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상고심(3심) 해법’을 찾기 위한 첫발을 뗐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상고제도 개편 간담회’를 연 것이다. 대법원을 찾는 사건은 연간 4만여 건인데 대법관은 1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1명은 대법원장으로 재판에 몰입하기 어렵고, 1명은 법원행정처장으로 아예 재판을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3심제를 보장하기엔 물리적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계속된 이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별도의 상고법원을 설치해 문제를 풀어보겠다며 ‘무리’했다가 대법원장으로는 사법 사상 처음으로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상고심 제도' 해법 찾기 첫발 뗀 김명수 대법원장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한국민사법학회·한국형사소송법학회의 임원진과 법학자들을 불러 상고제도 개편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한 해 4만8000건에 육박해 대법관 1인당(법원행정처장 제외) 약 3700건을 맡아야 한다”며 “1990년에 비해 다섯 배가 넘는 규모일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어려운 사건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관 증원부터 상고허가제까지 열린 마음으로 상고제도 개편 방안에 관한 의견을 들을 것”이라며 “헌법정신에 부합하고 실정에 맞는다면 그 방안의 입법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대정 한국민사법학회장(중앙대 교수)과 이상원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서울대 교수) 등도 상고제도를 조속히 개편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상고법원 △상고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대법원 구성 이원화 △대법관 증원 등을 거론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제를 강력히 추진했다. 상고법원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만 대법원이 처리하고 나머지는 새롭게 상고법원을 설치해 전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당시 상고법원은 특별항고를 통해 상고법원에 있던 사건을 다시 대법원으로 올릴 수 있어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인사권을 쥐면 법관들이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법원 조직이 더 관료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명수 코트’에서는 미국식 상고허가제가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꼽힌다. 대법원이 허가한 사건만 상고심 심리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연방대법원에는 한 해 1만 건의 상고 신청이 들어오지만 재판이 열리는 사건은 1%도 안 된다.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심리한 사건은 총 79건으로 대법관 1명당 9건 정도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상고허가제가 가장 이상적인 해결 방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은 1961~1964년 고등법원 상고부를 운영해 단독사건의 상고심을 맡겼다. 1981~1990년에는 상고허가제를 시행해 대법원이 허가한 사건만 상고심 심리를 받도록 했으나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한다는 비판으로 폐지됐다. 이후 음주운전, 교통사고 등 경미한 사건에서도 하급심 판단에 대한 불신이 심각해지고 ‘삼세판’을 받아보겠다는 인식이 퍼지며 대법원의 업무가 과중해졌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