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최저임금 급등 여파 등으로 편의점 수익이 급감하면서 신규 점포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제품을 들여놓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경기 침체와 최저임금 급등 여파 등으로 편의점 수익이 급감하면서 신규 점포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제품을 들여놓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부산에서 직원 한 명을 두고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는 요새 한 달 수입이 평균 30만원 정도다. 생활비가 부족해 적금도 깼다. 하지만 A씨는 건강보험공단에 월소득 170만원에 해당하는 12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낸다.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는 최소한 종업원 중 최고 보수자만큼 건보료를 내도록 한 법 때문이다. 법이 왜 이 모양이냐고 건보공단에 항의하니 “사업주가 근로자보다 소득이 적을 리가 없다는 사회 인식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안 그래도 최저임금 인상과 불황 때문에 힘든데 뺨을 두 번 맞은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자영업자 사이에서 불합리한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최저임금 급등 탓에 ‘알바보다 못 버는 사장’이 현실이 됐는데도 낡은 제도를 들이대며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건보료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 근로자를 고용한 자영업자는 직장가입자로 건보료를 낸다. 이때 사업주의 신고 소득이 사업장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근로자보다 낮으면 최고 보수자 소득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내야 한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실제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복지부는 최근 한 자영업자가 제기한 민원에 대해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업주의 신고 소득에만 근거해 건보료를 물리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은 2010년 54.7%에서 2016년 86.1%로 높아졌다. 최근엔 90%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드 결제 등으로 과거보다 소득이 투명해졌는데도 ‘자영업자는 소득을 속일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으로 차별을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영업자 두 번 울리는 건강보험료
한 음식점 사업주는 “불합리한 건보제도는 최근 자영업 사장들이 고용을 줄이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2만6000명 감소해 1998년 12월(-28만1000명) 후 가장 많이 줄었다.

자영업자, 月수입 0원이라도 무조건 직원보다 건보료 더 내야

‘자영업 사업주는 사업장에서 최고 보수를 받는 직원보다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야 한다’는 규정은 2000년 생겼다. 건강보험법 시행령 제38조다. 당시만 해도 자영업자들이 매출을 줄이거나 비용을 뻥튀기해서 소득 신고하는 사례가 많았다. 국세청의 자영업 소득파악률은 50%도 안 됐다. 자영업자 신고 소득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고, 사업주가 자신이 고용한 직원보다 소득이 적을 리가 없다는 전제로 만든 규정이다. 은퇴자와 1인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는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도 건보료를 물리는데 이 또한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자영업 소득파악률은 꾸준히 개선됐다. 2010년만 해도 54.7%에 그쳤으나 2016년 86.1%까지 올랐다. 주머니 사정도 직장근로자에 가까울 정도로 투명해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실제 소득만큼만 건보료를 매겨달라”는 자영업자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정부는 20년 전 논리를 고수하며 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 두 번 울리는 건강보험료
알바보다 못 버는 사장 현실 됐는데

문제는 경기 침체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이 겹쳐 ‘알바(아르바이트)보다 못 버는 사장’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영업자 경영실태조사’를 보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가운데 42.1%가 한 달 영업이익이 100만원도 안 됐다. 최저임금 근로자는 올해 월소정근로시간 209시간 기준 한 달에 174만5150원을 받는다.

경남 창원에서 고깃집을 하는 김정근 씨는 “안 그래도 손님이 급감하는데 최저임금까지 2년 연속 크게 올라 너무 힘들다”며 “올해 직원 3명 중 2명을 내보냈지만 적자를 내는 달이 더 많다”고 말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은 현행 건강보험 제도가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매출보다 인건비 등으로 나간 비용이 더 많아 수입이 0원인 달도 건보료는 무조건 최고 보수를 받는 직원만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월 174만원)을 받는 근로자의 건보료는 월 6만원 정도다. 하지만 사업주는 본인 건보료 6만원에 회사분 6만원까지 부담해야 해 12만원을 내야 한다. 종업원 근로시간이 적으면 이보다 낮아질 수 있지만 대체로 자영업 사장은 최소 한 달 10만원 이상의 건보료 납부가 강제돼 있는 셈이다. 김씨는 “건보공단 직원이 ‘사장님이니까 직원보다는 건보료를 더 내셔야죠’라고 하는데 기가 찼다”며 “하루만 장사를 해보면 그런 말 못 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제도 개선 손놓은 정부

서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원모씨는 최근 건보 제도를 고쳐달라는 민원을 보건복지부에 넣었다. 복지부의 답은 ‘불가하다’였다. 복지부는 원씨에게 보낸 답변서에 “자영업자의 소득 신고 금액은 소득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직장근로자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적었다. 자영업자의 소득 신고를 못 믿겠다는 얘기다. 원씨는 “요즘엔 대부분 결제가 카드로 이뤄져 거래 내역이 낱낱이 기록되는데 아직도 모든 자영업자를 잠재적 탈세자로 간주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해 발표한 ‘2017회계연도 총수입 결산 분석’에서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은 2016년 86.1%로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며 “국세청이 자영업자를 상대로 성실신고 대상자 확대 등을 시행하며 징세 행정을 강화한 덕분”이라고 밝혔다. 최병호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장은 “자영업자 신고 소득을 국세청 자료와 비교해 문제가 없으면 실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등 대안이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꼬집었다.

자영업자가 직원을 다 내보내고 혼자 가게를 운영하면 지역가입자가 되는데 이때는 또 다른 부조리에 부딪힌다. 직장가입자와 달리 재산에도 건보료를 물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제도 역시 개선에 소극적이다.

지난해 7월 재산보험료 축소 등 일부를 개선했지만 중산층 이상은 부담을 더 키웠다. 이와 관련, 2017년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적극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지역가입자에게 재산보험료를 물리는 제도는 합헌이란 결정이 나왔지만 재판관 가운데 절반인 4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의 요지는 이렇다. “소득파악률은 정부 노력에 따라 개선될 수 있는데 이를 이유로 재산 등에 보험료를 매기는 것은 행정 편의를 위해 소득 미파악의 리스크를 지역가입자 전체에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