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같지 않은 직설적 시구…도시 감수성 꿰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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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장정일 시집 '눈 속의 구조대'
시인뿐 아니라 소설가, 극작가, 에세이스트로 활약해온 작가 장정일(사진)이 1991년 《천국에 못 가는 이유》(문학세계사) 이후 28년 만에 시집 《눈 속의 구조대》(민음사)를 내놨다.
독특한 고백체를 바탕으로 도시의 감수성과 몰개성의 시대를 꿰뚫어온 그의 시는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다시 그 원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랜만에 출간한 시집이지만 그의 전작들처럼 온통 그로테스크(괴기)한 모습으로 가득 차 있어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여러 분야를 오가며 활동하면서도 그가 스스로 시인임을 놓지 않고 살았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비슷해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산문시 ‘참’은 시가 아니라 짧은 산문 같다. 두 페이지에 걸쳐 시인은 《산해경》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인 ‘참’을 앞세워 길을 잃은 장소인 시베리아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방법을 전한다. 참은 인간을 좋아해 먼저 다가오고 인간의 추위와 배고픔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털과 살을 내주는 친구다. 하지만 인간은 참을 겨울 점퍼처럼 덮고 햄버거 패티처럼 먹는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개의치 않는 인간에게도 여전히 원죄와 수치가 남아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1987년 제7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서 시인이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라고 말한 햄버거는 30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적인 존재가 됐다. 시 ‘시일야방성대곡’은 시인의 집 근처에 있던 햄버거 체인점 맥도날드가 폐점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시작한다. ‘어찌 이날을 울지 않고 지나가랴?’고 아쉬워하면서 이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찾아온 우리의 보리수에서 새처럼 지절대던’ 맥도날드에 얽힌 기억과 상실, 혼란을 이야기한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눈 속의 구조대’에선 수치심에 몸을 떠는 인간의 원죄를 덧칠하고 또 잊기 위해 폭력과 복종을 배우는 자들을 짚어낸다. 시는 결국엔 기억하거나 잊는 존재인 인간이 위악을 통해 분열되는 모습을 끊임없이 그려낸다.
시집엔 평론가의 작품 해설은 물론 흔한 추천사조차 싣지 않았다. 오롯이 시에만 집중하게 한다. ‘어떤 해석도 붙이지 말고 그저 느끼는 대로 생각해보라’는 듯 상투성에서 벗어난, 시 같지 않은 직설적인 시구들이 뿜어내는 불편함은 내내 가슴에 꽂힌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독특한 고백체를 바탕으로 도시의 감수성과 몰개성의 시대를 꿰뚫어온 그의 시는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다시 그 원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랜만에 출간한 시집이지만 그의 전작들처럼 온통 그로테스크(괴기)한 모습으로 가득 차 있어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여러 분야를 오가며 활동하면서도 그가 스스로 시인임을 놓지 않고 살았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비슷해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앞부분에 등장하는 산문시 ‘참’은 시가 아니라 짧은 산문 같다. 두 페이지에 걸쳐 시인은 《산해경》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인 ‘참’을 앞세워 길을 잃은 장소인 시베리아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방법을 전한다. 참은 인간을 좋아해 먼저 다가오고 인간의 추위와 배고픔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털과 살을 내주는 친구다. 하지만 인간은 참을 겨울 점퍼처럼 덮고 햄버거 패티처럼 먹는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개의치 않는 인간에게도 여전히 원죄와 수치가 남아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1987년 제7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서 시인이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라고 말한 햄버거는 30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적인 존재가 됐다. 시 ‘시일야방성대곡’은 시인의 집 근처에 있던 햄버거 체인점 맥도날드가 폐점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시작한다. ‘어찌 이날을 울지 않고 지나가랴?’고 아쉬워하면서 이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찾아온 우리의 보리수에서 새처럼 지절대던’ 맥도날드에 얽힌 기억과 상실, 혼란을 이야기한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눈 속의 구조대’에선 수치심에 몸을 떠는 인간의 원죄를 덧칠하고 또 잊기 위해 폭력과 복종을 배우는 자들을 짚어낸다. 시는 결국엔 기억하거나 잊는 존재인 인간이 위악을 통해 분열되는 모습을 끊임없이 그려낸다.
시집엔 평론가의 작품 해설은 물론 흔한 추천사조차 싣지 않았다. 오롯이 시에만 집중하게 한다. ‘어떤 해석도 붙이지 말고 그저 느끼는 대로 생각해보라’는 듯 상투성에서 벗어난, 시 같지 않은 직설적인 시구들이 뿜어내는 불편함은 내내 가슴에 꽂힌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