원…年 9만여 명 화상환자 치료
베스티안재단은 국내에 하나뿐인 화상치료전문 병원 재단법인이다. 서울 대치동 베스티안서울병원, 부산 화명동 베스티안부산병원, 충북 오송 베스티안병원 등 세 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다섯 개 화상전문병원 중 두 곳이 서울과 부산의 베스티안병원이다. 연간 60만 명의 국내 화상환자 중 9만6000명이 베스티안재단 소속 병원에서 치료받는다. 중증 환자가 많아 전체 입원 화상환자의 15%가 이곳을 찾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과 의료를 접목하기 위한 시도도 활발하다. 최근 병원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데이터바우처사업을 시작했다. 피씨지바이오, 리젠케어, 파인인사이트 등은 베스티안재단 소속 의사 등이 창업한 바이오헬스 기업이다
■ 김경식 베스티안재단 이사장 약력
△1958년 부산 출생
△1984년 한양대 의대 졸업, 외과학 전문의
△1992년 국립의료원 의과학교실 전임의 순화의원 개원
△2002년 병원 증축 후 베스티안병원으로 이름 변경
△2008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e-MBA 석사
△2016년~ 베스티안재단 이사장 한국병원경영학회 부회장
△2018년~ 대한전문병원협의회 부회장 국민훈장 목련장 수훈 한양대 의대 총동문회장 ■김경식 이사장의 단골집 최수사
대게마을 묵은지 곁들인 회 별미…알짜 맛집 소문
서울 역삼역 인근에 있는 정통 일식집이다. 이 지역 직장인 사이에서는 알짜 맛집으로 통한다. 역삼동에 처음 문을 연 것은 30년 전이다. 2001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1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3층은 홀과 방을 함께 운영하고 4층은 개별 방으로만 구성됐다. 분위기가 조용해 직장인 회식과 외부 미팅 장소로 많이 활용한다.
기본회는 광어 도미 참치 등으로 구성된다. 완도 제주도 등 동해와 남해산 활어를 매일 배달받는다. 생선 선도를 관리하기 위해 식당 사장이 매주 두 번 수산시장을 찾는다. 기본찬으로 양념을 없앤 묵은지가 함께 나온다. 회를 싸 먹으면 별미다. 정통 일식과 대게를 함께 맛볼 수 있는 대게정식은 이곳만의 메뉴다. 대게 한 마리를 두 명이 먹을 수 있다. 점심 초밥 메뉴도 인기다. 1인 기준으로 초밥세트 1만원, 점심특선 회정식 3만원, 대게정식 6만8000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