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對韓 경제보복 최종 종착지는 '아베의 패착'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발표한 지 한 달이 다 돼간다. 우리뿐만 아니라 당사국인 일본에서도 여러 평가가 나온다. 그중 하나가 궁극적으로 ‘아베의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바둑 용어인 ‘패착’은 악수(惡手) 하나로 게임 전체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다음 세대와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가(statesman)’가 아니라 다음 선거와 자신의 자리만을 집착하는 ‘정치꾼(politician)’인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초부터 ‘패착’ 위험이 늘 따르는 도박 정치를 즐겨왔다. 경제 분야에서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의 경제정책)’가 그것으로, 구상할 때부터 말이 많았던 정책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對韓 경제보복 최종 종착지는 '아베의 패착'
가장 우려됐던 점이 로빈슨 크루소 함정, 즉 ‘국수주의 함정’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인위적인 엔저 유도에 대해 두 가지 시각이 엇갈려 왔다. 하나는 일본 경제가 오랫동안 당면한 디플레이션을 타개하는 자구책으로 인식해 엔저를 묵인하는 시각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이 부류에 속했다.

다른 하나는 근린궁핍화 차원으로 인식해 반발하면서 환율전쟁에 가담하는 시각이다. 엔저에 따른 유로화 강세 피해가 심했던 유럽 국가가 이 부류에 속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엔저에 따른 피해가 심해지자 초기에 묵인했던 국가도 이 부류에 속속 가담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우려돼 왔다.

미국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작년 11월에 치러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일본도 환율 조작국에서 피해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첫 조치로 평가된다. 미국 환율보고서에서 일본의 지위는 환율 조작국 예비 단계인 ‘환율관찰대상국’이다.

앞으로 아베노믹스가 패착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트럼프 정부가 일본에 환율 조작 경고를 한 직후 주가는 떨어졌는데 환투기 세력은 ‘왜 엔화 약세가 아니라 강세에 베팅했는가’를 따져보면 쉽게 예상된다. 경제 실상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주가가 떨어지면 통화 가치도 약세가 돼야 한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것은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가 지적한 ‘엔고(高)의 저주’가 주요인이다. 특정국 경기가 침체되면 해당국 통화 가치는 약세가 돼야 수출이 증대되고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엔화 가치가 강세가 돼 경기가 더 침체됐다.

‘경기 실상과 통화 가치가 따로 노는 악순환 국면을 차단하는 것이 일본 경기를 회복시키는 마지막 방안’이라는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 아베노믹스다. 2012년 말부터 아베 정부는 발권력까지 동원해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 즉 환율을 조작해 경기를 부양해왔고 성과도 있었다.

패착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단서는 미국의 환율 조작 경고로 더 이상 아베노믹스가 추진되지 못할 경우 경기둔화 우려로 주가는 떨어지고 엔화 가치는 종전대로 강세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환투기 세력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엔화 강세에 베팅해 3배 이상 환차익을 거뒀던 ‘유포리아 회상’도 가세됐다.

두 번째 단서는 일본은 경기가 침체되면 엔화 가치는 왜 강세가 되느냐 하는 점이다. 안전통화 여부는 경기가 침체될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즉 최종 대부자(last resort) 역할을 누가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은 엔화표시 채권의 96%를 국민이 갖고 있어 저축률이 떨어지지 않는 한 국가부도 가능성이 희박한 나라다.

아베노믹스처럼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기대가 무너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낸다 하더라도 국민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좀비 현상’이다. 좀비는 죽은 시체와 같다는 의미다. 1990년 이후 20년 이상 지속됐던 장기 침체 과정에서 일본은 좀비 현상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좀비 현상이 반복되면 ‘비이성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경제에서 비이성적인 행동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잘못됐다고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 혹은 ‘내로남불 사고’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